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희의 꼼꼼세설] 해방구로 변한 숲길공원 장터

“이 빵 정말 맛있다. 어디서 샀니?” “우리 동네 빵집에서” “하긴, 청담동에서 파는 건데 뭔들 안 맛있겠니.” 고등학교 동창들끼리 주고 받는 얘기다. 사는 지역이 계층을 대변하다 못해 음식이나 물건의 품질까지 보장하는 모양이다. 씁쓸하다.

동네 이미지를 만드는 요소는 여러 가지다. 학군, 유치원과 유아원, 교통, 백화점 등 편의시설, 공연장 같은 문화시설, 관공서, 병원, 공원과 녹지, 누가 사느냐 등. 이 모든 것이 더해져 집값을 결정하고, 집값은 동네 이미지를 만들고, 동네 이미지는 계층을 구분한다.

서울의 강북과 강남도 이렇게 갈라졌다. 세칭 명문고등학교는 물론 유명학원까지 ‘사대문 밖 이전 정책’에 따라 강남으로 이사해 8학군을 조성하고, 관공서와 공기업, 병원을 옮기는 사이 강남 집값은 천정부지로 오르고 강남은 선진동네, 강북은 후진동네가 됐다.

경의선 숲길 공원 ©노웅래 의원 홈페이지

그러던 강북에 최근 ‘핫한’ 지역이 생겼다. 마포 공덕역 일대가 그곳이다. ‘홍대앞’이 유명해진 뒤에도 마포는 여전히 새우젓동네 내지 마포종점 이미지를 벗지 못했다. 그 마포, 거기서도 공덕역과 마포역 일대가 북촌, 서촌, 홍대앞 같은 관광지가 아니라 주거지로 떴다.

공덕역 인근이 뜨는 첫째 이유는 교통 편의성 덕분이다. 5호선과 6호선, 공항철도, 경의선이 겹치는 공덕역의 편리함이 알려지면서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상암동에 방송국과 관련업체가 몰린 것도 공덕역 바람에 기름을 부은 것처럼 보인다.

재개발도 한몫 했다. 공덕역을 따라 닥지닥지 들어서 있던 야국, 해당화, 동백 같은 창문 없는 술집들 자리엔 주상복합아파트가, 마포역 서쪽 먹자거리엔 번듯한 아파트촌이 생겨났다.

뿐이랴. 경의선이 지하화되면서 옛 철길 자리에 생긴 ‘경의선숲길공원’도 공덕역 일대가 핫해지는데 힘을 보탰다. 경의선숲길공원은 서울의 25개 자치구 중 녹지 비율이 가장 적다는 마포, 특히 녹지라곤 찾아볼 수 없던 공덕동 일대에 산책로를 제공한 건 물론 주변의 경관과 분위기를 확 바꿔 놓았다. 밤엔 물론 낮에도 다니기 꺼려지던 창문 없는 술집들은 사라지고, 옛 기찻길 옆 허름하던 한옥은 아기자기한 카페로 변신했다.

2012년 처음 조성됐을 때만 해도 작고 앙상하던 나무들은 몇 년 새 보도와 자전거도로 양쪽에 그늘을 만들 만큼 크고 무성해졌다. 비슷한 시간에 산책하는 사람과 반려견을 데리고 나오는 사람이 늘면서 자주 만나는 이들끼리 인사하고 대화하는 살가운 분위기도 형성됐다. 동네공원이 은연중 지역커뮤니티를 생성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이 숲길공원 공덕역 쪽 초입에 장터가 들어섰다. ‘늘장’이란 이름의 장터엔 도시재생프로젝트마다 들어가는 마을텃밭도 있고, 사회적기업이 운영하는 재활용품판매장도 있고, 실내포차도 있다. 주말엔 푸드트럭도 온다. ‘우리나 나보다 똑똑하다’ 등 이른바 집단지성의 힘을 내건 표어도 눈에 띈다. 장터 속 건물의 형태도 다양하다. 몽골식 이동주택인 게르도 있고, 컨테이너도 있고, 대강 지은 가건물도 있다.

©포커스뉴스

문제는 관리다. 마을텃밭은 잡초로 무성하고, 가건물 사이사이엔 각종 폐기물과 쓰레기더미가 가득하다. 구호인지 낙서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문구도 즐비하다. 게다가 공원과 달리 가로등도 조명도 없다. 공덕역 1번 출구로 나와 공원을 지나려면 이곳을 통과해야 하는데 밤이면 어둡고 후미져서 혼자서는 물론 둘이서도 선뜻 들어서기 힘들다. ‘시민이 주인’이라는 공간이 다른 시민들의 공원 접근성을 차단하고 밤길의 두려움을 가중시키는 셈이다.

거꾸로 공원을 환하게 만들고 지역주민의 공원 접근성을 높이는 곳이 있다. 건강보험공단이 떠난 자리에 들어선 재화빌딩이 그것이다. 1984년부터 공덕동 일대의 거의 유일한 공공기관이던 건보공단이 이전하면서 지역 상점들은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재화빌딩의 리모델링은 놀라운 결과를 만들어냈다. 건보공단 시절 사방에 둘러쳐져 있던 담을 허물고 넓은 마당에 정원을 만들어 공원과 연결시킴으로써 건물접근성은 물론 공원 접근성을 배가시켰다. 유동인구는 많아지고 인근 상가들은 늘어난 고객 덕에 웃는다. 건보공단빌딩을 사들인 재화빌딩의 변신은 어디까지나 건물의 가치를 올리려는 사적인 목적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공공기관 대신 들어선 민간빌딩이 개방성과 깔끔한 관리로 환하고 접근성 좋은 공원을 만들어낸 반면, 관의 지원에 힘 입은 주인 없는 장터가 보여주는 어둠과 지저분함 및 공원 접근성 차단은 관과 민, 주인의식 여부가 만들어내는 명암을 그대로 보여준다.

장터를 지키려는 시민단체들의 노력이 성공을 거두려면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지 않아야 한다. 누가 봐도 아름답고 깨끗하고 환한 장터를 가꿔낼 때 지역주민은 물론 공원 이용객의 호응과 지지를 받을 수 있다. 그들만의 장터, 그들만의 해방구같은 놀이터로 운영해선 모처럼 시민의 손에 들어온 땅이 민간기업의 손으로 넘어가는 것을 막을 수 없다. 누구라도 이렇게 물을 테니. “네 땅이라면 그러겠니?” [오피니언타임스=박성희]

 박성희

  전 한국경제신문 수석논설위원

  한국외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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