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수의 따듯한 생각]

고등학교 친구 A를 오랜만에 만났다. 얼굴보자는 말은 자주 했지만 막상 시간이 안 맞는다는 핑계로 미루고 늦춰졌던 약속이었다. 서로의 SNS를 통해서 소식을 접하다 졸업 후 1년 만에 얼굴을 마주하니 정말 기뻤다. 우리는 한적한 골목 끝 조용한 카페에서 몇 시간이나 대화를 나눴다. 8할이 시답잖은 농담과 지난 시간에 대한 안부였지만 충분히 즐거웠다.

이야기 도중 그는 컵홀더를 만지작거리며 내게 작은 고백을 했다. 오늘 꼭 만나야 하는 이유가 이것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나 사실 자퇴했어.”

드림캐쳐는 그물과 깃털, 구슬 등으로 장식한 작은 고리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만든 것으로, 가지고 있으면 좋은 꿈을 꾸게 해 준다고 여겨진다. ©픽사베이

예상 못한 단어에 깜짝 놀라 이유를 물었다. A는 누구보다 성실했기 때문이다. 그는 운동을 하다가 부상으로 뒤늦게 학업을 시작했다. 늦은 만큼 최선을 다했고 작년 천안에 있는 4년제 대학에 입학했다. 학교도 멀고 등록금비 부담이 크다며 반수를 택했고 그 결정은 성공적이었다고 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등록금과 졸업 후 취업난이 막막했나보다.

A의 사연은 남의 일처럼 들리지 않았다. 주변에도 비슷한 경우가 많아서다. 청년들은 고등학교 때 대학 입학이라는 목표를 향해 앞만보고 달려간다. 그러나 사실 전공이 맞지 않거나 다른 고민 때문에 휴학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학벌주의가 만연한 우리 사회가 만들어낸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A도 마찬가지였다. 고등학교 때 친구는 늘 점수에 연연하며 우울해했다. 뒤늦게 시작한 공부는 쉽지 않았고 점수 올리는 일도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괜찮은지 물으며 안색을 확인했다. 혼자두면 정말 나쁜 일이 생길 것 같았기 때문이다.

A는 군인이 되기 위해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목표로 삼아서인지 표정이 좋아보였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은 어디에도 없어 보였다. 말수가 적은 편이었는데 군인이 자신에게 잘 어울리지 않느냐며 너스레를 떨었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친구의 비밀스러운 고백을 응원했다.

긴 대화를 끝낸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는 휴대폰에 있는 사진을 바라봤다. 짧은 만화의 한 장면이었다. 이 장면은 수도 없이 봤지만 늘 내게 큰 여운을 남기곤 한다.

“언니, 언니처럼 하고 싶은걸 하면 행복해?”
“재능이 있어야 행복할 수 있어.”
“재능이 없으면 어떻게 되는데?”
“매일 밤 자기 자신과 싸우겠지.”

둥근 말풍선 안에는 마음 한가운데를 쿵쿵 내리찍는 말들로 가득했다. 나는 한참동안 재능도 노력으로 완성될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실제로 내가 재능이 부족해서 포기한 것들이 꽤 많았기 때문이다.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이 같은 경우는 흔치않다. 많은 사람들이 진로와 직업을 결정할 때 끊임없이 고민하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잘하는 것과 열심히 하는 것은 또 다르다. 과거의 나는 열심히 했지만 끝까지 잘하지 못해 상심이 컸다. 그 이후로 최선을 다하는 일에 약간의 두려움이 생겼다. 나는 여전히 진짜 꿈을 숨기며 살고 있기에 자신의 앞날을 당차게 설계해 나가는 친구가 대견할 뿐이다. 나는 눈쌓인 길을 걷는 내내 늘 열심인 친구가 내 몫까지 잘해내길 빌었다. [오피니언타임스=김연수]

 김연수

  제 그림자의 키가 작았던 날들을 기억하려 글을 씁니다.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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