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진의 법으로 사는 세상]

“누군지 모르지만 논리전개를 그럴 듯 하게 했네요… 그러나 그런 권력에 아부하고 기생하는 나팔수 방송과 언론매체는 그 기능을 상실했다고 봐야 됩니다. 그들이 떠드는 것들은 이미 신뢰와 공정성을 상실했으니 쓰레기나 다름없지요.…… 백성은 참된 진실만 원합니다. …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의 그림자를 청소해야 민족의 미래가 밝아집니다”

우파논객의 글에 대한 어느 열혈남의 댓글이다. 여기에서 거론된 진실과 청소, 두개의 키워드를 다뤄보고자 한다. 일단 청소문제부터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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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청소는 어떠한 의미일까.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의 작년 11월20일 신입당원 아카데미 연설이 도움이 된다. 그는 “다시는 친일세력과 독재세력이 우리 사회에서 떵떵거리지 못하게 하는 그런 대청산이 가능하였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 자신이 집권하면, 반칙과 특권이 없고, 금수저·흙수저가 없고, 개천에서 용 나고, 가난한 사람도 노력하면 부자가 될 수 있고, 높은 직위에도 오를 수 있는 공정한 세상! 기회가 공평하고, 과정도 공정하고, 결과도 정의로운 그런 세상을 만들겠다”고 했다.

좋은 얘기다. 공평하고 정의로운 세상을 원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혹시 청산대상인 친일세력과 독재세력이라면, 지금 누리고 있는 부와 권력을 가능하게 한 것은 반칙과 특권이므로, 지금 이대로가 좋다, 절대 바꿀 수 없다면서 반대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차별과 불공정, 부정의를 낳는 현재의 질서와 체제는 바뀌지 않으면 안된다는 점에 대해서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고 본다. 말하자면 개혁과 개조라는 목표에는 이미 이견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방법으로? 청소 혹은 대청산을 통하여? 누구도 이를 구체적으로 적시한 적이 없지만, 문대표의 위 아카데미 발언을 소개한 홈페이지는 “청산: 과거의 부정적 요소를 깨끗이 씻어버림”이라는 설명을 곁들였다. 그러나 깨끗이 씻어 버린다는 것은 모호하다. 아마도 친일세력이 아닌 자와 독재세력이 아닌 자가 친일세력과 독재세력으로 지목된 자에 대해 생명, 신체, 직업, 재산, 명예 등등 각 부분을 박탈, 몰수, 환수할 것을 예정하는 것일 수 있겠다. 그렇지만 그 범위와 정도를 어떻게 정할 것인가에 관하여는 어려운 문제가 남아있다.

우선 인적청산과 물적청산이 그 방법일 수 있겠다. 먼저 물적청산을 본다. 친일분자와 독재자 및 그에 부화뇌동한 자의 직업, 재산을 몰수 내지 환수할 수 있다. 일명 친일재산환수법은 노무현 대통령 시절인 2005년 12월 29일 제정되었고 2006년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이 특별법은 러일전쟁 이후부터 1945년 광복 이전까지의 친일행위로 축재된 재산을 국가로 귀속시키는 것에 관한 것이다.

민족문제연구소가 펴낸 친일인명사전. 일제강점기에 친일파로 활동한 한국인 명단을 정리했다. ©민족문제연구소

친일반민족 행위자 재산조사 위원회는 지난 2006년부터 4년 간 친일파 168명이 소유한 시가 2106억원, 공시지가 959억원 상당의 1300만 제곱미터를 찾아 국가에 귀속시켰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친일파가 갖고 있던 땅 4억3000만 제곱미터 가운데, 환수한 땅은 3%에 불과하다. 특별법이 만들어지기 전에 후손들이 처분해 제3자에게 넘어간 땅은 국가로 귀속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지금 당신이 살고 있는 아파트부지도 친일파의 소유였을 가능성도 있지만, 선의의 제3자들의 수많은 매매를 거쳐 현재에 이르렀을 수 있다는 것이다.

독재자와 부화뇌동한 자에 대해서는 친일재산몰수법에 해당되는 법이 제정된 바 없으나, 전두환, 노태우에 대하여 선고된 추징금은 최근 상당부분 환수되었다. 부화뇌동한 자가 이룩한 재산은 부화뇌동한 자의 범위와 관련된 문제인 바, 부화뇌동의 개념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하는 점이 전제조건이며, 그가 보유한 재산 중 어떤 부분을 독재에 협력해서 얻어낸 것으로 볼 것인지를 정하는 일이 남아있다.

친일세력이나 독재세력에 의해 피해를 본 사람들에 대하여는 독립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 민주화 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에 관한 법률, 5.18. 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에 관한 법률 등으로 부족하지만 일정 부분 보상, 보훈, 복지 혜택이 주어지고 있다. 더 많은 보상과 혜택이 주어지기를 원한다면, 법률을 제정하거나 개정하여 대상자 및 보상액을 확대하는 방법이 있다.

