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준의 길 위에서 쓰는 편지]

쿠바를 여행하다 보면 한낮에도 고등학생들과 마주치는 일이 잦습니다. 우리 같으면 학교에서 졸린 눈을 부릅뜨고 앉아있거나 학원으로 달려가야 할 시간인데, 어찌된 일인지 이 나라 학생들은 거리에 있기 일쑤입니다. 누구는 한국에도 그런 아이들이 많다고 할지 모릅니다. 그걸 몰라서 하는 소리는 아닙니다. 근본적인 ‘다름’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분명한 것은, 쿠바 아이들은 우리처럼 ‘결박당한 청춘’으로 살아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자유분방한 쿠바의 고등학생들. 선글라스와 짧은 교복치마가 눈길을 끈다. ©이호준

오늘은 그들의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쿠바의 학생들도 교복을 입습니다. 초등학생은 Red, 중학생은 Yellow, 고등학생은 Blue로 구분합니다. 그런데 고교생의 경우 이 교복이 민망한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 여학생들도 치마를 줄여 입는 것 정도는 예사지만 쿠바의 고교생들은 그 정도가 좀 심한 편입니다. 우리보다 훨씬 짧고 타이트합니다. 상의는 얼마나 줄였는지 단추와 단추 사이로 맨살이 비집고 나올 것 같습니다. 일부러 단추 하나쯤 풀어놓는 친구도 있습니다. 이런 땐 얼른 눈을 돌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햇볕이 강한 나라다 보니 선글라스를 끼는 것 정도는 예사입니다. 하지만 햇볕보다는 멋으로 쓰는 것이라는 심증이 강하게 듭니다. 보통은 남녀 학생들이 섞여서 하교하는데 손을 잡고 팔짱 끼는 것 정도는 예사입니다. 요즘은 우리나라에도 손을 잡거나 팔짱을 낀 남녀 고등학생을 보는 게 어렵지는 않지만, 그들만큼 자유로워 보이지는 않습니다.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던, 사회주의 국가 특유의 ‘경직’이나 ‘통제’ 같은 관념이 여지없이 깨지는 순간입니다. 최소한 제 눈에는 서구의 학생들보다도 훨씬 자유로워 보였습니다. 물론 여행자의 눈으로 본 것이니 실상은 다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모습 어디에서도 ‘경직된 10대’를 읽을 수 없던 것은 분명합니다.

그렇다고 쿠바의 교육이 ‘대충대충’이라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되레 세계가 주목하는 고학력 국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쿠바의 교육 과정은 ‘6.3.3’으로 우리와 비슷합니다. 명칭만 조금 다릅니다. 6학년까지 초등교육을 받고, 7~9학년까지 중등교육, 10~12학년은 대학진학 준비과정입니다. 9학년(우리나라의 중3)까지는 의무교육이지만 그 과정이 끝나면 자유로운 진로 선택이 가능합니다.

쿠바는 유치원에서 박사과정까지 무상교육을 실현하고 있습니다. 외국인을 제외하고 모든 교육은 무료이며 원하면 모두 대학에 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전공을 불문하고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가려고 발버둥치는 반면, 쿠바에서는 대학 선택의 가장 중요한 기준이 ‘미래에 자신이 무엇을 할 것인가’입니다. 대학을 졸업하면 국가와 사회를 위해 봉사기간을 갖는 것도 특이합니다. 무료로 혜택을 입은 만큼 갚는 것이지요. 봉사기간이 끝나면 자신의 직업을 가질 수 있습니다.

2017 수능을 열흘 앞둔 지난해 11월7일 서울 양천구 종로학원에서 수험생들이 강의를 듣고 있다. ©포커스뉴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이런 시스템보다는 교육이념입니다. 쿠바는 ‘사람은 모두 평등하며 차별 없이 인간답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는 것에 교육의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돈 보다는 인간의 가치 실현이 먼저라는 것이지요. 따라서 쿠바는 신분 상승을 위한 사다리를 확보하기 위해서 공부를 하는 게 아니라 삶을 풍요롭게 만들기 위한 교양을 쌓기 위해 공부를 합니다. 그것이 가난하지만 남미 최고의 고학력을 유지할 수 있는 배경입니다.

요시다 다로의 《교육천국, 쿠바를 가다》에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쿠바에서는 물질적 소비도, 정치적인 자유도 희생한다. 하지만 그 대신에 양질의 사회적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것이 우리가 행한 선택이다’라고 지도자가 주장하고 있듯이, 개인의 자유는 제한되어 있다. 하지만 다른 라틴 아메리카 국가에서는 중상류계급의 아이들만 받을 수 있는 교육을 쿠바에서는 누구나 받고 있다.”

교육 전문가가 아닌 저로서는, 그들의 교육의 교육 방식에 대해 옳고 그름을 말할 능력은 없습니다. 이방인의 눈에는 방종에 가까워 보이는 고교생들의 모습이 바람직하다고 단언할 수도 없습니다. 그리고 모든 고교생들이 그렇게 자유를 구가하며 학교에 다닌다고 확신할 만한 데이터도 없습니다. 그래도 저는 그들의 교육이 부럽습니다. 가난한 아비로서 무상교육이 부럽고, 출세를 위해 경쟁하라고 가르치지 않는 게 부럽고, 원하면 대학을 갈 수 있는 게 부럽습니다.

따지고 보면 우리의 교육이념도 지향점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극명하게 다릅니다. 우리 학생들은 ‘이기는 것’을 배우기 위해 학교에 다닙니다. 교육의 여건도 평등하지 않습니다. 외견적으로 똑같은 기회가 주어진 것으로 보이지만, 만연한 사교육은 평등을 전제로 하지 않습니다. 빈부의 차이에 따라 교육의 기회는 하늘과 땅만큼 엇갈립니다. 과외를 받기는커녕 학원에 가지 못해 낙심하고, 아무리 아르바이트를 해도 대학 등록금을 당할 수 없어서 중도에 포기하고, 채무자가 돼서 사회에 첫 발을 딛는 젊은이들에게 “교육의 기회는 평등하다”고 큰소리 칠 자신이 없습니다.

쿠바의 어느 작은 도시에서 만났던 고등학생들의 자유분방한 모습이 두고두고 떠오르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오피니언타임스=이호준]

 이호준

 시인·여행작가·에세이스트 

 저서 <자작나무 숲으로 간 당신에게>, <문명의 고향 티크리스 강을 걷다> 外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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