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범의 동서남북]

조기 대통령 선거를 불과 몇 달 앞두고 야권에서 결선(決選)투표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강력히 제기되고 있다. 국민의당과 정의당은 지난 6일 대선 결선투표제를 골자로 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결선투표제란 3명 이상의 후보가 출마할 경우 첫 개표에서 과반수 득표자가 나오지 않으면 2차 투표, 즉 결선 투표를 통해 최종 승자를 가리는 제도를 말한다. 미국 같은 양당제 국가에서는 해당되지 않지만 다당제 하에서 후보가 난립할 경우에는 적절한 방식이다.

20대 국회의원 선거날인 지난해 4월13일 서울 종로구 동성고등학교 투표소에서 유권자가 투표를 하고 있다. ©포커스뉴스

우리나라는 19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이후 한 표라도 더 얻은 후보가 당선되는 단순 다수제 방식을 채택해 오고 있다. 후보가 두 명일 때는 과반수 득표자가 나올 확률이 높지만 후보가 셋 이상이면 그럴 확률은 거의 없게 된다. 과반수도 안 되는 득표자가 대통령에 당선될 경우, 그는 국민의 대표성 측면에서 취약성을 안게 된다.

1987년 이후 18대 대선 때까지 6명의 대통령 당선자 가운데 18대 대선의 박근혜 후보(51.6%)를 제외하고는 한 사람도 과반수 득표를 얻지 못했다.

▲14대 김영삼·15대 김대중 후보는 40% 초반대 ▲16대 노무현·17대 이명박 후보는 40% 후반대를 얻었지만 ▲13대 노태우 후보는 겨우 36.6% 득표에 그치고 말았다. 그래도 당선이 가능했던 것은 후보 중 상대적으로 최고 득표자를 당선자로 선출하는 단순 다수제 방식 때문이었다.

바로 여기에서 당선자의 국민 대표성 문제가 제기된다. 30~40% 대의 지지율만으로 과연 국민 전체의 민의를 대표한다고 볼 수 있을까? 그것도 엄밀히 말하자면 전체 유권자 비율이 아닌 투표 참여자의 비율이고 보면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적은 수에 불과하다.

실제로 13~15대 대선 때까지만 해도 80% 대를 유지했던 투표율이 16대 때는 70%대로, 17대 때는 60% 대까지 뚝 떨어졌다. 결국 전체 유권자 수와 득표율을 비교해 보면 우리나라에서는 겨우 20~30%의 지지만 받고도 대통령에 당선돼 왔던 셈이다.

결선투표제를 실시하고 있는 대통령제 국가는 프랑스가 대표적이다. 러시아와 체코·폴란드·우크라이나·불가리아 등 동구권 국가들과 아르헨티나·브라질·칠레·콜롬비아·페루 등 남미 국가들도 채택하고 있다. 또 의원내각제 국가인 이탈리아·그리스 같은 경우도 이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이 제도는 과반수 이상 높은 득표로 당선된 만큼 그 대표성과 권력의 정당성이 확보될 수 있으며, 다양한 정치세력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어 민주주의에 활기를 불어넣어 준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선거를 두 번 치름으로써 생길 수 있는 비용과 사회적 혼란을 지적할 수 있지만 대의 민주주의 제도 아래서 대통령이 갖는 대표성과 정권의 안정성, 권력의 정당성 확보 등에 비하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문제다.

지난달 26일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와 심상정 정의당 상임대표가 국회에서 회동을 갖고 있다. 이들은 “야권 대선주자 8인 정치회의에서 대통령 결선투표제 도입을 논의하자”고 주장했다. ©포커스뉴스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는 이번 대선에서 결선투표제가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왜냐하면 “다음 대통령은 국민들의 높아진 기대수준 때문에 가능한 한 다수의 국민들로부터 지지 받는 사람이 선출돼야 그나마 추진동력을 갖고 개혁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지금처럼 전체 유권자 20% 정도의 지지만 받은 당선자가 나오면 결국 80%는 반대세력이라는 것인데, “그럴 경우 빠르면 취임 첫 해, 늦어도 둘째 해부터는 레임덕에 빠질 위험이 굉장히 높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번에는 선거기간이 워낙 짧다보니 네거티브 선거가 될 가능성이 높은데, 결선투표제를 실시하면 이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고 강조했다.

