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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은 헌재 소치일(所恥日)[김준범의 동서남북]
김준범 | 승인 2017.02.24 11:03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이 막바지로 치닫는 가운데 대통령 측 대리인단의 변론행태가 도를 넘어섰다는 목소리가 높다. 출석하지도 않을 증인을 무더기로 신청하는가 하면, 매 변론 때마다 갖은 방법을 동원해가며 시간 끌기하는 모습은 더 이상 낯설지 않는 풍경이 됐다.

보도를 종합해 보면 22일 16차 변론에서 있었던 대통령 대리인단의 언행은 법조계의 상식에 크게 어긋날 뿐만 아니라 법정모욕에 가까워 선진국 같으면 법정구속 감이 될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그런 만큼 이날의 법정 모습은 대리인단에 의한 막말과 협박, 선동의 독무대였다고 전한다. 가장 두드러진 활약상을 보인 이는 뒤늦게 대리인단에 합류한 김평우(金平祐·72) 변호사로, 한겨레신문은 그를 가리켜 “기행(奇行) 수준의 막장변론 끝판왕”이라고 이름 붙였다. 

22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16차 변론기일이 열리고 있다. ©포커스뉴스

소설 ‘등신불’의 작가로 유명한 김동리 씨(1913~1995)의 아들이자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을 지내기도 한 그는 이날 작심한 듯 보였다고 한다. 대통령 탄핵안 표결당시 야당 의원들이 미리 사직서를 내고 투표에 참여한 것을 두고 “국회의원이 무슨 야쿠자냐?”고 힐난하고 세월호 7시간과 관련해서는 “대통령은 머리도 깎으면 안 되느냐?”며 엉뚱한 논리를 갖다 붙였다. 

그는 주심을 맡고 있는 강일원 재판관에게 “국회 수석 대리인이냐?”고 막말을 하고는 마침내 재판관 기피신청을 제출했다. 그는 강 재판관을 향해 “증인신문을 매우 적극적으로 하던데, 청구인(국회) 쪽 증인에 대해서는 별로 질문을 안 하고 피청구인(박 대통령) 쪽 증인에 대해서만 주로 묻더라. 자칫 오해하면 청구인의 수석 대리인이 된다”고 한 것이었다.

참고 있던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이 자초지종을 설명하고는 이렇게 꾸짖었다. “말씀이 지나치다. 그런 말을 감히 법정에서 하면 안 된다. 지난 기일부터 참여해서 잘 모르시는 것 같은데 주심 재판관이 주도하기 때문에 질문이 많을 수밖에 없고, 증인들이 주로 피청구인 쪽 증인 밖에 없었다. 사실관계는 알고 말하라.”

그는 지난 1월말 퇴임할 때 ‘3월 13일 이전 선고’를 강조한 박한철 전 헌재소장과 함께 정세균 국회의장·소설가 복거일 씨 등 20명을 증인으로 신청하는 웃지 못할 촌극을 연출하기도 했다. 이날 변론에 앞서 이정미 권한대행은 “심판정 안팎에서 사법권의 독립과 재판의 신뢰를 훼손하려는 여러 시도에 대해 다시 한번 우려를 표한다. 모든 분들은 재판진행 방해 행위를 절대 삼가주시기 바란다”고 주의를 환기시켰다. 이틀 전 있었던 김 변호사의 법정 소란을 의식한 발언이었다.

탄핵심판 16차 변론기일에 참석한 대통령 법률대리인단의 김평우 변호사가 관계자들과 대화하고 있다. ©포커스뉴스

20일의 변론에서 김평우 변호사는 이정미 권한대행의 변론종결 선언을 가로 막으며 “제가 당뇨가 있는데~” 하며 발언을 시작했다. 이 대행이 “어떤 내용이냐”고 묻자 그는 “음식 먹을 시간을 달라”며 뚱딴지 같은 요구를 했다. 당뇨환자의 경우 식사시간을 넘기면 저혈당 증세가 나타난다는 점을 감안하면 충분히 일리는 있는 말이었다. 그렇다면 사전, 사후 심판정 밖에서 그 문제는 조정했어야 했다. 

