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건의 드라이펜]

최순실게이트를 수사하고 있는 특검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재청구를 검토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이 공범관계임을 입증하기 위한 특검의 조바심은 이해하지만 결론부터 말해 그것은 무리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8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법원은 범죄소명이 덜됐다는 이유로 특검의 영장청구를 기각했다. ©포커스뉴스

특검은 삼성이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최순실의 개인회사 코레스포츠컨설팅,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등에 지원했거나 지원 약속한 430억원은 박 대통령이 국민연금을 통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도와준 것에 대한 뇌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특검은 지난달 이 같은 혐의로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가 범죄소명이 덜됐다는 이유로 법원으로부터 기각 당했다. 뇌물죄는 수수 쌍방을 조사해도 입증이 쉽지 않은 혐의인데 받은 측인 박 대통령은 조사도 하지 않고 준 사람만 구속할 수 있냐는 것이다.

박 대통령의 뇌물죄는 탄핵의 핵심적인 근거다. 뇌물죄가 성립되지 않으면 헌재의 대통령 탄핵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특검이 박 대통령에 대한 대면조사를 서두르면서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재청구를 검토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원래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에 거액을 기부한 이재용 등 대기업 경영주들은 국회청문회에서 대통령이 도와달라고 해서 국가를 위한 좋은 일로 알아 지원했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특검 조사에서 이 부회장은 정부의 강요에 의해 준 것이라고 입장을 바꿨다. 정부의 압력을 거부할 기업이 있을 수 있냐며 삼성은 피해자라고 했다.

특검은 강요죄에 해당하는 박 대통령의 권력남용 혐의를 확보한 성과를 올린 셈이나, 강요죄론 약하다는 입장이다. 이른바 ‘박-최 경제공동체’가 삼성에 이권을 주고 뇌물로 받은 돈으로 보고 있다.

그 뇌물의 연결고리가 2015년 7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이다. 이 합병은 삼성물산 주주들에게 손해를 안기면서 반면 이재용에게 삼성그룹 경영권 안정의 이익을 안겨준 불법적인 합병이라는 게 특검의 주장이다.

2015년 7월17일 삼성물산 임시 주주총회에서 삼성물산-제일물산 합병 표결이 진행되고 있다. 합병 가결 과정에서 10만명 가량의 소액주주 75.3%가 주총에 참석, 82.1%가 찬성한 것은 의미가 있다는 지적이다. ©포커스뉴스

2015년 5월 합병발표 때부터 시작된 이 논쟁은 주총에서 69.5%의 찬성으로 합병안이 가결된 이후 잠잠해지다가 툭검의 수사를 계기로 되살아났다. 하지만 어떤 종류의 기업합병도 주주 및 기업 사이에 이해관계가 다르기 때문에 찬반이 갈리게 마련이다.

이 문제에 대한 최선의 해결책은 시장의 선택이다. 검찰이 개입하려면 주가조작이나 합병비율 산정의 왜곡과 같은 범죄혐의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 특검은 그런 불법성보다 두 회사의 주주였던 국민연금이 청와대의 압력으로 합병에 찬성해 연금에 손해를 끼쳤다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나 투자의 손익 여부는 기준을 어디다 두느냐에 따라 해석의 여지가 넓다. 합병 당시에 수사를 했더라도 가려내기 쉽지 않았을 이런 문제에 검찰이 뒤늦게 법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 온당해 보이지 않는 이유다.

합병 가결 과정에서 눈여겨 볼 것은 소액주주들의 찬성이다. 소액주주의 삼성물산 주식지분은 29.4%로 국민연금의 지분 5.04% 보다 6배 가량 많았다. 이들도 처음 합병 발표 때는 대부분 반대했으나 미국의 헤지펀드 엘리엇이 반대세력으로 등장한 이후 찬성으로 돌아섰다. 10만명정도 되는 소액주주의 75.3%가 주총에 참석, 82.1%가 찬성했다.

