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선의 컬처&마케팅]

개그콘서트 ‘불상사’ 코너에서 부장이 말끝마다 꼰-대라고 하는 것을 보았다. 이 코너뿐이 아니라 꼰대라는 말은 일상에서도 자주 쓰여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를 구분짓는 말이 되고 있음을 수시로 확인한다. 꼰대! 먼 옛날 말 같았는데…… 젊은 층들이 자신들과 기성세대를 가르는 잔인한 칼로 이 말을 쓰다니 좀 착잡하다. 우리도 예전에 특정 선생님은 꼰대라고 불렀었다. 모든 선생님을 다 꼰대라고 부른 것은 분명히 아니었다. 그때 우리는 직감적으로 꼰대가 누구인지 알았다.

©픽사베이

꼰대와 등대

꼰대는 사전에 1. ‘늙은이’ 2. ‘선생님’의 은어라고 나와 있다. 위키 백과에서는 기성세대나 선생을 뜻하는 은어라고 정의한다. 비하해서 우두머리란 뜻도 있다. 꼰대의 어원은 여러 설이 있는데 중국어의 노두아(老頭兒)에서 왔다는 설, 영남 지방에서 주름이 많은 번데기를 뜻하는 ‘꼰데기’의 변형이라는 설, 프랑스어로 백작을 뜻하는 꽁떼(Comte)를 일제시절 그 작위를 받은 친일파들이 꽁데라고 으스댄 것을 국민들이 비웃는데서 왔다는 설 등이 그들이다.

그 중 설득력 있는 것은 영남 사투리 기원설이다. 그곳에서는 하찮은 존재를 말할 때 ‘꼰디’라 하고 좀스럽고 꽉 막힌 사람을 말할 때 쓰는 ‘꼰질꼰질하다’ 용어가 있다. 현재 꼰대는 “나 때는 말이야”, “어른한테 감히” 하는 식으로 권위적이고 말이 통하지 않고 본인만 옳은 사람이란 의미로 쓰이고 있으니 더 그럴듯하다. 거기서 나온 파생 비속어가 굉꼰이나 젊꼰이다.

절망이 있으면 반대편엔 희망이 있다. 꼰대 반대편 말로 나는 등대가 떠오른다. 의미와 각운이 맞는다. 해안이나 섬에 설치된 등대는 어둠 속에서 외로운 운항을 하는 배들에게 방향을 제시함으로써 고독, 의지, 길, 희생 같은 문학적 영감을 주는 테마이기도 하다. ‘저 깊은 적막을 비추는/ 불빛 한 줄기 되면 어떨까(권혁소)’, ‘내 생의 등대가 저 깜빡이는 불빛 아니던가/… 내가 저 어린 것들의 등대란 말인가(김선굉)’ 같은 시들을 보라. 나이든 사람, 선생님, 우두머리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외롭지만 우뚝한 등대 역할을 못하면 사회는 길을 잃고 헤매게 된다.

촛불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고 있다.(위) 보수단체 회원들이 박 대통령 탄핵 기각을 외치고 있다. ©포커스뉴스

광화문 광장의 두 세대

매주 토요일이면 광화문 광장엔 아주 상이한 두 집단이 모인다. 한 집단은 80세 할머니부터 넥타이 부대와 학생, 젊은 아빠엄마와 아이들까지 다양한 층이 촛불을 들고 노래와 공연 등으로 거의 축제처럼 한다. 반면 다른 집단은 대체로 나이가 많고 태극기를 들었으며 격한 어조와 살벌한 용어를 구사한다. 계엄령 선포 주장에 군가까지 틀어댄다. 히틀러가 권력을 잡기 전 독일 분위기 같다. 일각에서는 후자 집단이 동원된 것이라지만 일부는 그럴지 몰라도 규모나 열정으로 봐서 싸잡아서 그럴 수는 없다.

내가 사는 과천 아파트의 노부부도 가끔 나간다. 남편은 육군 중사 출신인데 군인연금과 노인 복지에 꽤 만족하는 분이다. 아마 이번 구정에 시골에 다녀온 젊은 자식들이라면 아버지나 삼촌이 후자 집단과 비슷한 주장을 하는 것을 듣고 당황하여 자신들 입을 다물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아주 묘한 집단이다. 과거 더 타임지 특파원이 모 일간지에 기고한 ‘어글리 코리안, 내가 본 그 위대한 세대’라고 한 것이나 영국 이코노미스트지 기자 출신이 ‘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라고 표현한 양면성의 세대와 거의 겹치기 때문이다. 일부 동원되었거나 또는 특수 이해관계 때문에 나온 분들을 빼면 대부분은 오랜 경험과 애국충정, 촛불 세대에 대한 분노나 소외감 때문에 나왔을 것이다. 그들은 우리 형, 삼촌, 이웃 선배, 아버지들로 우리의 또 다른 자화상이다. 그래서 우리가 이들을 보는 심정은 꽤 착잡하다.

