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균의 활쏘기]

얼마 전 만났던 전직 관료는 요즘 공무원 조직이 흔들리고 있다고 걱정했다. 정치인들이 흔들리더라도, 공무원이 중심을 잡고 흔들리지 않아야 나라가 바로 선다는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후배 공무원들을 보면 이런 자부심이 없는 것 같다는 것이다.

그의 걱정을 들으면서 조원동 전 경제수석과 문형표 전 복지부 장관의 모습이 떠올랐다. 불구속 기소된 조 전 수석과 긴급 체포된 문형표 전 장관은 우리 시대의 일그러진 모습이다. 그들은 선망이 대상이고 성공한 관료의 표상이었다. 안타까운 일이다.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27일 서울 강남구 최순실 특검 사무실에 소환되고 있다. ©포커스뉴스

단지 그들이 죄를 지었다고 해서, 죄를 의심받고 있다고 해서 안타까운 것은 아니다. 권력을 좇아서, 아니면 권력에 굴복해서 그렇게 된 것이기에 안쓰러운 것이다. 소신껏 일하거나 적극적으로 일하다가 잘못해 그리되었다면 그리 안타깝지 않았을 것이다.

일선에서 취재할 때 공무원들에게 ‘왜 공무원을 하는가’라고 물었던 때가 있다. 솔직한 심정을 듣고 싶었다. 개인적인 얘기지만 나의 부친이 공무원이었다. 어릴 적에 박봉의 기억 때문에 공무원이 되지 않겠다고 마음을 먹었기에 궁금한 질문이기도 했다.

대답을 요약하면 한마디로 남에게 대우받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자랑하고 뻐기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이다. 처음부터 나라와 사회에 국민들에게 봉사하려는 마음에서 시작했다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리 솔직한 대답은 아니었던 것 같다.

얼마 전에 주위에 있는 분들에게 들은 얘기다. 구청에 함께 근무하는 젊은이가 결혼을 했는데 지역에서 많은 분들이 와서 부러워하며 축하해 주었다고 했다. ‘부부가 공무원이니 노후 걱정이 없어 얼마나 좋겠는가’ 하는 마음에 부러워했다는 것이다.

시간이 되면 노량진에 한번 가봐야 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학원이 많고, 공무원이 되려고 공부하는 사람이 많다고 해서다. 지방의 어느 대학은 공무원이 될 수 있도록 가르치는 대학이라는 점을 적극 홍보하기도 했다. 청년들의 가장 선망하는 직업이 공무원이 된 지 오래되었다.

노량진에서 공무원 준비를 하는 이들에게 ‘왜 공무원이 되려는가’라고 질문하면 어떤 대답이 나올지 궁금하다. 아마도 뻐기고 싶은 마음보다는 안정된 생활을 하기 위해서라는 대답이 훨씬 많을 것이다.

한창 애들을 키울 나이에 직장에서 쫓겨나지 않고, 노후 걱정을 하지 않으면서 살고자 하는 공무원들을 탓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요즘 세태에 누군들 그러하지 않겠는가 하는 점에서 하는 말은 아니다. 안정적인 생활을 보장받는 대신에 포기하는 것도 있을 것이다. 오히려 적극적이고 뻐기는 공무원보다 안정적인 관리형 공무원이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다만 본인의 안정된 생활만을 위해 공익과 시민의 권익을 짓밟거나 공익과 시민의 생활을 생각하지 못하는 무능한 공무원들은 발붙이지 못하도록 해야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일례로 의정부시 용인시 등에 건설한 경전철을 보면서 어떤 공무원들이 이런 시설을 생각하고 만들었는지 혀를 차게 된다.

지방공무원 임용 필기시험이 실시된 6월18일 인천 연수구 청학공업고등학교에서 수험생들이 시험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포커스뉴스

내가 사는 동네는 서울에서도 작은 구에 속한다. 기업이 없어 재정이 든든하지 못해 제대로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이 구청장이 늘 하는 말이라고 들었다. 그리 잘살지도 못하고 강남도 아니라서 그런지 늘 같은 당에서 구청장과 의원이 당선되는 곳이고, 구민들은 구정에 별로 관심도 없는 조용한 곳이다. 재정이 신통치 않아 다른 구처럼 구청사도 새로 짓지 못한 곳이다.

이런 동네에 작은 소동이 벌어졌다. 법원이 이전하는 자리에 새로 구청사를 짓는다고 하자 구민들 사이에서 반대의 목소리가 나온 것이다. 법원이 이전한 자리에 구민들을 위한 시설이 생기지 않을까 기대했던 구민들과는 아무런 상의도 하지 않았다. 물론 구청장은 구민들을 위한 시설도 짓겠다고 할 테지만 말이다. 구청사를 짓더라도 미리 구민들의 의견을 들어보는 척이라고 해야 하는데 일방적으로 결정하자 조용한 구민들이 불만을 표출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 구 예산이 얼마나 되는지 찾아보았다. 구청 홈페이지에 들어가 찾아보니 4000억원쯤 되었다. 이중 인건비가 약 900억원이었다. 약 25%가 공무원 등의 인건비로 지출되는 구조였다. 세금의 4분의 1이 공무원 월급이라니 예상보다 많다고 생각되었다. 구의원들의 봉급도 포함되었을 것이다.

구청사만 새로 지으려는 생각에 빠진 구청장과 공무원들에게 주는 월급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시민들의 생활과 공익보다는 공무원부터 생각하는 공직자들이기에 그렇다. 물론 구청사도 시민을 위한 시설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면 결정하는 방식이나 내용이 달라져야 되었을 것이다.

하기야 내가 사는 곳의 예산이 얼마이고 공무원 숫자와 그들에게 주는 인건비가 얼마나 되는지 한번 관심도 없던 사람에게도 책임은 있다. 구의원들이 해마다 시찰이라는 명분으로 해외여행을 가는 데 대해 지적하면서도 예산 규모도 모르는 터였다. 시민들도 구의원 필요 없다고 비판만하지 말고 우리 동네 예산이 얼마이고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 적극 알아보고 관심을 보여야 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가 내는 돈으로 월급 주는데 제대로 일하는지 감시까지 해야 하니 안타까운 일이기도 하다. 공무원과 공조직이 하는 일은 시민들이 나타내는 관심에 비례하는 것 같다. [오피니언타임스=박영균]

 박영균

 전 동아일보 논설위원 

 전 한국경제·한겨레 기자 

 전 세계미래포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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