삼성직원들이 수박 한 통을 사들고 소액주주들을 찾아가 찬성투표를 호소한 결과라고도 하지만 M&A로 주가를 올려 매매차익을 노리거나, 고율배당을 노리는 헤지펀드의 속성을 소액주주들이 잘 알기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 외국의 헤지펀드에 의해 한국 대표기업의 경영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는 삼성의 애국심마케팅이 주효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합병 과정의 불법성에 대해 엘리엇이 제기한 여러 소송에서 법원도 삼성의 손을 들어줬다. 이같은 소액주주와 법원의 행동 또한 특검의 수사대상이 되어야 하는 걸까? 특검은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에 기부한 삼성 이외의 대기업에 대해서도 같은 혐의로 수사를 벌이고 있다. 거기에서는 어떤 뇌물죄의 연결고리가 나올 것인지도 궁금하다.

특검은 합병에 찬성한 당시 문형표 국민연금 이사장을 구속기소했다. 그의 결정이 오직 청와대의 압력 때문이었는지, 시장상황을 반영한 것인지도 따질 여지는 있어 보인다.

특검은 ‘기업때리기’ 보다는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의 공범관계 입증에 더 집중해야 한다. ©포커스뉴스

이런 정황들로 인해 박 대통령은 뇌물죄 부분에 대해 검찰과 특검이 ‘엮었다’고 극력 반발하고 있다. 다음 주에 특검이 대면조사를 하더라도 혐의를 전면 부인 할 것으로 예상되는 박대통령으로부터 증거를 잡기도 어려울 전망이다.

박-최의 공모관계를 입증하는 것도 어려운 과제다. 두 사람 모두 문화융성이라는 국가적 과제로 수행된 사업이라고 주장하고, 박 대통령은 특히 최씨의 사익 추구 행위를 몰랐다는 입장이다. 정책사업으로 포장된 사기 의혹은 혐의가 밝혀진 예는 드물다.

대통령이 범죄를 저지른 경우는 많다. 과거 대통령 가운데 기업으로부터 수천억 원의 불법정치자금을 받아 사리사욕을 취한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두 재단에서 1원 한 장 챙긴 게 없다는 입장이다.

대통령이 내란과 외환의 죄가 아니고는 형사소추 되지 않는다고 한 헌법조항은 대통령직(Presidency)의 막중함을 뜻한다. 거기에는 대통령은 최소한 파렴치 범죄를 저지르지 않을 것이고, 국민들도 결코 그런 대통령을 뽑지 않을 것이라는 함의가 있다.

따라서 대통령이 설령 파렴치 범죄를 저질렀다하더라도 이 범죄를 국민에게 공표할 때는 최대한 신중을 기해야 한다. 그것은 국격의 유지와 국민의 사기관리 차원에서도 필요한 자세다.

검찰이나 특검의 박 대통령 수사는 그런 사려 깊음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검찰이 작년 11월 수사결과를 발표할 때 ‘박-최 공범증거는 차고 넘친다’고 했다. 또 ‘압수된 녹음파일을 10초만 틀면 촛불이 횃불이 된다’고도 했다. 엄청난 증거를 확보한 듯이 말했지만 이렇다 할 내용은 없었다.

특검이 이 부회장에 대한 영장청구를 하면서도 같은 소리를 했다. ‘이 부회장에 관한 증거가 차고 넘친다. 영장 내용을 보면 사람들이 기절할 수준’이라고 했다. 그 영장은 기각됐다.

최순실게이트에서 삼성의 관련금액은 상대적으로 크지만 매출 규모에 비해 과대한 편은 아니다. 그래도 삼성이 최순실 모녀에게 파격적인 지원을 한 것은 최씨가 박 대통령의 측근실세임을 다른 어느 기업보다, 어느 공직자보다 정확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 점에서 이 사건에 삼성이 연루된 것은 삼성의 과잉 정보력이 빚은 사고 일 수 있다. 삼성이 앞으로 심혈을 기울여 수집해야 할 정보는 로비용 정보가 아니라 기술에 관한 정보여야 하는 이유이다. [오피니언타임스=임종건]

 임종건

 한국일보 서울경제 기자 및 부장/서울경제 논설실장 및 사장

 한남대 교수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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