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자연의 사(死)사로운 생각]

우리나라 청년 실업 문제는 심각하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청년층 체감실업률은 2년 연속 22%로 2000년 이후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게다가 상황이 나아질 기미 역시 보이지 않는다. 2017년부터 향후 4~5년간 사상 최악의 취업난이 시작될 것이라고 벌써부터 뉴스는 예고하고 있다.

한국의 자살률 역시 심각하다. 지난 2013년 이후 계속해서 OECD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하루에 40명 정도가 자살로 사망하는데, 특히 청년들의 극단적인 선택이 늘고 있다. 통계청은 20·30대 청년 사망원인 1위가 자살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다. 높은 청년실업과 자살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지 않을까. 치열한 취업 경쟁과 과도한 스트레스가 주는 압박감이 꽃다운 청년들을 사지로 내몬 것은 아닐까.

©픽사베이

실제로 취업난은 비단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경제상황이 썩 좋지 않다. 프랑스의 경우 2016년 청년 실업률이 25.1%를 기록하며 2012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있었던 영국의 브렉시트와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도 결국 일자리 문제가 가장 큰 핵심이었다.

그럼에도 우리의 청년 자살률이 유독 높은 이유는 무엇일까. 어쩌면 우리가 스스로의 가치와 가능성을 평가하는 법을 익히지 못했기 때문은 아닐까. 우리 사회가 너무나 획일적인 기준으로 서로를 평가하며, 다양한 가치판단 기준을 익히지 못했기 때문은 아닐까?

더 이상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 우리는 포기하게 된다. 자신만의 확실한 믿음 혹은 판단 기준을 갖고 있지 않다면, 타인의 평가에 쉽게 휘둘리고 그들의 평가가 곧 자신의 수준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거듭된 취업실패가 청년들로 하여금 ‘나 자신’에 대한 가능성을 스스로 부정하게 만들지는 않았을까. 그들의 평가가 곧 나의 가치와 가능성을 결정한다고 믿어버리게 된 것은 아닐까.

경제 상황은 청년세대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기에, 연령을 불문하고 저마다의 이유로 모두들 힘든 삶을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능성을 펼쳐야할 인생의 황금기에 그 꿈을 채 못 펼치지도 못하고 사그라드는 청년들의 상황은 더욱 안타깝게 느껴진다.

진화심리학자 로버트 라이트가 쓴 ‘도덕적 동물’에서는 생식능력의 차이가 죽음에 대한 슬픔의 깊이에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한다. 생식능력이 가장 절정을 이룰 때인 10대 후반에서 20대 연령의 죽음은 남겨진 이들에게 더욱 깊은 슬픔을 느끼게 한다는 것이다. 생식능력의 차이로 사람의 가치를 따지는 어찌보면 잔인한 가설이다. 하지만 젊은 세대들의 죽음이, 그들이 가지고 있는 생식능력 뿐 아니라 다양한 재능 혹은 노동력 등을 잃게 한다는 점에서 더 큰 사회적 비용을 초래할 수 있다고 해석한다면 일부분 수긍가능하기도 하다

취업 준비는 끊임없이 평가받는 과정이다. 취업 준비생들은 자신의 학창시절, 영어능력, 인상과 말투 심지어 성격까지도 계속해서 타인에게 평가받는 상황을 맞이한다. 그럴수록 타인의 평가를 의식하기 보다는 스스로의 가능성, 잠재력에 대한 굳건한 믿음이 필요하다.

2017년 정유년이 밝았다. 시끄럽고 또 혼란스러웠던 2016년을, 우리는 잘 보냈고 극복했다. 올해에는 대선이 열릴 것이고, 결과가 무엇이건 상당한 변화가 수반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 땅의 젊은이들이 그들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젊은 청년들을 위한 긍정적 변화가 많이 일어나기를 바라본다. [오피니언타임스=박자연]

박자연

정답을 맞추려고도, 찾으려고도 하지 말자가 인생의 모토입니다. 다양한 죽음의 형태를 통하여 우리네 삶을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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