물적 청산보다 중요한 것은 인적 청산이다. 위의 열혈남이 청소를 운위할 때의 청소는 물적 청산보다는 인적 청산에 강조점을 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적 청산은 물적 청산에 비해 심각한 난점을 함유하고 있다. 우선, 누가 친일분자이며 독재세력인가 하는 점이다.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친일세력에 대해서는 민족문제연구소가 2009년 11월8일 일제강점기에 민족 반역, 부일 협력 등 친일반민족행위를 자행한 친일파의 목록을 정리해 발간한 친일인명사전(親日人名辭典)이 있다.

분야별로 매국 인사 24명, 수작(受爵) 및 습작(襲爵) 138명, 중추원 335명, 일본 제국 의회 11명, 관료 1207명, 경찰 880명, 군 387명, 사법 228명, 친일 단체 484명, 종교 202명, 문화 예술 174명, 교육 학술 62명, 언론 출판 44명, 경제 55명, 지역 유력자 69명, 해외 910명 등 5207명(중복자 포함)이며 중복 인사를 제외하면 수록 인물은 4776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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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세력에 대해 친일인명사전의 기준을 따른다면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시절에 국회의원, 관료, 경찰, 군인, 관변단체, 문화예술인, 교육계 등등의 지위에 있었던 사람들은 상당부분 독재세력에 부화뇌동한 자가 된다. 문제는 친일분자 본인들은 이미 거의 고인이 되었으나, 독재세력 부화뇌동자들은 현재도 살아있거나, 직책에 있는 자들이 많다는 점이다. 일례를 들어 가령 당시 고시에 합격하여 현재도 고위직책에 있는 자들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가 논란이 될 수 있다. 독재시절에 고시에 합격하였다는 사유만으로 이들을 직위에서 파면하고, 신체를 구속하며, 재산을 몰수하는 것이 정당하며 가능한 일인가.

한편 누가 단죄의 주체가 될 것인가도 쉬운 문제가 아니다. 청산을 운위한 문재인 전 대표는 어떤 근거로 자신은 청산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는지 분명하지 않다. 얼마전 박원순 서울시장은 “문재인 대표는 청산되어야 할 낡은 기득권 세력이며, 당의 분열을 불러온 문재인 대표가 적폐 청산의 대상이다”라고 말한 바 있지 않았는가. 또한 위의 열혈남도 조상 중에 친일분자가 없으며, 자신은 국회의원도, 고시에 합격한 자도 아니었고, 경찰이나 군인도 아니었으며, 그냥 아무 직책도 없는 일반인이었다는 이유로 자신을 청산의 주체로 본 것인지, 아니면 민주화운동 경력이 있기 때문에 자격이 있다고 본 것인지, 단순히 진보적 견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물론 이 글은 문재인 대표를 비롯한 청소나 청산을 말하는 세력을 비난하자는 의도에서 쓴 것이 아니다. 여기서 청산은 일종의 정치적 구호이다. 그러한 캐치프레이즈를 높이 내걸어서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을 결집시키고, 정치적 동력을 부여하려는 취지로 그런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만에 하나, 여기에 실체적 무게를 두고, 이를 현실로 실행하려는 의미라면, 방점이 잘못 찍혔다는 점을 주장하려는 것이다.

핵심은 “반칙과 특권이 없고, 금수저, 흙수저가 없고, 개천에서 용 나고, 가난한 사람도 노력하면 부자가 될 수 있고, 높은 직위에도 오를 수 있는 공정한 세상. 기회가 공평하고, 과정도 공정하고, 결과도 정의로운 그런 세상”에 있다. 그런 세상은 미래에 있지, 과거에 있는 것이 아니다. 청산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 오해의 소지가 있기 때문에 모든 종류의 청산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덧붙여 둔다.

하여간 정의로운 사회는 청산만으로 이룩될 수 없다. 누굴 죽이고, 빗자루로 쓸어버리는 방법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상대방을 대화상대로 인정한 뒤에, 협의하고, 협력하고, 타협하고, 양보하며, 묵인할 것은 묵인하고, 용서할 것은 용서하는 가운데 성취되는 것이다. 정의사회는 일거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한걸음 한걸음 접근해가는 것이다. 조선시대 당쟁의 수많은 사례가 증명하고 있듯이 깨끗하게 청산한 자는 다음 순간 깨끗하게 청산당하게 마련이다. 반복되는 청산은 상대방에 대한 원한, 반목, 질시와 결과적으로 국가의 퇴보와 낙후만을 불러온다. 역사가 그러하다. 그러므로 신도 말씀하였다. “너희 중에 죄가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오피니언타임스=김형진]

 김형진

  변호사

  전 대우전자 법률고문

  전 대한주택공사 법률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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