우리는 이들 집단을 ‘우려한다.’ 이들 집단은 새로운 팩트에 입각하지 않고 과거의 경험에 의존한다는 것이 특징이다. 과거 부정을 저지르지 않은 자가 어디 있느냐, 탄핵하면 당장 나라 절단난다, 대통령이 세월호를 침몰시켰나, 최순실과 대통령은 별개다, 촛불은 빨갱이…… 등이 그들 주장의 주류다. 그들의 주장을 들으면 한때 부정을 저질렀던 국가는 영원히 부정을 용인해야 하는가? 지금 탄핵을 안 하면 친일파를 청산하지 않은 오류처럼 나라가 불의한 소수에 의해 계속 절단나지 않을까? 끝도 없이 나오는 의혹과 대통령의 숱한 변명과 번복 시리즈를 보고도 실체가 안 보이나? 의문이 솟게 만든다. 그들은 팩트를 보지 못한다. 그래서 꼰대의 전형이다.

©픽사베이

휴리스틱 사고와 팩트 체크

꼰대들의 특징은 프레임과 트라우마에 갇혀 있고 그래서 팩트 체크, 블랙스완의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날이 갈수록 변화에 둔해진다. 심리학과 행동경제학에 휴리스틱(Heuristics)이란 용어가 있다. 우리가 일상에서 많이 쓰는 방식인데, 어떤 사안이나 상황을 엄밀한 분석보다는 제한된 정보만으로 즉흥적, 직관적으로 판단하는 것을 의미한다. 서울 사람=깍쟁이, 명문대 출신=유능, 재벌해체 주장=극좌…… 이런 식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이 판단은 때로 불가피하고 경제적이긴 하지만, 세상에 없던 블랙 스완(예: 헌정사 초유의 대통령-최씨 일가 수십 년 커넥션)이 나타나는 것을 예측하거나 인정하지 못해 판단 착오를 할 위험이 크다. 휴리스틱 판단이 곧 꼰대스러움은 아니지만 꼰대들은 대체로 휴리스틱에만 의존한다. 그래서 미국 CNN은 자신들도 휴리스틱 판단에 빠질 위험을 경계해서 팩트체크 코너를 운영한다. 한국의 JTBC도 이 코너를 운영한다. 이들 방송사는 시청자들에게 객관적 판단의 등대 역할을 한다. 어디로 배를 몰고 갈 것인가는 배 선장의 선택에 달린 것이다. 팩트를 인정하는 것은 인지 편향과 집단 정서상 고통스럽다. 나이가 들면 나를 바꾸기보다 세상을 나에 맞추려고 하기 쉽다. 맞불집회에 섰든 지금은 촛불집회에 섰든 누구나 꼰대화(化) 가능성은 있다.

보수 세력이 마지막 반격을 하는 것 같은데, 초기의 팩트 충격에서 벗어나 연어들의 귀환처럼 다시 자신만의 휴리스틱 세계로 돌아가는 모양새다. 탄핵 결정과 대선이 얼마 남지 않았다. 둘 다 정의와 국기(國基)를 다지는 일이다. 중요하고 시급한 일이다. 섭섭함과 분노도 많겠지만 그럼에도 맞불 집단, ‘어글리 코리안 그러나 위대한 세대’에 바란다. 이번 사태는 헌정사상 블랙스완에 해당하는 것이니 제발 꼰대 잣대를 들이대지 말기를. 이제라도 ‘내가 저 어린 것들의 등대란 말인가’ 성찰하여 주시기를. [오피니언타임스=황인선]

 황인선

 브랜드웨이 대표 컨설턴트

 문체부 문화창조융합 추진단 자문위원

 전 KT&G 마케팅본부 미래팀장

오피니언타임스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칼럼으로 세상을 바꾼다.
논객닷컴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론(nongaek34567@daum.net)도 보장합니다.
저작권자 © 논객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