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기수의 중국이야기]

베이징 주재원으로 있을 때 북한 사업을 담당했던 필자는 당시 북한 사람들과 어울릴 기회가 많았다. 가라오케도 곧잘 같이 가곤 했는데 그때 들은 북한 노래 중 ‘내 고향 내 능금 내가 따먹고’ ‘내 고향 내 부모 내가 모시는’ 이곳이 지상 천국이라는 가사를 기억한다. 많은 북한 노래들은 단조로 돼 있어서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경향이 있다.

필자의 고향은 시골이다. 중학교를 졸업한 후 청운의 뜻을 품고 서울로 올라왔다. 객지는 언제나 낯설고 물설다. 말씨도 틀리고 있을 곳도 마땅치 않으며 언제나 따뜻하게 반겨주고 먹을 것 챙겨주는 부모도 없다. 그 때부터 결혼할 때까지 자취와 하숙생활을 전전했다. 새로운 친구를 사귀어야 했으며 촌티를 내지 않기 위해서는 말투도 고쳐야 했다.

©픽사베이

가장 좋은 것은 내 고향에서 평생 내 부모 모시고 사는 것이다. 이를 모를 리 없다. 그러나 목표를 달성하고 이상을 향하기에는 고향의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했다. 면적이 좁고 인구가 적으며 자원이 빈약했다. 대학이 없었다. 그래서 필자는 서울로 올라왔다. 이제 객지에서 산지가 고향에서 산 기간의 3배가 되어간다. 말씨도 달라졌다.

다행히 고향까지, 어렸을 때 완행열차로 7시간 걸리던 거리가 이제 자동차로 2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출퇴근을 해도 되겠다고 들 한다. 아예 나라 밖으로 나가지 조차 못했던 우리들은 이제 청량리 역에서 기차표를 끊는 것처럼 인천이나 김포공항에서 비행기 표만 끊으면 나라 밖으로 나갈 수 있다. 비자 없이도 갈 수 있는 나라가 172개국이나 된다. 제주도 가는 것처럼 비행기로 1~2시간 거리에 우리 같은 사람들이 6억~8억 명이 살고 있다.

최근 10년 만에 귀국하여 대선을 위해 분주히 움직이던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광주 조선대 특강에서 한 말이 도마 위에 올랐었다. ‘청년이 국제적인 시야를 가졌으면 좋겠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하는 만큼 외국에 진출할 수 있도록 하고, 정 일이 없다면 자원봉사라도 했으면 한다’라고 했던 모양이다. 당연한 일이지만 반대편들은 즉각 말꼬투리를 잡고 늘어졌다. ‘해외에 나가고 싶어도 못나가는’ ‘실의에 빠진 청년들에게 훈계하듯 말하는’ ‘상처 난 청년들 가슴에 소금을 뿌리는’ ‘세상물정 모르는’ ‘꼰대 정신의 화신’이라고들 흥분했다.

2500여 년 전 중국 춘추시대 말기의 공자(孔子)는 자신이 태어난 노(魯)나라에서의 개혁에 실패한 후, 제(齊), 위(衛), 송(宋), 정(鄭), 진(陳), 초(楚), 채(蔡)나라 등 자신의 뜻을 펼치기 위해 수많은 나라를 주유했다. 다른 여러 나라의 군주에게 자신의 정치적 이념을 설파하고 다니면서 그 학설이 실현되도록 애썼다. 550여 년간의 춘추전국시대를 마감한 진(秦)나라의 힘은 다른 나라 인재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열린 제도로부터 나왔다. 천하통일의 앞장을 섰던 상앙(商鞅), 이사(李斯), 여불위(呂不韋) 등은 자신의 목표를 달성키 위해 자신의 조국을 떠나왔던 사람들이다. 시공을 넘어 오늘 날까지 동양사상의 중심이 되고 있는 제자백가(諸子百家)들 또한 자신이 속한 지역의 편협함을 떨친 사람들이었다.

이는 당시에 이미 나라를 초월해 중원 전체의 공감대와 유대감을 조성하는 공통된 문화와 사상이 전반적으로 형성되어 있었음을 의미한다. 오직 자기의 영지(領地)와 그 이익관계 속에서만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던, 제한되고 단절된 대부 계층의 보수적 시대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픽사베이

어렸을 적 시골에서는 윗마을 아랫마을이 갈렸다. 시내 학교를 다니면서는 동과 면으로 갈렸다. 서울에 와서의 내 고향은 도와 시군으로 되었고 중국에 살면서는 대한민국과 서울이 되었다. 1945년 공상과학소설가 클라크가 얘기했던 지구의 미래상 지구촌(Global Village)시대는 반세기 만에 현실이 되었고 이제 세계는 하나의 마을이 되었다. 조국과 민족을 강조하고 네편 내편을 가르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는 사람은 여의도로 가면 된다. 적어도 경제를 생각하는 사람들은 인생의 운동장을 넓게 쓸 필요가 있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필자 어렸을 때의 고향이다. 면적이 좁고 인구가 적으며 자원이 빈약하다. 웬만한 산업은 포화상태이고 취직할 곳은 날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목표를 달성하고 이상을 향하기에는 우리의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하다. 고향은 떠나봐야 고향의 소중함을 안다. 객지의 서러움을 느낄 때 진정으로 고향 사랑하는 마음도 생긴다.

거처는 마음을 변화시키고, 수양은 몸을 변화시킨다라고 맹자가 말했다. 평생을 고향에서 살면서 내 고향이 가장 살기 좋고 최고라는 것은 무의미하다. 이는 외부와 철저히 고립된 채 바깥세상의 형편을 알지 못하면서 그저 이 곳이 지상낙원이라는 북한과 다를 바 없다. 모름지기 고향의 범위를 넓힐 때가 되었다. 누가 세상물정을 모르는 지는 나가보면 안다. [오피니언타임스=함기수]

 함기수

 글로벌 디렉션 대표

 경영학 박사

 전 SK네트웍스 홍보팀장·중국본부장

오피니언타임스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칼럼으로 세상을 바꾼다.
논객닷컴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론(nongaek34567@daum.net)도 보장합니다.
저작권자 © 논객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