대리인단은 이날 오후 무려 1시간 30분도 넘게 진행한 발언의 대부분을 법리적인 변론보다는 헌재와 국회를 향한 일방적인 아전인수(我田引水)격 주장으로 채웠다. 그러느라 이날 재판은 3차례나 중단됐다. 18명이나 되는 대통령 측 대리인단은 그러나 변론을 앞두고 최소한의 기본 전략도 세우지 않았던 것처럼 보였다고 전한다. 

김 변호사의 이날 발언 중 “이번 탄핵안은 역사에 없는 섞어찌개 탄핵소추다” “헌재가 이정미 권한대행의 퇴임일(3.13)에 맞춰 재판을 과속으로 진행하고 있다”는 말 등은 의도적인 사실왜곡이다. 또 “‘국정농단’이라는 단어는 조선시대 경국대전에도 없는 말로, 삼족(三族)을 멸하기 위해 만든 탄핵 용어이고 ‘비선조직’이라는 말도 깡패조직·첩보조직에서 쓰는 말”이라는 발언 등은 본질에서 벗어나 상대방의 말꼬리를 잡거나 트집을 잡기 위해 쓰는 전형적인 수법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그가 “재판부가 탄핵심판을 결정하면 서울이 피와 눈물로 덮일 것”이라고 한 것은 대표적인 협박성 발언이다. 태극기를 든 집단과 촛불을 든 집단이 충돌해 서울 한복판이 거대한 내란상태, 즉 전쟁터가 될 것이라는 일면 협박, 일면 선동의 두 가지 목표를 노린 계산된 발언이라고 볼 수 있다. 1994년 김영삼(YS) 정부 때 서울에 온 남북실무대표회담의 북측 대표단장(박영수)이 남측을 향해 ‘전쟁이 나면 서울은 불바다가 될 것’이라며 협박을 서슴지 않았던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발언이다.

대통령 대리인단의 막말과 관련해 이정미 권한대행이 “사법권 독립·재판 신뢰 훼손 시도가 매우 우려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포커스뉴스

이날 김 변호사는 박근혜 대통령이 여자라는 사실을 백분 활용하며 억지에 가까운 말로 변론을 전개했다. “국회의원과 대리인단은 우리나라 최고의 엘리트들, 그러나 약한 사람은 바로 여자 하나다”라며 유난히 길게 말을 이었다. “법관은 약자를 생각하는 것이 정도(正道)라고 생각한다. 성경에도 ‘죄 없는 자가 돌을 던지라’는 말이 있다. 그 7시간 동안 무슨 짓을 했는지 어떻게 아나? 더구나 여자 대통령이다. ‘그동안 어디 있었어?’를 10분 단위로 보고하라니 말이 되나? 세상 사람이 알면 웃는다. 헌재가 약한 여자 편은 안 들고 국회 편만 들고 있다”

그가 말한 ‘여자’는 박근혜 대통령을 가리키는데 얼핏 들으면 그는 대단한 페미니스트인 것 같다. 여기에 왜 ‘여자’가 문제로 등장해야 하는가? 본질과는 전혀 무관한 사실을 억지로 끄집어 내 본질을 흐리게 하려는 전형적인 물타기 전략일 뿐이다. 그는 경기고와 서울법대를 졸업, 사법고시에 합격한 엘리트 법조인의 한 사람으로 인정받아 왔지만 그의 이날 행태는 너무도 실망스러웠다는 게 많은 변호사들의 견해다.

이정미 권한대행은 “어제는 삿대질, 오늘은 모욕적인 언사였다. 말씀이 지나치다”고 말하고 대리인단이 제출한 강일원 재판관에 대한 기피신청을 15분만에 각하했다. 국회 탄핵소추위원장인 권성동 의원도 “대통령 측 대리인의 주장에 일일이 반박할 수 있었지만 반박 자체가 오히려 헌재의 격을 떨어뜨릴 것이기 때문에 반박하지 않았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헌재와 대통령측 대리인단의 대충돌은 이미 예고된 일이었고, 그런 충돌은 옳고 그름을 가리는 심판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이곳은 합리적인 이성으로 무장한 율사(律士)들이 정해진 룰(rule)과 금도를 지켜가며 싸우는 곳이다. 어떤 경우라도 폭언이나 막말을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 바로 동물과 다른 점일 것이다. [논객닷컴=김준범]

 김준범

 (주)대한공론 상임 고문

 전 국방부 국방홍보원 원장

 전 중앙일보 정치부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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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범  balm8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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