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호의 멍멍멍]

무당(巫堂) : 신령을 섬겨 길흉을 점치고 굿을 주관하는 사람
무당(無黨)층 : 지지 정당이 없는 유권자 집단

국민 주권을 되찾아라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식에 오방낭 주머니를 등장시키고, ‘우주의 기운’과 같은 이상한 화법을 사용해 국민들을 당혹케 했다. 일련의 사건들은 의문으로만 남을 뻔했지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며 ‘영세교’와 연관된 일들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박근혜 정권이 ‘신정정치’, ‘샤머니즘’, ‘제정일치’라는 비난을 받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박근혜 대통령이 2013년 2월25일 취임식을 마치고 ‘희망의 열리는 나무’ 행사에 참석해 국민들의 희망이 적힌 오방낭 복주머니 속 글을 읽고 있다. 이 같은 퍼포먼스를 최순실씨가 진두지휘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청와대

선무당이 정권을 쥐고 흔든 ‘무당의 시대’였다. 박근혜 정권의 국정은 종교와 민간에 의해 좌우됐고 국민들은 분노했다. 박관천 전 경정의 말처럼 “우리나라의 권력 서열은 최순실 씨가 1위, 정윤회 씨가 2위, 박 대통령은 3위에 불과”했다. 국민들은 촛불을 들고 매주 토요일 광화문에 모였다.

정치에 대한 관심은 촛불과 함께 날로 뜨거워졌다. 하지만 지지 정당이 없는 ‘무당층’은 줄어들지 않았다. 심지어 무당층이 24%에 달해 새누리당 지지자들보다 많았다. (12월 1주차 정당지지율 여론조사-리얼미터)

12월 1주차 정당지지도 주간집계 ©리얼미터

‘무당’ 일가는 국가와 사회에 대한 신뢰를 무참히 부숴버렸다. 국민들은 정부와 정당을 향하던 지지를 중단하고 주권자의 권리를 행사하기 시작했다. 국회의원과 대통령은 국민 주권의 대리자일 뿐이라는 것을 알리고, 그들의 행동을 감시하는 역할을 자처했다.

광화문, 헌법재판소, 새누리당 및 국민의당 당사, 김진태 의원 사무실 등 각지에서 탄핵을 요구하는 시위가 동시다발로 열렸고, 탄핵안은 찬성 234표로 가결됐다. 그들은 특정 정당의 지지자들이 아니었다. 새누리당을 지지했던 시민들도, 더불어민주당을 지지했던 시민들도 함께 모여 한마음 한뜻으로 외쳤다. 무당의 시대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보수와 진보는 어디에 있나

‘헌정 질서 유지’와 ‘국가 안보’, ‘국민 안전’은 보수 진영의 핵심 가치다. 새누리당이 보수 대표 정당을 표명한다면 국민의 안전과 생명 보장에 실패한 세월호 사건과, 헌정 질서를 유린한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사건을 묵인해서는 안 됐다. 박근혜 대통령이 ‘내 편’이라고 하더라도 당 차원의 공정한 평가와 진상조사가 필요했다. 그게 진정한 보수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새누리당은 대통령 감싸기에만 바빴고 이에 배신감을 느낀 ‘보수 지지층’들은 등을 돌렸다. 새누리당이 아닌, 보수의 가치를 지지한 자들에겐 당연한 순서였다.

보수층마저 떠난 새누리당 지지율은 17%까지 떨어졌다. 이 와중에 친박과 비박은 서로를 ‘배신자’라 부르며 당파 싸움마저 벌이기 시작했다. 비박은 친박 8인을 ‘최순실의 남자들’로 지목해 탈당을 요구했고, 친박은 심각한 명예훼손과 모욕을 당했다며 황영철 의원을 고소했다. 하지만 친박과 비박 어느 쪽도 먼저 탈당하지 않고 상대에게 탈당을 요구하고 있다. 진짜 보수를 가려내기 위함이라 하지만, 500억원에 이르는 새누리당 재산을 두고 벌이는 집안싸움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15일 국회 새누리당 대표실 앞에서 당 사무처 직원들이 ‘지도부 즉각 사퇴와 윤리위 원상 복귀’를 촉구한 가운데, 이정현 대표가 입장을 밝히고 있다. ©포커스뉴스

‘촛불 민심’, ‘국민의 뜻’을 따르겠다던 야당도 마찬가지였다. 국민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 혹은 탄핵을 요구했다. 야당의 차기 대선 당선을 요구한 것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야당은 차기 대선에 불리할 것 같자 탄핵을 주저하는 모습을 보였다. 야당끼리도 분열하며 탄핵안마저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대선 가능성을 계산하며 주판알 튕기는 모습에 실망을 감출 수 없었다.

국민들은 지쳤다. 더 이상 기득권 정치 세력에 기대를 걸지 않는다. ‘지지 정당 없음’을 표명하기 시작한 건 결국 이 때문이다. 국민의 뜻을 반영하는 대의민주주의를 기대하기에는 정치권의 밥그릇 싸움과 양당 정치 구조가 너무 견고해졌다. 무당(巫堂)의 시대는 갔지만, 무당(無黨)의 시대가 열렸다.

기성 정치권에 투표하지 않겠다

일본에서는 ‘지지정당없음당(支持政黨なし)’이라는 이름의 세력이 7월 참의원 선거에서 64만7071표를 얻었다. 이 정당은 스스로 내세우는 정책 없이, 오직 인터넷을 통해 당원들의 여론을 모아 투표를 대리하는 역할만을 자처했다. 당선된 후보는 없었지만 민심을 반영하지 못하는 기득권 정치세력에 표를 주지 않겠다는 의식이 시민 사이에서 싹트고 있는 것만은 확실했다.

일본에서는 정강 정책이 없고 의석을 얻으면 사안마다 유권자 의견을 물어 의결권을 행사하겠다는 ‘지지정당없음당’이 돌풍을 일으켰다. ⓒ‘지지정당없음당’ 인터넷 홈페이지 캡쳐

국회는 절대 국민의 뜻을 오해해선 안 된다. 지지정당이 없다는 건 정치에 무관심한 게 아니라, 민심을 제대로 반영하는 진짜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의 표시다. 또한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지적하는 것이다. 그저 본연의 임무에 충실한 국회의원과 정당을 찾다 찾다 포기해버린 것이다.

그릇은 음식을 제대로 담아내야 한다. 하지만 국회는 민심을 담아내는 것조차 버거워했다. 이를 숨기려고 화려하고 멋있게 보이려고만 했다. 어차피 먹지도 않을 거라면서 이렇게 차린 게 많다고 자랑까지 했다. 하지만 온 국민이 그 속을 들여다보기 시작하며 내실은 하나도 없었다는 게 들통났다. 가짓수만 많고 겉보기만 화려했지 먹을 건 하나도 없었다.

더 이상 국민을 속일 수 없다. 국민들은 어떤 재료를 썼는지 찾아보고, 직접 맛을 보고, 문제가 있으면 시정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국회가 살 길은 차라리 조금 투박하고 볼품없이 보여도 국민의 열망을 소박하게 잘 담아내는 거다. 그렇지 못하면 어느 정당이든 파리만 날리다 문 닫는 신세를 면하지 못할 것이다. 국회는 명심해야 한다. 이미 24%의 무당층이 ‘이럴바에 차라리 굶겠다’며 불매 운동을 시작했다는 것을 말이다. [오피니언타임스=이광호]

 이광호

 똑같은 사람이 될 것만 같은 두려움에 글을 씁니다. 게임 좋아합니다.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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