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채연의 물구나무서기]

요즘 아파트 단지 내에서 유독 이삿짐센터 차량들을 많이 마주친다. 아파트 복도나 집 현관문에는 이사센터 전화번호가 적힌 명함 크기의 전단들이 덕지덕지 붙어있다. 겨울이라 썰렁하다고 애써 넘기기엔 이곳의 시간은 너무 쓸쓸하다.

그만큼 사람들이 이 아파트를 하나둘 떠나고 있다는 뜻이고, 정말로 이 낡은 아파트가 허물어진다는 뜻일 테다. 왜인지 더디게 가는 이곳의 시간은 사라지고, 여느 곳들처럼 빠르고 바쁜 시간으로 채워진다는 의미다. 결국 이곳의 모두가 떠날 것이고, 아파트 뼈대를 이루는 굵은 철근마저 무너져 이곳의 시간은 찾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익숙한 현재의 냄새 대신, 높고 네모난 새 아파트 건물의 어색하고도 인공적인 냄새가 이곳을 채울 것이다.

©송채연

처음 이 아파트에 이사를 온 건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때이다. 빛바랜 페인트칠과 노후돼 달달달 소리가 나는 환풍기. 군데군데 금이 간 이 낡은 아파트는 내가 오기 아주 예전부터,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이곳에 존재해 왔음을 온몸으로 말하고 있었다. 이미 수많은 누군가의 추억 혹은 시간을 담고 있었다. 나는 처음 이사 오던 날부터 이곳에서 내 평생을 보낼 수 없으리란 것을, 보내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도 아파트를 떠나는 건 상상하기 어려웠다. 떠나야 할 구체적인 날짜가 붙고 나서야 비로소 진짜 이별을 준비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제는 너무나 익숙하고 당연해져버린 이곳의 시간과 그 소중함, ‘집’이라는 공간의 의미와 내 삶에서의 무게를 놓아줘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집에 가는 길을 잃어 여름 햇살에 얼굴을 달군 채 아파트 단지를 빙빙 돌던 작은 여자아이는 이렇게 훌쩍 커버렸다.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장소는 그의 앨범과도 같은 것이다. 삶에 치이거나 신경 쓸 것이 많아 잊고 지내다가도 그 장소를 스쳐 지나거나, 우연히 떠오른다면 그곳에서의 지난 순간들을 만날 수 있다. 오랜만에 펼쳐보는 옛 사진앨범처럼 말이다. 그 장소에 담긴 그리움과 즐거움, 행복한 순간 혹은 나쁜 감정들은 고스란히 떠오른다. 아마 그 공간이 시간을 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은 잊어버렸을지도 모르는 아주 사소한 시간과 순간마저 말이다.

내가 이토록 서운하고, 또 슬픈 이유는 그리울 때 펼쳐볼 수 있는 앨범이 없다는 사실 때문이다. 새로 들어설 신축 아파트를 위해 이곳에서의 나의 시간과 흔적은 지워질 것이다.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 대학생 성인이 될 때까지 나를 담아왔던 이곳의 시간은 곧 사라진다.

대신 남은 시간 동안 최대한 많은 것을 담고자 한다. 잠에서 깨면 창문 사이로 느껴지는 햇빛. 비오는 날, 아파트 복도 계단의 습함과 약간은 퀴퀴한 냄새. 주방 한 면에 트인 창의 배경과 하얀 나무에 앉은 새. 날이 좋은 밤, 텐트를 치고 누웠던 옥상의 하늘. 거실에 가족이 둘러앉아 TV를 보며 느끼던 편안하고 온전한 감정.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의 가벼운 발걸음. 이곳의 공기와 온도, 색과 빛. 나는 이곳의 물리적인 것들이 사라진다 하더라도 여전히 이를 기억할 것이며 추억할 것이다. 안녕. [오피니언타임스=송채연]

 송채연

  대한민국 218만 대학생 중 한 명. 그냥 평범한 직장인이 될래요.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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