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영의 창(窓)]

인간을 사랑한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의 명령을 어기고 인간에게 불을 가져다줬다. 불은 인간 문명을 풍족하게 했지만, 인간이 제우스 눈 밖에 나는 계기가 됐다. 분노한 제우스는 지상에 판도라의 상자를 보내 인간들을 질병과 질투, 원한 속에 살도록 했다.

이제 인간들은 자연의 불꽃을 넘어 인공적으로 만든 불빛을 누리고 있다. 인공 불빛은 인간이 밤에도 사물을 인식하고, 활발히 활동하게 만든다. 도심의 밤은 상점의 화려한 네온사인들로 대낮처럼 빛난다. 그러나 프로메테우스의 불로 인해 인간이 벌을 받았던 신화의 내용처럼, 인간의 욕망이 만든 불빛은 다시금 인간에게 불행을 가져왔다. 현대에 이르러 심각성이 대두된 빛공해가 그것이다.

서울시내의 도시 조명. 밤을 낮처럼 비추는 인공조명은 인간과 자연 생태계를 파괴하는 심각한 문제다. ©서울시

밤을 낮처럼 비추는 인공조명은 생태계를 병들게 하고 있다. 식물들은 낮과 밤을 구별하지 못해 정상적으로 성장하지 못한다. 빛에 취약한 콩과 같은 식물들은 아예 열매도 맺지 못할 정도로 그 피해가 크다. 동물들도 빛공해로 고통 받는다. 달이나 별빛을 보고 이동하는 철새들은 방향을 잡지 못해 도심의 고층건물이나 탑에 부딪쳐 죽는다. 여름이면 매미들이 밤낮없이 울어댄다. 도심 불빛은 반딧불이 생존을 위협한다.

인간 역시 빛공해의 총구로부터 안전하지 않다. 빛공해는 사람의 생체리듬을 파괴한다. 깊은 수면에 빠지기 위해서는 몸에서 멜라토닌이 분비돼야 하는데, 밤에 일정 밝기 이상의 빛에 노출되면 호르몬 분비가 억제돼 면역력이 떨어질 수 있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기구(IARC)는 2007년 빛공해를 발암물질로까지 지정했다.

한국의 빛공해는 전세계에서 최악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음에도, 정부는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지 않고 있다. 2013년 정부는 ‘빛공해 방지법’을 제정했지만 이는 탁상행정에 그쳤다. 몇 년간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늘어나는 주민들의 빛공해 관련 민원과 피해 사례들은 법안이 실효성 없었음을 보여준다.

대표적인 경우가 제주공항의 빛공해 사례다. 2016년 9월, 제주공항 인근 농가들이 빛공해로 농작물 피해를 입었다. 공항 외부 침입 방지 및 시설물 보안을 위해 울타리에 켜놓은 등이 주변 밭까지 환히 비추면서 농작물의 생육 부진을 초래했다. 빛공해에 따른 농작물 피해가 잇달아 발생하고 있지만, 제주도는 관련법에 명시된 사항을 이행하지 않는 등 대책 마련에 손을 놓고 있다.

비단 제주도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 역시 빛공해 방지법이 있음에도 빛공해 피해에 전혀 대응하지 않고 있다. 경기도의 경우 지난해 빛 공해 환경영향 용역 결과 주거지역 평균 40%가 인공조명 빛 방사 허용기준을 초과한 것으로 집계됐다. 또한 울산 역시 환경단체 표본조사 결과 상업지역 광고물의 88%가 빛공해 방지법이 정한 빛 방사 허용치를 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네온사인 가득한 서울 강남 거리. ©플리커, 강응규

현행 빛공해방지법상 빛공해를 관리하려면 지자체에서 ‘조명환경관리구역’을 지정해 관리해야 한다. 하지만 전북과 강원, 충남, 충북, 경남, 경북 등 6개 시도는 빛공해 관련 조례조차 아직 제정하지 않았다. 조례를 만든 지자체 중에도 조명환경관리구역을 지정한 곳은 서울이 유일하다. 환경부는 2018년까지 전 국토의 50%를 조명환경관리구역으로 지정하겠다는 계획을 수립했으나 정작 빛공해 영향평가 예산을 2억원에서 3500만원으로 대폭 삭감하는 등 빛공해 방지 업무를 지자체에 미루고 있다.

많은 기대를 안고 시행된 빛공해 방지법의 결과는 참담하다. 법안의 실효성이 떨어지는 이유는 지역적 특성과 법 적용에 따른 지역개발 규제 문제를 고려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예컨대 전라북도는 산과 논이 많은 지역의 특성상 빛공해방지법을 서울과 동일하게 적용하는데 한계가 있다. 따라서 일괄 기준이 아닌 지역 특성에 맞는 규제가 필요하다.

프랑스, 스페인, 일본 등 외국의 빛공해 규제법의 경우 조명 관리 구역을 3~4개로 구분해 기준을 차등 적용하고 있다. 프랑스는 전국을 도심, 농촌, 자연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해 빛공해의 폐해를 막고 있다. 정부는 지자체에 책임 떠넘기기 식의 기존 법안을 개정해야 한다. 지자체와 지속적 대화를 통해 각 지역에 적합한 기준을 만들고 제대로 실행되는지 감시해야 한다.

최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가 발표한 세계 빛 공해 실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빛공해 지수는 89.4%로 이탈리아(90.3%)에 이어 세계 2위로 나타났다. 빛공해는 생각보다 훨씬 심각하다. 생태계를 교란하고 인간에게 직간접적인 악영향을 끼치는 빛공해 피해를 줄이려면 정부가 더 적극적인 자세를 취해야 한다. 빛공해 방지법을 지역마다 차등 적용하고 법의 강제성을 강화해 인공 빛에 빼앗겨버린 밤을 되찾아와야 한다. [오피니언타임스=오승영]

 오승영

경희대학교 재학 중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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