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기수의 중국이야기]

꽤 지난 일이다. 대학생과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세계화 시대에 대하여 강의를 하고 난 며칠 후 필자는 뜻밖에도 강의를 주관한 담당자로부터 호출을 받았다. 그는 필자에게 혹시 강의 중 ‘독도를 지키지 말라’고 했냐고 물었다.

하늘에서 본 독도 ©포커스뉴스

본말은 이랬다. 당시 TV에서 어느 연예인이 대여섯살 된 아들과 또래의 친구들과 함께 독도를 방문해서 독도가 우리 땅임을 일깨워 주는 프로그램이 방영된 적이 있었다. 필자는 글로벌 마인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자 했다. 이 프로그램이 잘못되었다거나 독도를 지키지 말라는 뜻이 아님을 분명히 얘기했다. 단 아직 사리분별이 부족한 아이들에게 무조건 ‘독도는 우리 땅, 일본은 나쁜 나라’라고 주입시키는데 따르는 문제점을 지적하고자 했다. 최소한 동북아 근대사를 알게 하고 진정으로 일본이 억지 주장을 하고 있음을 스스로 알게 하라고 했다. 집에 독도 지도보다는 세계지도를 걸어놓고, ‘독도를 지키라고 가르치지 말고 세계를 지키라고 가르치라’고 했다. ‘절대로 독도를 지키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을 수차례 했고, 세계인이 되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임도 분명히 했었다.

강의가 끝나고 어느 수강자가 주최 측에 항의를 했다고 한다. 어떻게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더군다나 교수 신분으로서 ‘독도를 지키지 말라’라고 가르칠 수 있느냐는 것이다. 필자는 사과와 함께 재발 방지를 약속해야 했다. 받아들이고 생각하기에 따라서 참 여러 가지 해석이 있게 됨을 절감했다.

한때 롯데의 국적을 문제 삼아 네티즌 불매운동이 벌어진 적이 있다. 소위 ‘형제의 난’을 통해서 롯데의 민낯이 드러나는 가운데, 롯데그룹의 지주회사인 호텔롯데의 주요주주가 일본롯데홀딩스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부터다. 많은 사람들이 배신감을 느낀다고 했고 롯데 그룹의 주식은 폭락하기 시작했다.

90년대 초 우리가 중국에 진출했을 때 우리는 또 다른 SK, 또 다른 삼성, 또 다른 대우를 중국 대륙에 건설하자고 했다. 한국 땅에서 세계의 기업으로 성장한 그 노하우를 살려 대륙에서 제2의 신화를 창조하자고 야심차게 도전했다. 19세기 중반 중국이 서구열강들을 배우고자 했던 자강운동은 중체서용(中體西用)이었다. 몸과 마음은 중국 사람이면서 서구의 좋은 점만 배우고자 했다. 우리는 한체중용(韓體中用)이었다. 몸과 마음은 한국 사람이면서 한국에서의 성공경험을 중국 땅에 접목하려고 했다. 중체서용은 일본의 환골탈태(換骨脫胎) 때문에 청일전쟁에서 대패했고, 우리는 오래지 않아 근본적으로 중국에서의 전략을 바꾸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최근 중국에서의 우리 기업들 슬로건은 ‘중국 땅에서(在中國), 중국을 위해서(爲中國)’이다. 진정으로 중국을 위한 회사(C4C: Company for China)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이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중국 사람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며, 중국사회에 진정으로 공헌해야 중국 땅에 발을 붙일 수 있다는 것이다.

©픽사베이

삼성 차이나의 기업 슬로건은 ‘중국인민에게 사랑받는 기업, 중국사회에 기여하는 기업’이다. 한국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한국사회에 기여하는 기업이 아니다. 중국 이랜드가 지난 10여 년 동안 중국에 기부한 사회공헌 기금은 1000억원이 넘는다. 중국에서 최대 규모인 장애인기금을 설립했고, 중국의 빈곤 청소년을 대상으로 전폭적인 장학사업과 장애인 특수교육을 시행하고 있다.

롯데 소공동이나 잠실 백화점은 우리나라 정부에 세금을 낸다. 물론 우리나라 GDP에 기여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하고 있다. ‘소니 뉴욕’은 미국정부에 세금을 낸다. 그리고 미국 GDP에 기여하며 미국 사람들이 일하고 있다. 네슬레는 해외매출액이 98%이고 해외직원이 97%이며 해외자산이 81%이다. 적지 않은 중국 사람들이 네슬레의 중국이름인 취에차오(雀巢)를 중국브랜드로 알고 있다. 네슬레의 원래 뜻인 ‘작은 새둥지’라는 뜻을 그대로 옮겨 왔다.

삼성이나 이랜드 중국은 중국 정부에 세금을 내고 중국 GDP에 기여하며 우리가 아닌 중국 사람들이 일하고 있다. 물론 중국 내 다른 기업들도 마찬가지이다.

국가의 거시경제지표로 국민총생산인 GNP가 아니라 국내총생산인 GDP를 사용하기 시작한 게 1994년이다. 그 회사가 어느 나라 사람 것이냐 하는 것보다는 그 회사가 어디에 위치해 있는 지가 더 중요해졌다.그렇게 된 지 오래이다. 롯데 소공동은 한국 회사이고 소니 뉴욕은 미국회사이며 삼성 차이나는 중국 회사이다. 세계화는 기업의 국적이 없어짐을 의미한다. 바야흐로 기업들은 마케팅과 원료수급의 효율성에 따라 지역별로, 업종별로 통합되어 가고 있다.

모름지기 애국심은 교육을 가장한 세뇌나 강요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고향을 떠나봐야 고향의 소중함을 알 수 있고 나라 밖에 나가봐야 조국의 자랑스러운 위상이 보인다. 해외의존도가 거의 절대적인 우리는 이제 애국이라는 범위를 보다 넓힐 필요가 있다. 특히 세계라는 시장에서 척박한 현지에 뿌리내리려고 노심초사하는 기업에게는 더하다. 단지 이 땅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당연히 지켜야 하는 것이라는 사상의 주입보다는, 객관적인 균형감각에 의하여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마음이 건강한 애국심을 낳는다.

중국 정부가 현지에 진출한 롯데그룹 전 계열사에 대해 세무조사를 포함한 전방위 조사에 들어갔다고 한다. 중국의 속 좁은 사드 보복이나 트럼프의 일방통행을 보면서 많은 것이 생각나는 요즘이다. [오피니언타임스=함기수]

 함기수

 글로벌 디렉션 대표

 경영학 박사

 전 SK네트웍스 홍보팀장·중국본부장

오피니언타임스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칼럼으로 세상을 바꾼다.
논객닷컴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론(nongaek34567@daum.net)도 보장합니다.
저작권자 © 논객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