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구의 문틈으로 보는 금융경제]

중국 관광객들이 한국을 피해 일본으로 몰려간다고 한다. 사드 배치 결정에 따른 혐한류 탓도 있지만 쇼핑만족도 차이도 중요한 요인이라는 분석이다. 지난 연말 국내 한 항공사의 일본 오사카 지사장을 사위로 둔 지인은 이렇게 말했다.

“사위 말에 따르면, 일본에 오는 중국관광객들이 한일 관광의 큰 차이로 쇼핑만족도를 꼽는다고 해요. 한국에선 힘들게 흥정해서 싸게 산 줄 알고 좋아했는데 나중에 더 싸게 산 사람을 만나는 통에 기분을 망친다는 거에요. 일본에선 같은 물건이라면 어디서 사도 가격이 같아 쇼핑하면서 혹시 속는 게 아닐까하는 불안도 없고 더 싸게 구입한 사람을 만나 속상한 일도 없어 좋다고 한대요.”

국내의 경우 백화점이나 마트, 수퍼에선 흥정할 일이 없지만 시장에선 여전히 흥정 솜씨에 따라 값이 달라지다 보니 관광객들의 불만도 크다는 얘기다.

©픽사베이

같은 물건을 남보다 비싸게 사면 기분 나쁜 건 관광객에 그치지 않는다. 속았다는 느낌 때문에 금액에 상관없이 두고두고 속이 쓰리다. 문제는 유통채널 증가에 따라 소비자의 선택 폭이 넓어지면서 가격 비교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물론 유통채널에 따라 특성이 다른 만큼 소비자들의 고정관념도 만들어졌다. 백화점은 ‘가격은 비싸지만 품질을 믿을 수 있고 서비스가 좋은 곳’, 편의점은 ‘생필품이 떨어졌지만 시간 상 다른 곳에 갈 수 없어 비싸도 가는 곳’, 대형할인점은 ‘서비스는 부족하지만 값이 싼 곳’이라는 식이다.

그러나 최근 이 공식도 깨지고 있다. 수입맥주를 묶어서 싸게 파는 편의점이 늘어나면서 ‘편의점은 비싼 곳’이란 고정관념이 무너졌다. 백화점 역시 짧은 기간(시간) 동안 특정물품을 대폭 할인하는 특판행사를 하는데 그럴 때 해당품목을 구입하면 마트보다 싸다.

이러니 물건값 비교는 고등수학보다 어렵다. 오랫동안 맞벌이를 한 데다 은퇴 후 시간이 많다 보니 장보기는 주로 내 몫이다. 백화점에도 가고 대형 할인점이나 동네 슈퍼에도 들른다. 그런데도 화장실용 휴지는 도통 어디서 사야 가성비(가격대비 성능비율)가 좋은지 감이 안잡힌다. 제조사도 많지 않은데 어디서 사는 게 유리한 지를 통 알아차릴 수가 없다. 유통경로별로 다른 이름의 제품을 출시하는 건지, 같은 회사 제품이라도 두겹 또는 세겹이냐에 따라 이름이 다른 건지 상품명은 많고 그 중 나은 것을 찾아내기 어렵다. 유통채널의 입김이 제조업체를 능가하다 보니 채널별 가격비교를 어렵게 하려는 것일까 싶지만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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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비교가 어려운 건 생활용품에 국한되지 않는다. 고도성장 시절 우리나라는 외국자본에 크게 의존했다. 금액이 큰 차관도입의 경우 주로 신디케이션(syndication, 대주단), 곧 여러 국제은행이 함께 대출을 해주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산업은행 등 국책은행이나 주요 재벌 등이 이런 방식으로 차관을 들여왔다. 달러 대출 시 금리는 기본적으로 리보(LIBOR, 런던은행간 금리)에 가산금리를 더해 적용한다.

실제론 가산금리 외에 간사수수료나 약정수수료 등 부대비용이 별도로 정해지지만 차관 도입업체나 기관은 국내 언론플레이를 위해 가산금리를 얼마 낮췄다는 홍보에만 열중하다 보니 외국은행들은 가산금리는 낮춰주고 부대비용을 높게 책정하는 편법을 쓰기도 했다. 돈을 빌려주는 외국은행에서는 소위 올인프라이싱(all in pricing)이라고 해서 부대비용을 포함한 실질적인 가격을 계산해 대출 결정에 반영하는데 우리나라 언론에서는 단순 가산금리에만 관심을 쏟았기 때문이었다. 겉으로 드러난 가격과 실제가격이 달라지는 이유였다.

소비자 금융상품도 마찬가지다. 개인들의 재산형성 방식이 단순 저축에서 투자상품 선택으로 확대되고 있다. 저축성 예금의 경우 은행별 금리 비교가 쉽지만, 펀드나 저축성보험의 경우 불확실한 투자수익률 외에도 제반수수료 가격 비교가 용이하지 않다. 저금리시대를 맞아 수신 수익률이 낮아서인지 은행마다 펀드나 방카상품 가입을 권유한다.

그런데 펀드나 방카상품 판매 수수료는 제조사인 자산운용사나 보험사가 고객에게 받은 돈 중 일부를 떼어 은행에 지불하는 것이다. 소비자는 자기돈 중 얼마가 은행에 지불되는지조차 모른다. 결국 은행은 고객에게 유리한 상품보다 은행수수료가 많은 상품을 팔려는 유혹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이 때문에 네델란드 등 일부 선진국에선 펀드나 방카슈랑스 상품을 판매할 때 판매채널(은행 등)이 받는 수수료를 제조사가 아닌 고객으로부터 직접 받도록 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금융상품도 가격 비교를 쉽게 할 수 있게 만들어 소비자들을 보호하려는 것이다. 고객만족이나 고객감동은 말로만 하는 게 아니라 이렇게 실질적인 차원에서 이뤄져야 마땅하다. [오피니언타임스=김선구]

 김선구

 전 캐나다 로열은행 서울부대표

 전 주한외국은행단 한국인대표 8인 위원회의장

 전 BNP파리바카디프생명보험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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