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미의 집에서 거리에서]

와인의 나라 프랑스에선 와인을 만드는 포도원 혹은 양조장을 뜻하는 샤토가 신개념 복합 문화예술 체험공간으로 주목받고 있다. 샤토들이 와인 시음회 등의 미각프로그램 외에 문화예술 공간으로서 역할을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적한 시골마을에 유명 건축가들이 건립한 ‘포도밭 속 미술관’은 독특한 나들이 명소로 입소문을 타고 있다.

©픽사베이

그 대표적인 사례가 남프랑스 엑상프로방스에서 북으로 약 15km거리에 위치한 ‘샤토 라 코스트’(Chateau La Coste)다. 이곳은 얼마전만해도 와인 브랜드로서 그닥 주목받지 못했지만 2000년대 초 중반에 걸쳐 유명 대가들을 대거 참여시킨 아트프로젝트 이후 ‘남불의 꼭 가보고 싶은 샤토’로 방문객이 급증했다. 화가 폴 세잔느의 고향, 빛 고은 한적한 시골마을 엑상프로방스 부근의 포도밭이 현대미술의 새로운 성지로 탈바꿈했다.

이전에도 샤토 린지 바쥬라든가 규모 큰 샤토가 밀집해 있는 보르도 지역의 몇몇 샤토들은 자체 건물을 전시 공간으로 활용하며 와인 시음과 더불어 예술 체험의 기회를 제공해왔다. 샤토 라 코스트는 이들과 또 다르게 한걸음 나아가 세계적 대가들과의 협업을 통해 아예 포도밭에 본격 현대미술관을 신축했다. 그리고 45만 평 규모의 거대한 야외 조각 공원을 꾸몄다. 방문객으로선 한가롭게 포도밭을 거닐면서, 자연 환경과 지형에 맞춘 건축과 건물 안팎의 미술품을 감상하며, 도심속 미술관과 차별화한 문화 체험의 기회를 만끽할 수 있다.

포도밭을 ‘와인-건축-현대미술’의 복합 공간으로 이끈 패트릭 맥킬렌 샤토 라 코스트 대표는 아일랜드 더블린 출신의 부동산 투자가이자 미술품 컬렉터다. 아트프로젝트 성공으로 샤토만 유명해진 게 아니라 와인의 질과 격도 높아져 중고가 브랜드로 이미지 업, 분위기 쇄신이 이뤄졌다.

샤토 라 코스트는 아트프로젝트에 참여한 건축가 미술작가의 이름만으로도 세인의 이목이 쏠린다. 프랑스 출신의 건축 대가 장 누벨이 샤토의 전체 디자인을 맡았고, 프랭크 게리, 안도 다다오 등이 참여했다. 미국 LA 월트디즈니홀과 스페인 빌바오 구겐하임미술관의 건축가 프랭크 게리는 상단에 대형 나무기둥을 쌓아 올린 듯한 구조의 야외콘서트홀을 지었다. 샤토의 입구, 중앙 아트센터와 15세기 석조 성당을 둘러싼 ‘작은 성당’은 안도 다다오 특유의 회색 콘크리트와 유리가 돋보인다. 남불의 태양아래 은빛으로 빛나는 반원통형 와인 저장고는 장 누벨의 작품이다.

©픽사베이

천장의 뚫린 원형으로 건물 외부와 통하는 등 구조물로서 미감이 인상적인 안도 다다오 설계의 아트센터 연못에는 루이스 부르주아의 거대한 청동 거미가 물 위를 기어가듯 놓여 있다. 알렉산더 칼더와 스키모토 히로시의 작품도 물 속에 설치돼 있다.

이밖에 대규모 포도밭 곳곳에 리차드 세라, 애니시 카푸어, 제임스 터렐, 션 스콜리, 앤디 골드워디, 미야지마 타츠오, 아이 웨이웨이, 리암 길릭, 트레이시 애민 등 국내에도 널리 알려진 유명 작가들의 작품들이 놓여 있다. 미술관에선 현대미술가들의 개인전이 지속적으로 열린다. 한국 작가 이우환 씨의 개인전은 ‘공기의 집’이라는 제목으로 2015년 열렸다.

이 샤토의 아트프로젝트는 마스터 플랜을 정해두고 따르기 보다 건축가 작가와의 협업을 통해 지속적으로 프로젝트를 확대 완성시키는 점이 특징이다. 아트프로젝트에는 건축대가 렌조 피아노, 노먼 포스터, 리차드 로저스도 참여한다.

2015년 이 샤토를 방문했다는 재 프랑스 화가 이영배 씨는 “와인이 건축 현대미술과 만나는 샤토 라 코스트는 대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흥미로운 공간”이라며 “또 다른 와인 강국인 이탈리아서도 와이너리들이 미술관 건립을 추진중”이라고 유럽 와이너리들의 문화마케팅 열기를 전했다.

포도밭이 자리잡은 한적한 시골 마을로 사계절 내내 방문객의 발길이 이어지면서 인근 마을에 호텔, 식당들이 들어서며 지역의 풍경도 달라지고 있다. 해외 문화예술마케팅의 성공 사례가 국내서도 우리 환경에 맞춰 꽃 피울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오피니언타임스=신세미]

 신세미

 전 문화일보 문화부장.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후 조선일보와 문화일보에서 기자로 35년여 미술 공연 여성 생활 등 문화 분야를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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