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이의 어원설설]

-무한반복되는 “그건…그래서…그래갖고…그래서…또…” (ㅎ신문)

-박근혜 화법 전문가, 박 대통령 말 분석…“확, 그냥, 뭐 이렇게” 드라마서 배운 저급 단어 사용(ㅈ일보)

일간지들이 박근혜 대통령이 기자간담회에서 보인 ‘화법’에 문제제기를 했습니다.
문장 연결어가 매끄럽지 못하고 사용된 단어가 저급하다고 꼬집은 겁니다.

“대통령 화법이 원래 그런데… 그동안 문장 만들고 다듬어주어서 그렇지… 이제 와서  말 연결이 안된다! 단어선택이 어떻다! 새삼스럽게~”하며 대수롭지 않게 봤습니다.

동이 눈에는 오히려 간담회 전문 중 ‘잘 안쓰는 단어’ 하나가 들어왔습니다.
‘슬그머니’란 표현이 그것이었습니다.

“참 마음이 무겁고, 그런 심정입니다. ‘세월호 참사가 벌어졌는데 대통령이 밀회를 했다’ 이런 정말 말도 안 되는~ 그게 또 슬그머니 꼬리를 감추더니만~ 그 다음에는 굿을 했다고…” (박 대통령)

게이트의 의혹들이 ‘슬그머니’ 없어지지 않을까 염려되면서도 한편으론 이 단어에 대한 궁금증이 발동했습니다.

‘슬그머니’의 사전적 풀이는 ‘△남이 알아차리지 못하게 슬며시 △혼자 마음속으로 은근히 △힘을 들이지 않고…’입니다.

이 말은 어디서 왔을까?

여기저기 뒤지다 ‘슬슬’이라는 말을 만났습니다. ‘슬슬’의 사전적 풀이 역시 ‘남이 모르게 슬그머니 행동하는 모양’입니다. 나아가 △눈이나 설탕 따위가 모르는 사이에 스르르 녹아 버리는 모양 △심하지 않게 가만가만 거볍게 만지거나 문지르는 모양이라는 뜻으로도 쓰입니다.

그렇다면 슬슬이라는 말은 또 어디서?
많은 우리말이 그렇듯 이 역시 한자와 관련이 있거나 단순한 행동에서 유래된 단어일 가능성이 크다고 봤습니다.

흔히 ‘슬슬긴다’고 얘기하지요. 아기들이 걷기 전에 길 때의 모습을 상상해보면 됩니다.
어린애가 기는 모습! 무릎을 구부린 채 천천히~깁니다.
그런 연유로 ‘슬슬’이라는 말은 무릎 슬(膝)에서 온 것으로 동이는 추정합니다. ‘슬슬기다’, 다시말해 ‘무릎으로 긴다’ ‘천천히 긴다’에서 왔을 것이란 얘기입니다.

©픽사베이

비슷한 말로 ‘슬금슬금’이 있습니다. ‘슬금슬금’이 ‘슬슬’보다는 먼저일테죠. 슬금이라는 말이 무릎의 슬(膝)과 오금의 ‘금’이 합쳐진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금이 저리다’할 때의 바로 그 오금입니다. 무릎이 구부러지는 오목한 안쪽...

그러니까 ‘무릎으로 긴다’는 의미에서 ‘슬금슬금으로 긴다’로 초기 표현이 됐을 것이고 이후 ‘으로’가 탈락되면서 ‘슬금슬금 긴다’로 진화됐다고 봅니다. 그러다 ‘슬금슬금’에서 ‘금’마저 탈락돼 ‘슬슬’이라는 단독어로도 쓰였을 겁니다.

‘슬금슬금’에서 ‘슬금>슬그머니’'슬슬'로 분화돼가고 ‘슬슬’이 ‘살살’로도 바뀌었겠죠.
‘슬슬기다’나 ‘살살기다’는 의태는 좀 다르지만 ‘천천히 긴다’는 점에서 같고 한뿌리라 할 수 있습니다. ‘살살’과 ‘슬슬’의 차이라면 ‘살살’은 ‘슬슬’보다 남에 눈에 잘 안띠게 움직이는 것.

‘슬금슬금’에서 ‘살금살금’으로도 갔겠죠.
‘슬쩍’으로도 가서 ‘살짝’이 나오고, ‘슬며시’로 가서 ‘살며시’로 나오고, ‘슬그머니’로 가서 ‘살그머니’로도 가지치기했을 겁니다.
‘슬슬기다’에서 ‘설설기다’로 가면서 표현은 더 강해지죠.

공교롭게 우리말 ‘슬슬’과 영어 ‘슬~로우’의 두음(頭音) ‘슬’의 발음이 비슷합니다. 둘다 발음이 늘어집니다. 동서의 언어라는 것이 태초에 비슷하게 생긴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요즘 ‘슬로우 라이프’라 해서 느린 삶의 여유를 즐기는 이들이 늘고 있습니다. 복잡한 도시를 떠나 전원 속을 천천히 걸으며 사색하고 환경친화적 식생으로 여가를 누리거나 여생을 보내는 이들 말입니다.

바쁘고 고단한 생활로 여유가 없지만 새해에는 ‘슬슬 사는 삶’에 한번 도전해 보는 게 어떨까요? [오피니언타임스=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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