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훈의 쑈!사이어티]

오랜만에 영화를 보면서 등골이 서늘했다. 영화 ‘판도라’ 말이다. 솔직히 말해 줄거리는 지극히 평범한 재난영화였다. ①지진이 발생하고 ②원전이 폭발해서 ③수백만명이 위기에 처한다. 게다가 이런 이야기는 몇 년 전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구경’하면서 충분히 학습하지 않았던가. 여기까지만 보면 ‘판도라’는 별로 무서운 영화가 아니다. 하지만 줄거리에 우리의 현실을 대입해보면 어떨까?

©네이버영화

‘현재 한국에는 24개의 원전이 가동 중이다’
‘한국은 세계에서 원전밀집도가 가장 높은 나라이다’
‘올해 동남권에는 진도 6.0 가까운 지진이 여럿 발생했다’

이 정보들로 줄거리를 재구성해봤다. ①‘부산 경남’에 지진이 발생하고 ②인근에 설치된 40년 넘은 월성고리원전이 폭발해서 ③PK지역 주민 340만명이 방사능에 오염되는 것이다. 그렇다. 영화 판도라는 ‘영화적 상상력’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미래’인 것이다.

우리는 얼마 전 뉴스에서 동남권에 진도 6.0에 가까운 지진이 발생했고, 노후원전이 재가동허가를 받았다는 소식을 접했다. 영화적 상상력이라고 넘기기에 판도라는 너무도 현실적이지 않은가? 영화가 현실을 말한다는 걸 알게 되면서부터 손에 땀을 쥐었다.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원자로의 폭주, 방사능에 오염되어 피를 토하는 사람들, 쏟아지는 피난민 차량으로 마비된 고속도로… 등골이 오싹했다. 제어할 수 없는 위험성이 있다면, 애초에 원전은 존재해선 안 되는 것 아닐까? 영화 판도라는 관객들에게 한국탈핵에 동참할 것을 요구한다.

한국 탈핵의 첫걸음으로 먼저 원자력의 세 가지 신화를 깨야 한다. 원전은 ‘안전하고’ ‘친환경적이고’ ‘경제적’이라는 통념은 사실 새빨간 거짓이다.

우선 원전은 전혀 안전하지 않다. 옹호론자들은 원전사고확률이 0.001%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판도라에서 보여주듯 현재 원전은 비용절감을 위해 전문성이 떨어지는 하청-비정규직을 다수 고용하며, 강력한 지진이 덮치면 누구도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

둘째로 원전은 친환경적이지 않다. 원자력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낮은 것은 사실이다. 대신 이산화탄소보다 훨씬 치명적인 핵폐기물이 대량 발생한다. 매년 드럼통 3000개 분량이 쏟아지는데 처리할 방법이 없어서 300년 넘게 격리해놔야 한다.

셋째, 값이 싸지도 않다. 옹호론자들은 우라늄 연료 값이 싸서 태양열발전의 1/30, 화력발전의 1/3에 불과하다고 홍보한다. 이것은 속임수다. 발전소, 폐기물처리장 건설 등 시설비용과 주민이주비용 등을 뺀 것이다. 이것들을 포함하면 원자력은 가장 비싼 에너지원이다. 따라서 원전은 비싸고, 위험하고, 더러운 에너지다.

‘원전홈쇼핑’ 동영상©쇼사이어티 

그렇다면 누가 왜 원자력의 신화를 만들었을까? 국민의 안전·편익보다는 자신들의 돈벌이를 걱정하는 ‘전문가’, ‘언론’, ‘자본가’, ‘관료’들이 있다. 우리는 이들을 원전 마피아라고 부른다. 지난해 독립언론 ‘뉴스타파’는 공기업 ‘한국수력원자력’이 매년 200여억원의 혈세로 몇몇 언론을 매수해서 원전을 안전하고 친환경적이라고 홍보하는 드라마, 뉴스, 광고를 주문제작한 실태를 고발했다. 여기에 이명박 정부 당시 차관급 고위관료 등 100여명이 한수원의 뒷돈을 받고 기소된 사례도 있다. 이들 원전 마피아들은 푼돈에 눈이 멀어 수백만 시민을 알권리를 빼앗고 시민의 안전을 헐값에 넘겼다. 광장의 촛불이 시민적 책임감을 일깨운 지금이야말로 원자력 신화를 깨부술 적기다.

원전 없이는 전기가 부족하지 않겠냐는 걱정은 접어두어도 좋다. 당장 원전 10개를 중단해도 될 만큼 예비전력은 충분하며, 그래도 걱정된다면 전기낭비를 막으면 된다. 한여름에 문 열고 에어컨을 펑펑 틀어놓는 상가를 규제하고, 싼 전기료를 믿고 기계를 공회전시키는 기업 관행을 감시하는 것이다. 이런 생활 속 작은 실천만으로도 원전 몇 개를 줄일 수 있다.

재난영화의 묘미는 ‘안도감’에 있다. 배가 가라앉고, 테러범의 폭탄이 터져도 결국 우리는 슬기롭게 살아남을 것이라는 희망을 확인하는 것이다. 그런데 판도라 엔딩에는 그런 ‘희망’이 없었다. 원전폭발을 사전에 막지 못했으니, 비극은 피할 수 없다는 경고다. 대신 판도라는 관객들에게 되묻는다. 아직 현실의 원전은 폭발하지 않았다고, 여러분이 노력한다면 판도라의 비극을 막을 수 있다고 말이다. 결국 유일한 해법은 ‘한국 탈핵’이다. 그리고 그 성패는 ‘원전 코리아’를 살아가는 우리의 두 손에 달려 있다. [오피니언타임스=이성훈] 

 이성훈

20대의 끝자락 남들은 언론고시에 매달릴 때, 미디어 스타트업에 도전하는 철없는 청년!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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