안 대표는 또 어떤 군소 정당 후보도 사전에 포기하거나 후보단일화를 하지 않고 끝까지 완주하면서 자신의 정견을 밝힐 수 있다는 점을 들었다. 그는 “결선투표제가 없는 상태에서는 정치인들에 의한 연대가 시도되지만 결선투표제가 실시되면 국민에 의한 연대가 실현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밖에도 결선투표제는 근거 없는 여론조사에 의한 민의(民意) 왜곡을 원천적으로 예방할 수도 있다. 지난해 4.13 총선과 영국의 브랙시트(유럽연합 탈퇴) 국민투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 등 제대로 맞춘 여론조사가 하나도 없었다.

단순 다수제하에서는 1%라도 이긴 쪽이 싹쓸이를 해 버리는 승자독식(勝者獨食)의 논리가 지배하지만 결선투표제에서는 군소정당끼리 연합해 연정을 펼 수도 있고, 또 이길 경우 권한과 책임을 나눠 갖는 협치(協治)도 가능하게 된다. 그러므로 과반수에 훨씬 못 미치는 득표자를 당선자로 선출해 온 그동안의 단순 다수제 투표방식은 더 이상 계속해선 안 된다.

그러나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측에서는 벌써부터 난색을 표시하고 나섰다. 탄핵이 결정되면 60일 이내에 대선을 치러야 하는데 결선투표까지 감안하면 본 선거를 더 앞당겨야 하고, 그럴 경우 재외(在外)선거나 사전투표, 선상(船上)투표 등은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의당과 정의당 등 야권 대표들은 이번 기회에 반드시 결선투표제를 도입해야 한다며 강한 의지를 나타내고 있다. 국민의당은 특히 선거연령 18세 인하와 함께 결선투표제 도입을 당론으로 채택하는 등 강력한 추진의사를 나타내고 있다.

다수제 투표에서는 1%라도 이긴 쪽이 싹쓸이하는 승자독식 논리가 지배한다. 반면 결선투표제는 군소정당 연정이나 권한과 책임을 나눠 갖는 협치가 가능하다. ©픽사베이

대부분의 헌법학자들은 결선투표제가 개헌사항이므로 공직선거법 개정만으로는 어렵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헌법 제67조 2항, 즉 “최고 득표자가 2인 이상인 때에는 국회의 재적의원 과반수가 출석한 공개회의에서 다수표를 얻은 자를 당선자로 한다”는 조항에 따라 당선자를 결정할 때는 국민 직선방식이 아니라, 헌법을 개정한 다음 개정된 헌법에 따라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헌법은 당대 시민의 정치적 의사와 요구에 따라 유연하게 해석하는 것이 맞다”며 헌법까지 개정할 필요는 없다고 주장했다.

이렇듯 개헌이 꼭 필요하다고 한다면 어려울 것도 없다. 국회는 지난 3일 각 당 37명으로 헌법개정특별위원회(위원장 이주영)를 구성, 6개월간의 공식 활동에 들어갔다. 오래전부터 개헌을 주장해 왔던 의원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고, 지금까지 수년간 만들어진 개헌안만도 10여 개에 달해 개헌 추진에는 크게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여러 개헌안들을 꺼내 놓고 선택하는 일만 남은 셈이다.

경찰대학의 이관희 명예교수는 “개헌특위가 마음만 먹으면 한 달 안에도 합의를 볼 수 있고, 이를 토대로 국민투표까지 확정 짓는 데는 절차상 4월 말이면 충분하다”고 말한다. 현행 헌법이 된 1987년 당시 개헌 때도 6.29선언 이후 그 정도의 기간 내에 처리됐다고 그는 주장했다.

이번에는 반드시 결선투표제가 도입돼서 일당 독주를 견제하고, 여러 정당이 연립해 서로 공존·협치할 수 있는 체제로 바뀌어야 한다. 이것이 촛불을 든 광장의 민심이다. 그런 만큼 각 당은 당리당략을 떠나 대승적인 관점에서 결선투표제 도입과 선거연령 18세 인하 등의 개헌안에 합의해야 할 것이다.

결선투표제는 과반수 이상 득표자를 대통령으로 선출함으로써 국민의 대표성과 권력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그런 확고한 지지기반 위에서만 국민이 바라는 각종 정치개혁을 추진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각 당의 의지만 확고하다면 먼저 개헌에 합의하고 결선투표제 조항을 신설해서 이번 대선부터 시행하면 될 일이다. [오피니언타임스=김준범]

 김준범

 (주)대한공론 상임 고문

 전 국방부 국방홍보원 원장

 전 중앙일보 정치부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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