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규진의 청춘사유]

밤 11시가 넘어가면 배고파지는 것이 원래 인간인가. 이때부터는 별별 생각이 다 든다. 재빨리 치킨 집에 전화해서 양념 반, 후라이드 반으로 풍족한 육질을 즐길 것인가. 편의점으로 달려가서 삼각 김밥과 컵라면을 납치하여 숨죽이고 흡입할 것인가. 이것도 아니라면 냉동실에 얼어버린 채 숨 쉬고 있는 만두를 끄집어 내, 그들의 온 몸에 약간의 물기만 칠하고 전자레인지에 돌려 뜨거운 속을 탐(貪)할 것인가. 나는 더 이상의 상상을 멈추고, 비빔면 두 개를 먹기로 결정했다. 그들은 언제 어디서나 본연의 ‘찰랑거림’으로 나를 만족시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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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물에 담겨진 그들은 이내 끓어버린다. 국물라면 보다 면발이 얇기 때문에 끓는점에 도달하기 전 이미 그들은 자신의 몸을 풀어헤치기 시작한다. 서서히 거품을 뿜어내며 냄비 구석구석을 뛰어 놀듯이 춤을 추고, 나는 그들의 힘이 어느 정도 빠져나갈 때쯤 망설이지 않고 은색 채반에다가 사정없이 부어버린다. (이때 중요한 것은 완전히 힘이 빠졌을 때가 아닌 ‘어느 정도’ 빠져나갔을 때이다.) 그리고 심폐소생술을 하듯 그들에게 찬물을 투하한다. 표면뿐만 아니라 온 몸을 들쑤시며 구석구석 찬물을 흘려보내줘야 전체적으로 생기를 되찾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생수로 그들의 몸을 말끔히 씻겨주면 끝.

액상소스를 가위로 잘라 (혹여나 손으로 뜯다가 소스의 일부가 튀어나가 버리면 지금까지의 노고가 수포로 돌아간다는 것을 명심하자) 그릇에 담긴 새하얀 면 위에 붉은 그것을 서서히 흘려보낸다. 액상 껍데기 가장자리에 있는 소스까지 놓치지 않고 짜내어 면 구석구석을 발라야 한다. 그래야 그들의 태생적 본질인 ‘비빔’면이 될 수 있다. 식감을 더하기 위해 참기름을 좁쌀만큼 떨어트리면 완성이다. 혹시 냉장고에 놀고 있는 오이가 있다면 몇 가닥 썰어 사뿐히 놓으면 모양새까지 갖춰진다.

먹기 전 눈앞에 놓인 비빔면을 이리저리 훑어보니 그 자태가 심히 아름답다. 배 속에서 보내는 신호도 무시하고, 눈에 간직하듯이 한 번 더 바라본다. 그리고 그들을 내 몸속으로 받아들인다. 입 속에서 찰랑거리는 몸짓에 내 몸은 황홀경에 빠지고, 나도 모르게 눈을 감고 맛을 감상한다. 이 시간이 멈추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내면 깊은 곳에서 올라올 때쯤, 한 젓가락을 다시 혀 위에 올려놓으면 극도의 만족감이 지속된다. 그릇 바닥이 보이기 시작하면, 다음 날 혹시 배가 아프진 않을까 걱정되지만 그래도 오늘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며 미소를 머금어본다. 밤늦게 야식을 범해버렸다는 자책감보다 심리적 포만감이 더 큰 이 순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눈을 감는다. 타자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나 혼자만의 시간. 혼자이지만 외롭지 않고, 따뜻한 공기가 감도는 순간.

청년들이 살기 힘겨운 세상이 되어버렸지만, 하루를 돌아보면 행복해질 수 있는 조각들이 널려있다. 다만 그것을 내 삶의 행복 퍼즐로 맞추기 않기 때문에 우리는 불평에 익숙해진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내일 다시 찾아올 밤 11시를 기다리며 행복해지기로 결정했다. 밤 11시의 행복 조각을 품에 넣고, 또 다른 조각을 발견해야지. 인생은 원래 이렇게 즐거운 것이다. [오피니언타임스=심규진]

 심규진

 한양대학교 교육공학 박사과정

 청년창업가 / 전 포스코경영연구소 컨설턴트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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