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이의 어원설설]

산타마을로 변신한 경북 봉화의 작은 간이역(분천역)이 연일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분천역은 1956년 1월1일 영암선(지금 영동선) 개통과 함께 들어선 간이역으로 하루 이용객 10명 안팎에 불과했던 산골오지입니다. 그러던 곳에 V-train 협곡(산타)열차가 선보이면서 ‘산타의 기적’이 찾아왔습니다. 4계절 크리스마스를 경험할 수 있게 크리스마스를 테마로 리모델링한 분천역사와 산타클로스, 루돌프 조형물, 트리장식 등 각종 볼거리가 동심을 자극해 3년새 35만명의 관광객이 다녀간 것입니다.

경북 봉화 분천역 산타마을을 찾은 관광객들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코레일

북새통!

‘많은 사람이 야단스럽게 부산을 떨며 북적이는 상황’을 일컫는 말입니다. 어원과 관련해서도 북새통만큼이나 설이 분분합니다.

사투리 ‘복새통’이 말뿌리라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북풍을 뜻하는 변방의 북새(北塞)풍에서 왔다는 설도 있습니다.

“금을 골라낸 뒤에 남은 광석 가루를 복대기통에 넣어 흔들고 약품 처리를 하는 과정이 매우 복잡하고 어수선하며, 그 소리 또한 시끄러웠다. 그 복대기통이 복새통>북새통이 된 것이다~”(복새통이 말뿌리라는 주장)

“북새풍은 겨울에 부는 바람으로 워낙 거칠어 이 바람이 불면 난리통과 같이 된다~해서 북새통이 됐다”(북새파)

동이는 사금채취 현장이나 북새풍에서 비롯된 말이라기보다 농경생활과 밀접한 북새기(풀이 메마른 채 쌓인 더미)에서 온 것으로 봅니다.

“어렸을 적 화장실에서 짚북새기를 밑닥개로 사용했지요~”

어느 카페에 있는 시골집 관련 글 한토막입니다.

신문지도 없었던 시절엔 지푸라기나 짚북새기를 화장지 대용으로 썼습니다. 그러다 신문지, 종이, 화장지로 차츰 업그레이드돼왔습니다. 짚북새기도 귀했던 두메산골에서는 아예 뒷간 한편에 굵직한 새끼줄을 늘어뜨려놓고 일을 본 뒤에 ‘걸터앉아 왔다 갔다’ 했습니다.

그때 그 시절 우리의 생활공간 가까이에 짚북새기가 있었습니다. 수북하게 쌓여있는 더미를 ‘북석이’라 불렀고 이것이 북새기로 변화된 것입니다.

경남 함안 농요보존회 회원들이 ‘보리타작’을 재연하고 있다. ©함안군

짚과 짚북새기의 차이는?

짚은 볏단에서 알곡을 추수하고 남은 볏짚이고, 짚북새기는 탈곡과정에서 생겨난 크고 작은 볏짚의 파편입니다. 지금이야 트랙터가 벼를 베면서 알곡이 자동으로 수확되지만 옛날엔 볏단으로 묶어나른 뒤 날잡아 집마당에서 타작했습니다. 발로 밟거나 발동기를 돌려 타작기가 돌아가게 하는 방식이었죠.

볏단을 타작기에 대면 알곡은 앞에 떨어지고 알곡과 함께 볏짚에서 부서져 나간 자잘한 지푸라기(북새기)는 알곡주변에 쌓입니다. 1차 타작이 끝나면 알곡은 가마니에 담고 짚북새기와 다소간의 알곡이 섞인 것들은 갈퀴로 긁어 한편에 모아둡니다. 타작이 끝나고 시간이 날 때 시골아낙들이 바람개비와 키를 이용해 알곡과 북새기를 분리하는 일을 했습니다.

선풍기처럼 생긴 바람개비를 한사람이 돌려 바람을 일으키면 옆에 서있는 사람이 한아름의 짚북새기를 위에서 아래로 떨어뜨립니다. 이때 알곡은 가까운 곳에 떨어지고 먼지같이 자잘한 짚북새기들은 뿌옇게 퍼지며 멀리 날아갑니다. 대청마루는 물론 부엌, 방안까지 비집고 들어갑니다.

바람개비 작업을 하는 날이면 짚북새기로 집 안팎이 난리가 났습니다.

물론 타작하는 날에도 비슷했지만… 머리와 속옷까지 파고들면서 북새기가 주는 까끌까끌함이란 상상 이상입니다.

이렇게 ‘북새기가 온통 날리는’ 현상을 시골에선 북새통이라고 불렀습니다.

사금을 만들었던 일부 지역의 사투리인 복새기통이 북새통이 된 게 아니라는 논거가 됩니다. 복새기통이라는 방언이 북새통의 뿌리라면 복새기통은 지금쯤 사투리가 아닌, 표준말의 반열에 올라와 있어야 합니다.

감자나 고구마 등의 수확량을 늘리려면 밭고랑을 ‘북돋아’ 줘야 한다. 지난해 10월 울산 농소1동 주민자치위원회가 유치원 어린이들과 함께 고구마 수확 체험을 진행하고 있다. ©울산 북구청

‘북을 준다’는 말이 있습니다. 작물 주변의 흙을 긁어모아 불룩하게 덮어주는 일이죠. 작물이 쓰러지지 않고 감자나 고구마 같은 뿌리식물은 알이 잘 들게…

여기서의 ‘북’은 ‘북돋우다’의 ‘북’과 같은 뜻이며 북새통이나 북석이의 ‘북’과도 같습니다. ‘수북하다’고 할 때의 ‘북’ 역시 마찬가지죠. ‘북적이다’ ‘북적북적’의 ‘북적’이나 ‘불룩하다’의 ‘불’, ‘배부르다’의 ‘부르’도 삼촌/사촌지간입니다.

많은 우리 말이 농경문화에서 나왔듯 북새통 역시 농사와 관련된 말에서 비롯됐다고 봐야 합니다. ‘까분다’‘까불다’라는 말이 알곡을 ‘까고’ 나서 키로 바람을 일으켜 ‘분다’는 합성어에서 나왔듯이… 키로 알곡을 까부르는 일이란 무척이나 체신머리 없지요.

요즘은 트랙터로 벼를 수확하기 때문에 짚북새기도 보기 어렵습니다. 아울러 북새통같은 말도 점점 멀어져가고 있습니다. 짚북새기를 밑닥개로 사용했던 때가 불과 한두 세대 전인데…

북새통이라는 말도 한두 세대가 지나면 더욱 더 생경한 말로 다가오지 않을까? 기우 아닌 기우를 해봅니다. [오피니언타임스=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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