[신명관의 모다깃비 감성]

‘힐링’은 여기저기서 과포화되어 이제는 너무나 흔하고 대중적인 단어가 됐다. 반복되는 하루에 지친 직장인에게 힐링이나 격려의 말들은 잠시 의지를 북돋을 뿐이다. 변화를 모색하고 싶지만 쳇바퀴 같은 일상은 언제나 그대로다. 밤은 그런 당신을 서럽게 만든다.

한밤 중 SNS는 그래서 위험하다. 잠들기 전까지 밤과 새벽은 우울한 것만 모아놓은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한다. 야근은 계속되지, 주위도 시커멓지, 내일 출근은 어떻게 하나 싶다. 문득 바라본 밤하늘은 별조차 흐릿하다. 귀농하고 싶을 정도로 뿌연 매연이 낭만마저 가렸다. 새벽을 포함한 이 기나긴 밤은, 내 주변의 사람들을 보건데 썩 활기차고 기분 좋아 보이진 않는다.

©픽사베이

그런데 밤이라는 이 부정적 스펙트럼 사이에 이단 하나가 끼어있다. ‘늦은 새벽’이다. 내가 말하는 늦은 새벽이란 어둠이 걷히기 시작하고, 해가 떠오르려고 하기 직전의 아주 짧은 시간이다. 한 시간은 될까. 늦은 새벽은 ‘이른 아침’ 바로 앞에 붙는다. 솔직히 둘이 어떤 차이인지도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다. 어두컴컴한 밤과 완전히 해가 떠오르는 아침의 사이에 어정쩡하게 걸쳐져 있다. 이런 자그마한 시간이 이단인 이유는 다른 ‘늦은’ 것들은 죄다 끝물에 가까울지 몰라도, 늦은 새벽만큼은 시작에 가깝단 것이다.

이 때를 마냥 아름답다고는 할 수 없다. 인간의 본능적인 짜증이 이 시간대에 가장 활성화되기 때문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이 시간에 꿈틀대며 일어나고, 불평하고, 욕을 내뱉는다. 어제의 감성을 돌려받고 싶기도 하고, 애꿎은 이불만 차는 사람도 있다. 아침의 출근길을 헤쳐나가기 위해서는 빨리 준비를 하는 게 좋을텐데, 몸을 움직이는 전원 스위치는 내가 누르는 것이 아닌 듯한 느낌이다.

하지만 나는 이 시간대가 한밤중보다 두근거릴 때가 있다. 하루 중 가장 인간의 모습을 본떠 만든 시간대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는 발소리, 바빠진 엘리베이터 소리, 정류장에서 출발하는 버스들의 엔진소리, 차 경적소리, 보도블록을 지나는 구두소리. 내 건너편에서는 초록색 옷을 입은 환경 미화원이 담배꽁초와 함께 어둠을 쓰레받기에 담아내고, 어디선가 계속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부산스럽다’라는 표현이 딱 맞아 떨어질 때가 바로 이쯤이다.

그리고 이때 거리는 온통 파란색으로 물들어있다. 하얀 아파트 단지에서부터 덜컹거릴 것만 같은 과속방지턱까지. 놀이터의 빨간색 미끄럼틀마저 이 순간만큼은 파란색으로 젖는다. 바다속에 잠긴 것만 같은 순간. 해가 떠오른다는 게 마치 수면 위로 올라가는 것만 같은 환상에 젖을 정도다. 일어난다는 것은 모든 움직임과 사고의 시발점에 있어서, 막 일어난 우리들의 생각들은 이리저리 막 뒤엉켜 있는데, 수면 위로 올라간 풍경들이 제 색을 찾는 과정이, 우리들이 서서히 움직이며 깨어가는 순간과 무서우리만치 닮아있다.

‘어떤 일이나 행동의 처음 단계를 이루거나 그렇게 하게 함.’ 이것이 시작의 사전적 정의다. 하지만 나는 시작이라는 것이 그렇게 간단하게 끝난다고 보지 않는다. 시작은 나타나는 것이다. 등장하는 것이다. 아무 것도 없는 것만 같은 캄캄한 심해 속에서, 아주 천천히 빛을 얻고 제 형태를 찾아간 뒤 수평선을 뚫고 나오기 직전까지의 순간이다. 늦은 새벽은 시작과 닮았다. 그렇기에 수많은 기포가 올라오는 것처럼 부산스럽고, 가려왔던 것을 드러내는 유적처럼 웅장하며, 가라앉았던 마음을 다시 떠오르게 만들 두근거림을 품고 있다.

힐링을 해주려는 많은 매체들에게 쓴 소리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수많은 말들마저 자신을 위로하지 못할 때는 늦은 새벽에 밖으로 나가보자. 가장 스산한 느낌이 들 때라서 잠 깨기에도 좋다. 수면양발을 벗지도 않은 채 슬리퍼를 신고 나가면, 건너편 아파트엔 하나 둘 일어난 가족들의 움직임이, 거리에는 분주히 발걸음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시작이 깔려있는 늦은 새벽을 감상할 줄 안다면, 마냥 괴로울 것만 같은 퇴근길이 조금은 위안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오피니언타임스=신명관]

 신명관

 대진대 문예창작학과 4학년 / 대진문학상 대상 수상

 펜포인트 클럽 작가발굴 프로젝트 세미나 1기 수료예정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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