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구의 문틈으로 보는 금융경제]

얼마 전 우연히 서울 강남구 도산공원 근처에 있는 현대모터스튜디오에 들르게 됐다. 스튜디오 서가엔 국내외 자동차관련 전문서적이 가득했다. 어떤 걸 꺼내볼까 둘러보던 중 자동차 관련기술의 과거와 미래에 관한 책에 눈길이 갔다.

미래 자동차에 대한 정보는 비교적 잘 알려져 있어 그리 새삼스럽지 않았다. 오히려 1900년 전후, 그러니까 100여년 전 자동차산업의 초창기 역사를 읽으며 크게 놀랐다. 그동안 환경오염에 민감해진 최근에야 전기자동차가 개발된 줄 알았다. 그런데 실은 가솔린차 등장 이전에 이미 전기차가 시장을 주도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다만 전기차는 배터리 무게와 긴 충전시간이라는 난제를 안고 있었다. 그러던 중 미국 텍사스주에서 대규모 유전개발로 휘발유값이 싸진데다 전기점화장치의 발명으로 휘발유차의 경제성과 편리성이 제고되면서 전기차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지난해 6월 열린 ‘2016 부산국제모터쇼’에 폭스바겐 티구안 차량이 전시돼 있다. ©포커스뉴스

국토교통부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자동차 등록대수는 2016년 연말 현재 2180만대이다. 가구당 1대 이상의 자동차를 갖고 있는 셈이다. 그래도 대부분의 국민에게 자동차는 집을 제외한 재산목록 1호로 여겨진다.

큰아이가 2014년 가을 직장을 경기도 분당쪽 회사로 옮기면서 자동차를 사겠다고 했다. 마포에서 분당까지 거리가 워낙 만만치 않은 까닭이다. 지인들의 의견도 구하고 인터넷검색도 하더니 폭스바겐의 티구안을 구입했다. 당시만 해도 디젤엔진의 SUV 차량이 젊은이들한테 인기가 높았다. 기름값이 적게 들면서 힘이 좋다는 장점에 더해 독일차의 경우 디젤차의 단점이던 소음도 줄였다는 이유가 크게 작용한 듯하다.

자동차 선진국인 유럽, 특히 독일은 우리가 선망해온 나라다. 승용차라면 휘발유차로만 알고 있던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독일산 디젤차는 첨단기술 차로 여겨졌다. 환경기준이 까다롭기로 알려진 유럽에서 디젤차가 잘 팔리는 데엔 다 이유가 있어 보였다. 국내 자동차회사도 덩달아 디젤차 개발에 나섰다. 국내자동차 수요도 수입디젤차로 많이 옮겨갔다. 자동차 등록대수 중 수입차 비율은 2004년 1%에서 2016년 말 7.5%까지 증가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 자료에 의하면 폭스바겐 디젤게이트로 인한 타격이 반영 되기 전인 2015년엔 등록된 수입차 중 디젤차 비중이 68.8%에 달했다. 2016년에는 그 비중이 58.7%로 낮아지고 2017년 1월엔 42.9%로 떨어졌다.

2015년 하반기 미국에서 터진, 소위 폭스바겐 디젤게이트는 세계 최대 자동차그룹의 하나인 아우디폭스바겐의 존립을 흔들었을 뿐 아니라 독일자동차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렸다. 도로 주행 시 배출가스 기준을 맞추기 위해 불법 소프트웨어를 설치해 배출가스 재순환장치를 끄는 방식으로 당국의 인증을 받아온 게 발각됐다. 배출가스 재순환장치가 가동되면 연비가 떨어지니 높은 연비를 자랑하고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불법 소프트웨어를 달았던 것이다.

가르시아 산츠 폭스바겐 이사가 지난달 18일 서울중앙지검을 방문해 디젤게이트에 대해 사과하고 있다. ©포커스뉴스

우리 정부도 뒤늦게 조사에 착수, 해당차량 판매 정지와 141억원의 과징금을 물리고 14개월의 검토 끝에 회사의 리콜계획을 2017년 1월 12일 승인했다. 이후 폭스바겐으로부터 받은 통지문의 일부를 인용한다.

“…환경부는 장기간의 검증을 통해 이러한 결함 시정 조치가 연비나 성능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고객님의 차량에 대해서는 30분 정도 소요되는 소프트웨어 업데이트가 진행될 예정입니다.”

대부분의 차량 리콜은 에어백 등 부품 작동 불량이나 결함으로 해당부품을 교체하는데 비해 이번 리콜은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만이라는 사실이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회사에 전화해 무슨 원리로 질산화가스 배출은 줄이고 연비는 떨어지지 않는지 설명을 요구했더니 자기들은 모르며 정부에서 검사를 했으니 믿어달라고 했다. 여러 번 요청했더니 연료분사 압력을 높이고 분사방식을 1회 분사에서 2회 분사로 바꾸면서 가능해졌다는 신문기사를 보내왔다.

이번 폭스바겐 디젤게이트로 인한 피해자는 나쁜 대기를 마시는 일반국민과 연비 저하를 우려하는 해당차량 소유주로 나눌 수 있다. 따라서 대기오염으로 인한 피해보상은 대기오염 개선 방안 위주로 이뤄져야 마땅하고, 연비저하 여부는 단순한 측정 결과 통보뿐만 아니라 어떤 원리에 따라 연비 지속이 가능한지 충분히 이해시키는 일이 우선돼야 한다.

미국 정부는 일단 폭스바겐과의 합의를 한꺼번에 하지 않았다. 2016년 10월부터 모델 또는 배기량에 따라 순차적으로 합의하되 이것도 법원의 승인을 조건으로 했다. 합의 내용에는 수십억 달러의 벌금이 환경보존을 위한 신탁에 가도록 되어 있고, 배출가스 제로를 위한 투자도 계속하도록 명시돼 있다. 해당 자동차소유주에 대해 막대한 배상을 하도록 돼 있는 것도 물론이다. 고객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합의를 해준 우리 정부는 도대체 어느 나라 국민을 위한 정부인가. [오피니언타임스=김선구]

 김선구

 전 캐나다 로열은행 서울부대표

 전 주한외국은행단 한국인대표 8인 위원회의장

 전 BNP파리바카디프생명보험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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