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진의 법으로 사는 세상]

탄핵정국도 상당부분 가닥이 잡혀간다. 일부 종편 TV나 신문에는 여전히 시시콜콜 뒷담화와 신빙성이 의심스런 기사들이 횡행하지만, 이는 동네 아줌마들이 장터에 모여 잡담하는 행태와 다를 것 없다. 심판과 관련된 법률문제는 헌재에 맡기고, 현재를 수습하고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이번 과정에서 보여준 촛불민심을 희망이라 표현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 민심이 국가의 제도적, 실천적 실패에 대한 실망감의 표출을 넘어 새로운 백년대계를 위한 기반으로 자리잡게 하려면, 이를 응집하고 방향성을 갖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와 관련하여 유력 대선주자들이 내세운 공약은 국가의 정치수준과 장래의 향방을 가늠할 수 있다는 점에서 훌륭한 지표가 될 수 있다. 주요한 것으로 청와대를 정부종합청사로 옮기고 검찰, 국정원등 권력기관을 손보며, 재벌개혁에 힘쓴다거나(문재인), 서울대학을 없애고(박원순) 온 국민에게 월 100만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한다(이재명)는 것 등이 있다. 물론 청년, 비정규직 일자리창출, 경제민주화, 과학문화강국, 교육개혁, 경제민주화 및 소상공인보호, 지방분권과 균형발전 등등 각가지 좋은 방안들이 나열돼있지만 큰 의미는 없다고 본다. 냉정히 생각하면, 수없이 들어왔던 것인데다 누가 나서더라도 현 시점에선 구체적인 실천 및 해결방안이 없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1월2주차 리얼미터 차기 대선주자 지지율 ©포커스뉴스

지금 탄핵에 의한 통치권 공백을 맞은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권력의 과도한 집중이었다. “수임인은 위임의 본지에 따라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로서 위임사무를 처리하여야 할 선관주의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선출된 권력이 밀실에서 자격도 없는 소수에 의해 전횡되는 실상이 공개되자 국민의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소위 대통령 직선제를 규정한 87년 체제 이후 어느 대통령도 여기서 자유롭지 못했다는 점이다. 퇴임 후 유배, 감옥에 가거나 아들, 형제가 구속되었으며, 이번에는 대통령 본인이 임기 중에 직무가 정지되는 사태에 처했다.

그렇다면 이 체제에는 분명히 결함이 있다고 보는 것이 맞다. 혹자는 제도가 아니라 사람이 문제라고 하나, 이제까지 대통령직에 있던 사람 중 한 명도 예외없이 물의를 빚은 시스템이 정상이라고 할 수는 없다. 원래 법의 지배는 사람의 지배에 대비되는 말로서 예측가능성과 안정성, 자의성 배제, 투명성, 법 앞의 평등의 확보에 있어, 인치에 비할 수 없는 장점을 가졌기 때문에 추구되어 왔다. 아무리 훌륭한 사람도 치밀하게 잘 정비된 제도를 넘어설 수 없다. 그런데 법치가 흔들리고 인치의 망령이 떠도는 이유는 우리 헌법이 직접선거, 대의제도 등의 민주주의의 외양은 취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권력분립이나 독선에 대한 견제와 균형장치를 마련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헌의 필요성이 논의되는 이유이다.

지금 대선주자들은 우선 정권을 잡는 것이 목적이고 국민들도 무엇이 중한 지에 관한 사고의 혼란 때문에 개헌논의를 대수롭지 않게 넘기고 있으나, 이 제도를 손질하지 않고는 과거의 예에 비추어 볼 때, 누가 대통령이 되던 결국 전임대통령들과 같은 운명을 겪을 확률이 높다. 단순히 청와대를 정부종합청사로 옮긴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지도자를 잘 만나길 기대하기 보다는, 평범한 지도자라도, 선출된 사람이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고 권력을 사적으로 농단하는 일이 없이 정부와 국가, 국민을 구성하는 각 부분의 의견을 청취하고, 합의된 결과를 국정에 반영하며, 국민은 이러한 전체 과정을 투명하게 들여다 볼 수 있는 구조와 환경을 만들어 놓는 것이 중요하다.

지난해 6월25일 리얼미터가 발표한 ‘개헌론 추진에 관한 국민인식 여론조사’. 성인 8470명을 대상으로 한 이번 조사에서 국민 69.8%가 개헌에 찬성했다. 권력구조 개편방안으로는 ‘4년 중임 대통령제’가 바람직하다는 응답이 41%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포커스뉴스

그런데 이는 비단 대통령에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니다. 대통령 못지 않게 비효율적인 기관이 국회다. 우선 제도적으로는 국회선진화법이라고 불리는 국회법 85조의 2등 개정조항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위 법은 쟁점법안처리를 위한 상임위 정족수 기준을 재적 위원 5분의3으로 정해놓고 있다. 상임위에서 특정 정당이 반대할 경우 상임위 소속 의원 5분의3이 찬성을 하면 법안처리과정이 진행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논의가 중단된다. 이는 고질적인 몸싸움을 막고 양보와 타협의 정치를 하자는 목적으로 만들어졌지만, 실제로는 타당의 정책에 반대하기 위한 무기로 변질되었다.

19대 국회에서 여당이 줄기차게 통과를 추진해온 노동개혁 4법과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사이버테러방지법 등이 국회선진화법에 발목이 잡혀 상임위조차 통과하지 못해 자동폐기된 전례가 있고, 금년의 대선에서 여야가 뒤바뀐다 해도 같은 현상이 일어날 것이다. 그러므로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그의 역점 사업은 국회의 벽을 넘지 못해 공염불로 끝날 가능성이 농후하다. 위 법을 개정하지 않으면 안되는 이유다.

