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진의 민낯칼럼]

미국 신문과 한국 신문의 뉴스를 물량적으로 비교해보자. 많이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한국 신문에는 정치인 동정 기사가 많다. 권력을 중심으로 권력 안팎의 동정, 정치인들의 움직임에 관한 내용이다. 총선이니 대선이니 하는 특정한 시기가 아니라도 많다. 선거철이 아니라도 국민들의 관심이 거기에 있으니 그것이 반영되는 것이다.

한국 정치뉴스는 주로 정치인 중심이다. 정치인들의 이합집산과 관련된 회동이라든지, 모임, 정당의 세력 판도가 어떠하든지 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대단히 권력지향적 판단에 의한 뉴스들인 것이다. 반면에 미국신문에는 법원의 판결에 대한 뉴스, 해설, 배경 설명, 논평이 훨씬 많다. 대법원, 연방 법원, 주 연방법원, 주립 지방법원, 시법원, 군단위 법원, 교통법원, 세금법원… 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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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나라 신문의 이 같은 차이는 일차적으로 국민의 관심 차이에서 오는 것일 터다. 한국인은 권력지향적이다. 오랜 역사 동안 정치 권력자가 정치, 경제, 사회, 교육, 군사 등 모든 부문에서 국민 대다수의 운명을 정해 온 정치문화이기 때문이다. 삼국시대든, 조선시대든, 해방 후 현대사에서든 사법부가 역사를 주도한 일이 없다. 권력의 핵심이 정치에 있기 때문에 국민의 관심도 어떤 인물이 권력 핵심부에 진입하고, 또 어떤 인물이 탈락하고 어떤 인물이 물을 먹었는지 하는 등 정치권의 인적 동향에만 쏠리게 되어 있다.

따라서 신문은 권력이동, 말하자면 정가의 움직임에 취재 초점을 맞추지 않을 수 없다. 독자가 정치기사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당연히 그 방면에 대한 취재와 보도에 에너지를 쏟아붓는 것이다.

미국에는 어느 신문 편집국에도 ‘정치부’라는 부서가 없다. 정부(government) 취재란 연방 정부(federal), 주정부(state), 지방정부(loca-municipal, city, county)를 상대로 한다. 선거 준비 같은 정치 행위(politics)를 취재하고 보도하는 것은 그 가운데 극히 일부분일 뿐이다. 미국식으로 보자면 한국의 이른바 중앙지, 전국지들은 ‘정치신문’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종합일간지라고 보기는 무리가 있다는 생각이다. 종합일간지 회사에서 경제신문이 별도로 나오는 것도 재미있는 예로써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미국 언론과 한국 언론이 두드러지게 다른 점 중 하나가 재판 과정 및 판결 보도이다. 미국 언론 역사에는 법원과 언론사가 충돌하는 사건이 수없이 많았다. 신문에 사법부 결정을 비난하는 사설이 수시로 나오는가 하면 개개인 판사의 철학과 인물 됨됨이를 파헤치는 기사도 자주 실린다. 또 탄핵 받은 판사, 부정으로 쇠고랑을 차는 판사,비정상적인 판결로 조롱을 받은 판사의 이야기도 심심찮게 찾아 볼 수 있다.

다시 말하자면 미국의 독자들은 한국의 독자들이 정치 권력에 관심을 가지는 만큼 재판 과정과 내용에 관심이 많다는 뜻이 된다. 그만큼 사법부 뉴스가 차지하는 지면도 클 수밖에 없다. 지방법원 판사 한명의 판결이 거의 매일 전국적인 뉴스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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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의 생활은 실제로 법원의 새로운 판결 하나에 따라 좌우되기도 한다. 따라서 표현의 자유와 헌법, 종교 문제, 형사사건, 민권법, 선거법, 노동법, 사업상의 수많은 케이스들, 재산권 문제 등 수없이 많은 판결에 관한 분석 기사들이 매일 나온다. 법원의 판결을 사건 별로 문제점을 해설하고 판결에 이르기까지의 찬반 논의, 판사들 사이의 의견 충돌을 자세히 알려주며, 판결의 내용과 의미를 풀어서 쓴다.

기자들은 물론 판결문을 그냥 베껴 쓰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의미를 비교하고 분석해서 긴 기사를 쓴다. 법원 출입기자 중 많은 수가 변호사 자격을 가진 법률 전문가이기도 하다. 연방 대법원 판사 아홉 사람의 결정은 자주 머리기사로 다뤄진다. 국민들의 종교와 교육, 낙태, 가정, 인간관계에 이르기까지 너무나 많은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러한 결정들이 대통령이나 국회 관련 뉴스 보다 실생활에 더 큰 영향을 준다고 믿고 실제도 그렇다.

미국이 됐건 한국이 됐건, 판사의 판결이나 헌법기관의 결정이 무게를 가지는 것은 민주사회이며,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권위가 되어야 한다. 최고 권력자가 됐든, 평범한 시민이 됐든 모든 국민이 이를 지키기 위한 노력을 계속할 때 민주주의는 완성되는 것이다.

노무현 정권시절이니 꽤 오래 된 얘기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대선관련 발언이 ‘공무원의 선거중립을 위반했다’고 지적했다. 이에 불복한 노 대통령은 헌법소원을 냈다. 결국 헌법재판소에 의해 ‘위반’으로 결론나고 탄핵소추까지 갔다. 그러나 그 결론보다 짚고 넘어가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다.

당시 대통령의 최측근인 안희정 씨가 선관위를 “독재의 하수인에 불과하던 임명제 기관”이라며 맹비난한 것이다.

"‘감히’ 대통령의 입을 막고,이를 받아쓰는 언론을 묵과할 수 없다"며 엄연한 헌법기관인 선관위를 비판한 것은 왕조시대의 독재적 발상이나 다름없다.이는 판결여부와 상관없이 민주주의 발전에 걸림돌이 되는 행위다.국가의 근간인 사법부를 무시하고 위협하는 발언이기 때문이다.

삼권분립이 굳건히 자리 잡으려면 헌법재판소, 대법원을 비롯한 각급 법원의 모든 판결 소식이 정치권력과 정치인 이야기 못지않게 뉴스 취재 대상으로 다뤄져야 한다. 이는 민주주의를 완성시키려는 온 국민의 의지와 준법정신이 있을 때만 가능하다. 촛불과 헌재를 바라보며 떠오른 생각이다. [오피니언타임스=안희진]

 안희진

 한국DPI 국제위원·상임이사

 UN ESCAP 사회복지전문위원

 장애인복지신문 발행인 겸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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