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인칼럼]

‘놀아도 돈주겠다!’

탄핵정국에서 대선정국으로 흐름이 빠르게 바뀌면서 대선후보 진영의 무상공약 전쟁이 후끈 달아오를 조짐입니다. 지지율 답보상태의 후보일수록 표심을 파고들 ‘킬러 콘텐츠’가 절실하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기본소득제. 야권 잠룡들의 러브콜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기본소득제는 말 그대로 국민 모두에게 조건없이 기본생활이 보장되는 수준의 급여를 주는 제도입니다. 일하지 않아도, 일할 의사가 없어도 지급한다는 점에서 실업급여나 실업수당과 다릅니다.

지난해 11월 국회에서 열린 ‘비상시국 정치회의’에 참석한 야권 대선주자 8인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과 이재명 성남시장은 기본소득제를 핵심 정책으로 내걸었다. ©포커스뉴스

 지난해 6월 ‘월 300만원’ 도입여부를 결정하는 스위스 국민투표 소식이 전해지면서 기본소득제도가 눈길을 끌었습니다. 최근엔 핀란드가 일자리를 잃은 국민 2,000명을 선정해 2년간 매달 587달러(약 71만원)의 기본소득을 준다는 정책을 내놨습니다. 시범이지만 기본소득을 지급하기는 유럽에서 핀란드가 처음입니다. 성과를 보아 프리랜서, 소기업가, 파트타임 근로자를 아우르는 저소득층까지 넓혀간다는 계획인 걸 보면 역시 복지선진국입니다.

국내로 눈을 돌리면 무상급식이나 무상교육·보육, 성남시 청년수당, 서울시 무상시리즈가 초기 형태이긴 하나 이 제도의 변형이거나 연장선상에 있는 정책들입니다.

잘 살아보세~하며 새벽잠 잊고 생업현장을 누볐던 ‘올드세대’에겐 상상하기 어렵고, 수구시각에선 사회주의 이념의 색채가 물씬 풍기는, ‘공산주의 발상’으로 비춰질만한 정책입니다. 그러나 부실한 사회안전망에 경기침체, 빈부 양극화, 청년실업과 같은 난제들이 겹쳐져 정파와 이념을 떠나 정책테이블에 올려야 한다는 목소리 또한 커지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정치권에선 지난해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전 대표가 포용적 성장차원에서 이 제도를 언급한 뒤 외연이 확대되고 있습니다. 청년수당을 만든 이재명 성남시장은 연간 50조원의 복지재원구상까지 내놓으며 한발짝 더 나갔습니다. 박원순 서울시장도 이에 질세라 아동수당, 구직기 청년수당, 성년의 실직·질병에 대비한 실업부조제, 상병 수당제, 장애수당, 노인 기초연금 등 다채로운 한국형 국민기본소득 구상을 선보였습니다. 재원 마련은 세출 조정과 기존 복지제도의 개편을 통해 충분히 가능하다는 설명과 함께… 정운찬 전 국무총리나 일부 사회단체들도 가세하는 양상입니다.

대선후보 입장에서 기본소득제는 ‘가성비 높은’ 공약입니다. 경기침체와 실업난이라는 난공불락의 과제 앞에 여권주자들 역시 비켜가기 쉽지 않습니다. 무상보육·교육 공약을 놓고 한때 좌우진영이 치열하게 부딪치다 결국 도입됐듯이 말입니다.

‘일 안해도 생활비 주겠다’는 데 마다할 유권자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걱정스러운 건 공약으로 끝나지 않을 거라는 점입니다. 발 빠른 증권시장에서는 기본소득제 도입시 ‘소득이 적은 고령층의 소비행태가 바뀔 것’이라며 관련주들이 들썩이기 시작했습니다.

 기본소득제는 재정투하로 이어지게 돼있습니다. 세출조정과 기존 복지제도 개편만으론 한계가 있는 정책입니다.

©픽사베이

복지제도란 게 특성상 한번 생기면 없애기 어렵습니다. 기존 복지제도 개편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 잘못 손대면 다른 쪽에서 탈이 납니다. 이른바 풍선효과입니다. 지난 대선때  ‘65세 이상 모든 노인에게 월 20만원 지급한다’는 공약이 국민연금으로 불똥이 튀었던 게 대표사례입니다.

올해 복지예산만 129조원. 전체예산의 3분의 1 가까이 됩니다.

기본소득제가 도입되면? 소비성 복지예산은 눈덩이처럼 불어날 겁니다.

한때 복지천국이던 일부 선진국이 모라토리엄으로 몰린 데는 복지포퓰리즘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당장은 달콤하나 종국엔 팍팍한 살림에 세금만 더 내게 되는 ‘복지확대-증세’의 악순환으로 이어질 게 분명합니다.

보다 우려스러운 일은 또 있습니다. 근로의욕 상실입니다. ‘무노동 유임금’에 안주하려는 계층이 늘면서 노동시장이 급격히 잠식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것만으로도 국가경쟁력엔 독입니다. 성장잠재력을 갉아먹고 한편으론 계층 이동마저 봉쇄시켜  ‘빈곤의 습관화’를 고착화시킬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한겨울에도 시설원예 하우스에선 일손이 모자랍니다. 그럼에도 취업과 퇴직을 반복하며 ‘실업급여에 안주하는 삶’을 영위하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놀아도 돈 주겠다!”가 아니라 “일 해라! 그러면 돈주겠다!”고 해야 합니다. 구인난을 겪는 현장에 노동인력을 연계해주는 인력뱅크사업부터 착수해야 합니다.

가나안 농군학교에서는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고 가르칩니다. ‘개인이든, 나라든 일하지 않으면 망한다’는 뜻과 다르지 않습니다. 기본소득이 됐던, 무상소득이 됐던 성장잠재력과 근로의욕 불씨를 살려나가는 큰 틀에서 성안되고 추진돼야 바른 방향입니다.

“대선주자 그리고 잠룡들 너도 나도, 기본소득제… 기왕 줄거면 먹고 살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줘라? 단, 나라 축내지 말고 당신 돈으로 줘라?”

인터넷에 올라 온 글입니다.

취지는 좋지만 나라 곳간도 생각하라는 지적입니다. 기본소득제 도입을 압도적 표차로 부결시킨 스위스 국민이나 대한민국 네티즌들이 정치권보다 앞서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정치권을 비롯, 국가운영 주체들이 잘 새겨야 할 대목입니다. [오피니언타임스=권혁찬 편집인]

 권혁찬

 오피니언타임스 대표  

 전 서울신문 경제부장·편집부국장

 전 스포츠서울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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