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구의 문틈으로 보는 금융경제]

2016년 미국 대선을 민주·공화 양당 당내 경선부터 당선자 발표까지 CNN을 통해 촘촘히 지켜봤다. 예전엔 언론 기사의 제목 정도만 읽고 지났었다. 투표권도 없는 사람이 무엇 때문에 그토록 시간을 들여 봤는지 신기할 정도다. 은퇴 후 생긴 오전 여유시간에 딱히 볼 만한 TV프로그램도 없었던 데다 미국 대선에 대한 궁금증과 막연한 동경심이 한몫했다.

인물 위주로 모였다 흩어지기를 반복해 분명하고 일관된 정강이 없는 우리나라 정당과 달리 미국 정당들은 색깔이 분명하다. 작은 정부를 기조로 자유시장경제를 추구하는 공화당 정강과 소수자 보호와 경제적 약자에 대한 정부 배려를 강조하는 민주당 정강이 선거 때마다 치열하게 표를 통해 심판받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대선 토론을 보며 품위 있으면서도 치열한 정책대결의 진수를 맛보리라 기대했으나 현실은 초반부터 기대를 크게 벗어났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 ©게티이미지/포커스뉴스

고삐 풀린 망아지 같은 도널드 트럼프 때문에 이번 대선이 예전과 크게 달라진 건지는 알 수 없으나 양당 후보자 모두 유권자에게 호감을 주지 못했다. 결국 차선도 아니고 차악을 고르는 선거로 전락했다. 특히 트럼프가 상대방을 공격하는 데 사용하는 막말과 극단적인 표현은 내 귀를 의심하게 했다. 보통사람들은 단정적인 단어 사용을 주저하는 데 비해 트럼프는 “내가 세상에서 협상을 제일 잘한다”는 등의 말을 거침없이 뱉어내 아연실색했다.

우리나라에선 일반적인 사업가를 기업인이나 기업가로 부르는 데 비해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돈만 벌려는 부류를 장사치 또는 장사꾼이라 부른다. 트럼프의 선거전략엔 장사치 근성이 잘 드러났다. 공화당은 전통적으로 자유무역을 옹호하는 입장인데도 그는 자유무역이 미국의 일자리를 빼앗아 갔다며 전통적인 민주당 텃밭인 ‘쇠락한 공업지대(rust belt)’, 즉 펜실베니아, 미시간, 오하이오주 등의 백인 노동자자 계층을 집중공략해 승리를 거머쥐었다. 해외로 나간 일자리를 찾아오겠다는 공약이 빛을 발한 것이다.

대통령이 국민의 일자리를 늘리려는 노력은 비판받을 하등의 이유가 없다. 트럼프 당선인은 취임도 하기 전에 굴지의 에어컨제조사인 캐리어사를 설득해 없어질 뻔한 일자리 1000개를 살려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그러나 실은 인건비 절약을 위해 멕시코로 공장 이전을 계획했던 캐리어사에 세제 혜택을 약속했거나, 미 정부에 연간 50억 달러어치 군수품을 납품하는 모회사 유나이티드테크놀로지스(United Technologies)와 모종의 거래를 했을지 모른다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발표 후 시간이 지나면 미국에 남는 일자리 수가 1000개보다 적다는 말도 나온다. 그런데도 트럼프 당선인과 캐리어사의 협상 결과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미 국민이 과반수가 넘는다니 그로서는 괜찮은 장사인 게 분명하다.

캐리어사와의 협상 발표 후 얼마 안 지나 트럼프는 또 일본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과 회담 후 일본으로부터 500억 달러 투자를 유치했고, 이를 통해 5만개의 일자리가 만들어질 것이라며 “내가 당선되지 않았더라면 성사될 수 없는 투자 유치”라고 자랑했다.

트럼프 풍자만화 ©픽사베이

그러나 손정의 회장의 투자 관련 보도는 그의 광고성 발표 내용과 상당히 다르다. 보도에 따르면 손 회장은 사우디아라비아 정부가 탈석유화정책의 일환으로 추진하는 기술분야 신설기업 투자를 위해 지난 10월 이미 ‘소프트뱅크비전(Soft Bank Vision)’이라는 투자펀드를 만들었다. 소프트뱅크가 250억 달러, 사우디정부가 450억 달러, 그리고 아직 미확정된 투자처로부터 300억 달러를 향후 5년간 조달할 계획이라는 것이다. 실리콘밸리가 기술 분야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비춰볼 때 이 정도 투자는 트럼프와 무관하게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손 회장은 2012년 미 통신기업인 스프린트(Sprint)사에 200억 달러를 투자해 손해를 봤다. 티모바일(T-Mobile)사와의 합병을 통해 반전을 꾀하려 했으나 미 정부 허가를 받지 못해 발을 구르던 중 이번 투자를 미끼로 트럼프로부터 허가를 받겠다는 저의가 숨겨 있을지 모른다는 보도도 나온다. 장사꾼과 장사꾼 출신 대통령 당선인의 셈법을 보통사람들이 어떻게 알아차릴 수 있겠는가?

정부 그것도 대통령이 나서서 개별회사와 보조금이나 세금감면 협상을 하며 특정기업에 혜택을 주면 일관성 없고 불공정하고 비논리적인 선례가 만들어질 가능성이 크다. 또 기업마다 멕시코 등 해외로 이전하겠다고 나설 때 누군 들어주고 누군 안 들어주면 혼란만 부추길 수 있다. 큰 틀에서 접근하고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야 일자리 만들기가 안정적인 성과를 보일 텐데 장사꾼 출신은 역시 다른가보다. 소리만 요란한 기성정치권에 실망한 미 유권자의 장사꾼 선택이 어떤 결과를 보일지 우리나라 유권자도 지켜볼 일이다. [오피니언타임스=김선구]

 김선구

 전 캐나다 로열은행 서울부대표

 전 주한외국은행단 한국인대표 8인 위원회의장

 전 BNP파리바카디프생명보험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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