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진의 글로보다]

박근혜 정권의 국정 농단 사태에서 나의 관심을 끌었던 것 중의 하나는 위에서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인데 내게 무슨 잘못이 있는지 모르겠다며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의 억울함을 토로했다는 조원동 전 청와대 경제수석의 말이었다. 그는 대통령의 경제정책을 최측근에서 보좌하는 수석비서관으로 일하며 CJ의 이미경 부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으면 좋겠다고 하는 대통령의 지시를 CJ측에 전달했다. 이유를 묻는 CJ측에 자신도 모른다고 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같은 주장은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 자본주의 국가에서 민간 기업의 경영자를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라는, 말도 안 되는 지시를 그대로 전달한 자신에게 무슨 잘못이 있는지 정말 몰랐을까.

지난달 7일 국회에서 열린 ‘최순실 국정조사특위 2차 청문회’에 주요 증인들이 출석해 있다. (왼쪽부터)송성각 전 한국콘텐츠진흥원장,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 차은택 전 창조경제추진단장,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 고영태 전 더블루케이 이사, 조원동 전 청와대 경제수석 ©포커스뉴스

그 지시가 자신과 가족들에게 피해가 가는 내용이었다고 해도 그대로 이행했을까? 그것이 잘못된 지시라는 것을 몰랐다면 명백한 거짓말이고 알고서 했다면 엄연히 자신에게도 책임이 있다. 불법 행위는 지시한 사람과 그것을 실행한 사람 모두에게 잘못이 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상식이다. 단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는 것은 자신의 잘못을 조금이라도 덜어내려는 비겁한 변명에 불과하다. 대통령의 잘못된 지시들을 그대로 따라온 고위 공무원들의 무책임한 행동들이 “이게 나라냐?”라는 사람들의 자조 섞인 한탄을 만들었다.

어쩌면 그는 대통령은 곧 국가이고 대통령의 지시를 따르는 것이 곧 국가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누구나 알고 있듯 대통령은 국가가 아니다. 국가의 주인인 국민에게 위임받은 한시적 권력일 뿐이다. 이러한 상식을 박 대통령과 그 주변 사람들만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시키면 한다’ 문화는 조폭들의 세계에서 흔히 볼 수 있다. 하지만 조폭들이 명령을 따르는 이유는 그렇게 하면 자신에게도 이익이 돌아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더 이상 이익이 돌아오지 않는다면 언제든 배반할 수 있는 것이 그 세계의 생리다. 이번 국정 농단 사태의 많은 당사자들이 청와대와 대통령의 뜻을 따랐을 뿐이라고 항변하지만 그 대가로 그들 역시 달콤한 권력을 누려왔다. 정부가 하는 일에 반대하는 것은 힘든 일이라며, 대통령의 압력에 의해 재단에 기부금을 냈다는 재계의 변명도 마찬가지다. 그들 역시 바라는 것이 있었기에 거액의 기부금을 선뜻 내놓았을 것이다.

이러한 부류의 사람들은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도 자주 늘어놓는다. 자신은 그러고 싶지 않았지만 생활을 위해 또는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했다는 것이다. 친일파라는 모호한 명칭으로 불리는 일제 강점기 부역자들의 입에서 자주 나온 말이기도 하다. 그들은 일제의 강압에 어쩔 수 없이 협력할 수밖에 없었다며, 그때는 다 그랬다고.자신만 그런 것이 아니라며 자신의 행적을 합리화 시킨다. 하지만 그 시대의 모든 사람들이 일제에 부역한 것은 아니다. 자신의 전 재산과 목숨을 바쳐가며 일제와 싸우며 독립운동한 사람들도 있었다. 다 그런 것이 아니라 자신 같은 사람들도 있었고, 자신과 같이 권력에 굴종하고 그 대가로 호가호위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그 길을 택하지 않은 사람들도 분명 있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펴낸 친일인명사전. 일제 강점기에 친일파로 활동한 한국인 명단을 정리했다. ©민족문제연구소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는 것도 옹색한 변명이다. 단지 먹고 살기 위해서였다면 굳이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먹고 살 수는 있다. 그들은 더 잘 먹고 더 잘 살기 위해서, 자신과 후손 대대로 떵떵거리며 권력과 부를 가지고 더 잘 살기 위해서 권력에 기생했다. 이완용과 을사오적들은 당대에도 조선의 고급 관리들이었다. 그들은 이미 최고의 권력과 부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것들을 계속 이어가고 더 많은 것들을 차지하기 위해 백성의 앞날과 민족의 자주권 따위는 아랑곳 하지 않았던 것이다.

개인이 자신의 더 나은 삶을 위해서 노력하고 그 보상을 얻는 것에 대해 비난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고 얻는 보상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지금까지 행해졌던 국가 권력에 의한 무수히 많은 폭력들. 자신은 곧 국가이며 자신이 하는 일은 곧 국가를 위한 일이라 여겼던 집단들에 의해 멀쩡한 사람이 간첩으로 몰려 하루아침에 목숨과 명예를 잃고 그 가족까지 죄인 취급을 받으며 고통 속에 사는 일이 많았다. 먼 과거의 일 같지만 유우성 씨 간첩조작사건에서 알 수 있듯 최근까지도 버젓이 일어난 일이다. 피해자들과 그 가족들은 지금도 고통 속에 살고 있는데 정작 부당한 지시를 내리고 이행했던 사람들은 여전히 자기 자리에서 잘 살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의 역사는 위에서 시키는 일이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그대로 이행한 사람들의 잘못을 제대로 바로잡지 못한 채 흘러왔다. 오히려 그런 부류들이 자손 대대로 막대한 권력과 부를 누리며 잘 살고 있다.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을 늘어놓으며 온갖 악행을 일삼은 사람들은 여전히 잘 먹고 잘 살고 있다. 이제 이러한 일이 더 이상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부당한 것을 시키고 생각 없이 그것을 이행하는 사람들이 더 이상 아무 일 없이 잘 사는 모습을 이제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 다른 세상이 가능하다는 것을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는 지금의 대한민국에서 정말로 지금까지와는 다른 세상이 펼쳐지는 것을 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할 것이다. 그게 무엇이든. [오피니언타임스=김동진]

 김동진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한때 배고픈 영화인이었고 지금은 아이들 독서수업하며 틈틈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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