또한 국회의원들의 직업윤리나 능력, 수준도 기대에 미흡하기는 마찬가지다. 청문회가 열리면 그들은 매번 증인들을 불러놓고 TV앞에서 호통을 치지만, 과연 그들이 단죄할 자격이 있는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은 입법권의 당사자인 지위를 활용하여 김영란법의 적용대상에서도 빠져있고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이 국민에게 미치는 영향이 상당함에도 이를 감시하고 평가할 장치는 미흡하다. 덴마크의 의원들처럼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무한봉사하는 것은 바라지 않더라도, 현행 공직자윤리법 이외에 별도의 국회의원윤리법이라도 따로 제정하여 일반 공직자나 국민들보다 높은 수준의 청렴성, 직무적합성을 갖추도록 보완하여야 한다.

지난해 8월8일 국회 의안과에서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왼쪽)과 이용주 국민의당 의원이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 법안을 제출하고 있다. 타락한 권력과 부정부패를 감시하려면 공수처 설치가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포커스뉴스

노동개혁이나 일자리 창출로 대변되는 경제민주화도 결국은 소수자, 사회적 약자 보호에 방점이 있다. 빈부격차로 인한 사회적 갈등의 해소는 부유층을 지원하고, 빈곤층을 착취하는 결과를 낳는 잘못된 제도를 개선하는 것에 달렸지만, 그런 원인을 제공하는 제도가 무엇인지 어떤 점에서 잘못되었는가를 지적해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여기에 관하여는 서로 정반대의 주장으로 보일 만큼 시각과 강조점이 다양하고 어느 것도 일방적으로 옳거나 그르지 아니하고 각각 장단과 득실이 있다. 재벌을 손본다든가, 법인세와 소득세를 인상하고 기본소득제를 도입하는 것으로 일거에 해결될 것도 아니다. 그것은 애초 혁명적 방법으로 단칼에 답을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연구와 궁리 및 토론과 합의, 그리고 적용과 개선이라는 고단한 과정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정지작업이 필요하다. 대표적인 것이 권력층의 부정부패이다. 타락한 권력은 특혜와 편법, 비정상적인 치부와 영달을 낳고 서민들에게는 절망과 한숨만을 줄 뿐이다. 일례로 고위공무원이나 국회의원 본인, 또는 그의 자녀들의 병역면제율이 일반인에 비해 현저히 높다고 하는 바, 이를 정상적이라고 수긍할 사람은 많지 않다. 국민들은 비리에 민감하다. 자신들이 불행한 책임이 본인에게 있다기 보다는 권력층과 지도층의 비리와 불법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경찰이나 검찰 등 현재의 사정기구만으로 환부를 제거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사실은 충분히 증명되었을 뿐더러, 사정기관 자체가 화농의 진원이 되고 있다. 문재인 전대표가 검찰, 국정원 등 권력기관을 개혁하겠다는 구상을 밝힌 근거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줄여서 공수처의 신설방안은 우선 국회의원들이 대상자가 되는 관계에 있어 말과는 달리 입법에 적극적이지 않으며, 검찰 등 관계기관의 반대가 격렬하고, 누구든 일단 대통령이 된 뒤에는 사정기관이 자기 손아귀에서 빠져나가 독립성을 갖는 것을 달갑게 생각하지 않으므로 실현가능성이 낮다. 결국 국민들은 헛된 기대와 반복된 실망에 지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권리를 말하면 안된다. 스폰서검사, 뇌물판사 등 법조비리가 한참 일 때만 반짝 일어나는 관심으로는 비리를 근절하지 못할뿐더러 공수처를 영원히 신설하지 못한다. 국민들의 지속적인 압력이 요구되는 지점이다.

©픽사베이

제도가 갖추어진 것과 그것이 현실에서 실현되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강남의 귤이 강북에서는 탱자가 될 수 있다. 어떤 공동체든지 갈등과 반목이 있다. 의견대립과 비방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그것이 지나쳐서 분열과 붕괴에 이를 지경이 된다면, 이로 인한 손실과 비용은 측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사회통합이 필요한 이유다. 정치적, 사회적으로 극단적인 주장과 언설이 높게 취급되고, 중도와 합의를 말하는 사람은 비겁한 자로 타기되는 관행이 바로잡혀야만 한다. 뇌물전력자라도 자기 편이라면 국회의원으로 뽑아주고 그들의 비행에 대해서는 관대하면서도 상대편에만 칼날을 들이대는 불공정한 자세로는 정의사회가 구현되지 않는 법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민 각자의 반성이 필요하겠지만, 장기적으로는 타협과 협조를 교육의 기조로 삼지 않으면 안된다. 아이들에게 영어단어 하나를 더 가르치기 보다는 타인을 동료로 인정하고 내 주장만큼 그의 주장과 의견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지시켜야 한다. 협상과 협력이 비제도적 관행이자 문화로 자리잡은 국가는, 비록 현실이 남루하더라도 미래가 있다. 물론 교육의 목표와 방향을 바꾸는 것 조차 협의가 필요하다. 지금 나라는 어려운 국면에 처해있다. 국민의 의식이 깨어있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다. [오피니언타임스=김형진]

 김형진

  변호사

  전 대우전자 법률고문

  전 대한주택공사 법률고문

오피니언타임스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칼럼으로 세상을 바꾼다.
논객닷컴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론(nongaek34567@daum.net)도 보장합니다.
저작권자 © 논객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