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혜탁의 대중가요 독해영역➂] 드렁큰 타이거 <편의점>

“2시55분 5분 후면 새벽 3시
왜 난 이 시간에 일을 해야 되지
괜한 팔자로 태어난 거겠지
허리도 목도 너무 너무 쑤셔
내 등을 도배하듯 파스를 붙여
눈을 뜨고 조금 졸기 시작하려는데
운동화를 꺾어 신은 저 사람이 뭔데
눈이 동그래져 날 이상히 쳐다보네
(중략)
편의점 인생인 날 깔보는 거야”

-드렁큰 타이거 <편의점>

[오피니언타임스=석혜탁] 사회학자 전상인 서울대 교수는 앞으로 병원이 없는 무의촌(無醫村)이나 법조인이 없는 무변촌(無辯村)은 남아도 편의점이 없는 마을은 조만간 완전히 사라질 것이라 말했습니다.

길거리를 걷다 보면 고작 몇 분 사이에 3~4개의 편의점이 눈에 들어올 때가 있습니다. 한 자료에 의하면 편의점의 수는 치킨 가맹점의 수를 훌쩍 넘어섰다고 합니다. 한국인들이 그렇게나 사랑한다는 치킨, 편의점의 팽창 앞에선 속수무책이네요. 가히 ‘편의점 공화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플리커 양승규

“목하 편의점은 주변의 상업 시설, 공공 기관, 문화 공간을 하나하나 ‘흡수 통일’하는 중이다.”
-전상인 <편의점 사회학>

주변 공간을 ‘흡수 통일’하는 편의점의 기세가 등등합니다. 편의점은 더 이상 물건만 사는 곳이 아닙니다. 금융, 우편 등 요즘엔 편의점에서 못하는 게 없습니다. “편의점은 만능 복합 생활 거점이자 원스톱 유비쿼터스 공간”(전상인 <편의점 사회학>)입니다.

“나는 편의점에 간다. 많게는 하루에 몇 번, 적게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나는 편의점에 간다. 그러므로 그사이―내겐 반드시 무언가 ‘필요’해진다.”
-김애란 <나는 편의점에 간다>

정말 “반드시 무언가 필요해”지는지 저만 해도 많을 때는 하루에 수 차례 편의점에 들릅니다. 김애란의 소설 속 ‘나’의 말처럼 “편의점에 감으로써 물건이 아니라 일상을 구매하게 된다는 생각”을 저도 이따금씩 하게 됩니다.

“나는 세븐일레븐을 지나며 ‘저렇게 많은 물건 중 설마 내게 필요한 게 한 가지도 없을까’ 의심하게 된다. 그러면 세븐일레븐은 틀린 답을 고쳐주며 학생의 머리를 쓰다듬는 상냥한 선생님처럼, 내 손에 무언가를 들려 내보낸다.”
- 김애란 <나는 편의점에 간다>

이 ‘상냥한 선생님’은 이제 노래의 소재로도 등장하게 됐습니다. 한국 힙합의 대부 드렁큰 타이거가 부르는 <편의점>, 우리가 늘 마주하는 편의점에 대해 곱씹어보게 만드는 노래입니다.

“편의점 인생인 날 깔보는 거야”
-드렁큰 타이거 <편의점>

‘편의점 인생’이라는 가사가 유달리 명징하게 들려옵니다. 남들은 잘 시간에 파스를 붙이며 일하고 있는 자신의 삶을 자조적으로 읊조린 표현인 듯합니다. 다른 사람의 ‘편의’를 위해 정작 본인은 ‘불편’을 감내해야 하는 존재, 그런 삶.

“지금 당장 주위를 한번 돌아보라. 편의점에서 한 끼 식사를 해결하면서 비닐봉지 한 개 분 정도의 내일을 준비하는 동료나 친구, 이웃이나 친척이 얼마나 많은지”
- 전상인 <편의점 사회학>

©픽사베이

‘편의점 인생’은 이처럼 편의점 아르바이트생만이 전유할 수 있는 표현은 아닙니다. “비닐봉지 한 개 분 정도의 내일을 준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편의점 인생’의 테두리 안에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24시간 환한 불빛으로 고객을 맞이하는 편의점. 하지만 편의점의 주된 관심은 고객이 아니라 고객이 사는 물건입니다. 김애란의 소설 속 ‘나’는 편의점에 갔던 사이 이별을 했고 죽을 만큼 아팠지만, 이 모든 것을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또한 편의점에서 마주쳤을 다양한 사람들, 그들의 사정과 애환. 이런 것들에 대해서 편의점은 묻지 않습니다. 김애란은 이를 ‘거대한 관대’라고 씁쓸하게 표현을 합니다.

“외쳐 내가 밉다고
소리쳐 내가 싫다고”
- 드렁큰 타이거 <편의점>

우아하게 또한 너무도 당연하게 편의점에서 ‘편의’만 누리는 우리. 한번쯤은 ‘편의점 인생’들에게 시선을 돌려보고, 그들의 불편으로 지탱되고 있는 우리의 편의에 대해 숙고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요?

편의점이라는 유통채널에 대한 경영학적 분석은 넘쳐나지만, ‘편의점 인생’에 대한 통찰은 태부족한 이 각박한 시대. 아래에 사회학자의 조언을 들려 드리며 글을 마칩니다. 

“‘편의’라는 미명 아래 우리 사회가 정작 어떤 방향으로 치닫고 있는지 이 땅의 인문학과 사회과학은 편의점 문제에 대해 좀 더 많은 관심과 깊은 성찰을 할애할 필요가 있다.”
- 전상인 <편의점 사회학> 

 석혜탁

 대학 졸업 후 방송사에 기자로 합격. 지금은 모 기업에서 직장인의 삶을 영위. 
 대학 연극부 시절의 대사를 아직도 온존히 기억하는 (‘마음만큼은’) 낭만주의자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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