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현의 문화로 만나는 세상]

‘시대마다 그 시대의 물음이 있다. 우리시대에도 우리시대의 물음이 있다. 이 사회와 나라와 겨레는 우리에게 묻는다. 너는 이 사회를 위해, 이 나라를 위해, 이 겨레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하려는가 … 과거장(科擧場)에 나아간 선비가 비장한 포부를 펼치던 심정으로, 지금 우리는 이 시대의 물음에 나름대로의 책문(策問)을 진술해 보아야 한다.’

동양철학자인 김태완 지혜학교 철학교육연구소장이 번역·출간한 <책문>의 초판에 쓴 후기이다. 10여년 만인 2015년 6월, 그는 우리시대가 안고 있는 온갖 문제들로 역사발전을 퇴행시키고 있는 정치인, 지도자들의 책무와 올바른 역사의 방향을 제시하고 싶어 이 책을 다시 펴냈다.

304명의 꽃다운 생명들이 숨진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직후였고, 그 어이없고 엄청난 비극 앞에 책임지는 지도자 하나 없던 참담한 때였다. 대통령은 귀를 막고 국민의 소리는 아예 듣지 않았고, ‘최순실 게이트’를 예고라도 하듯 탐욕과 오만에 빠진 소수 지배엘리트가 권력을 독점하고, 국정을 농단하는 현실에서 그는 다시 한 번 ‘책문’의 의미와 가치를 일깨워주고 싶었다.

책문(策問). 과거시험에서 33명이 치르는 마지막 관문으로 왕은 그 시대 가장 시급한 문제를 물었다. “그대가 재상이라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책문은 정치에서 문화예술, 이념논쟁까지 분야가 다양했다. ‘왕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로 시작하는 문제 역시 대부분 구체적이고 방대하며, 거리낌이 없었으며, 날카로웠다. 그리고 거기에는 왕의 깊은 고민과 기대도 솔직하게 드러나 있었다. 김태완 소장이 소개한 책문에 의하면, 가령 이런 것들이다.

‘지금이야말로 전란의 뒤처리를 잘하기 위한 계책이 꼭 필요한 때이다. 눈앞의 폐단은 일일이 다 거론하기 어려운 정도로 많다 … 이런 수많은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생각을 하지만 방법을 모르겠다. 잘 다스리고자 하는 정성이 부족하다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고, 성급하게 추진하기만 해서 그런 것인가? 아니면 갖가지 행정체계는 갖추어져 있지만, 실효가 아직 드러나지 않아서 그런 것인가? 아니면 나라가 이미 쇠퇴기에 접어들어서 도저히 만회할 수 없기 때문인가? 폐단이 일어나는 원인에 대해 상세히 말해보라.’(광해군)

외교 전략에 대한 것도 있다. ‘왕이 외적을 대하는 방법은 정벌 아니면 화친 두 가지 방법밖에 없다 … (그러나) 같은 정벌이라도 흥하고 망한 차이가 있고, 같은 화친이라도 다스려지고 어지러워진 차이가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선조)

세종은 “법이 제정되면 그에 따른 폐단도 함께 생긴다”면서 그것을 고치기 위해 이미 나와 있는 대책이 과연 타당한지, 아니면 다른 의견이 있는지 물었다. 명종은 온 나라 관리들이 부정과 부패, 탈법을 자행하는 현실을 개탄하면서 6부 관리들이 제 역할 할 수 있는 개혁방안을 요구하기도 했다. 우리의 교육제도는 어떠하며 문제가 있다면 어떻게 개선해야 할지에 대해 말해보라는 책문(명종)도 있었고, 오래전부터 술의 폐해를 염려했으나 모두 뿌리 뽑지 못한 까닭이 무엇인지 말해보라는 것(중종)도 있었다.

지난해 10월16일 서울 경희궁에서 조선시대 과거시험 재현행사가 열리고 있다. ©포커스뉴스

이 같은 책문에 젊은 선비들은 자신이 가진 학문적 깊이와 사회인식, 철학과 소신을 담은 답안, 즉 대책(對策)을 냈다. 아침부터 해거름까지 평균 12미터가 넘는 종이를 빡빡하게 채웠다. 그것들 또한 겸손을 갖추긴 했지만 왕의 책문에 못지않게 그 내용이 풍성하고 날카로웠으며, 생각과 주장에 주저함이 없고 진솔했다.

훗날 사육신이 된 상삼문은 세종의 책문에 법의 폐단이 생기는 것을 과거 역사적 사례를 들어 지적하면서도 근본적으로 법 이전에 임금 자신이 먼저 성찰해 성군들의 마음을 본받으라고 권했다. 그는 반드시 법을 뜯어고쳐야만 이상적인 정치를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니라며 오늘날의 법을 지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자신의 소신을 말하기도 했다.

이황의 문인으로 정유재란 때 의병장으로 싸운 박광전은 선조의 책문에 “정벌은 힘에 있고, 화친은 형세에 달려 있다”고 명쾌하게 답하면서, 이 두 가지를 논하기 이전에 임금이 덕을 쌓아 적이 저절로 찾아오게 할 만큼 신뢰와 위엄을 갖추어야 한다는 평소 마음속에 품고 있던 생각을 말했다.

때론 목숨을 걸고 조정의 문란을 비판하고 왕에 직언과 비판을 한 선비도 있었다. 1611년(광해군 3년)에 치른 별시문과에서 임숙영은 ‘지금 시급하게 힘써야 할 나랏일이 무엇인지’를 물은 왕의 책문에 “스스로의 실책과 국가의 허물에 대해 거론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그는 위기와 멸망의 운수와 재앙과 난리의 조짐과 관련된 궁중 기강과 법도가 엄하지 않은 것, 언로가 열리지 않은 것, 공평하고 바른 도리가 행해지지 않은 것, 국력이 쇠퇴한 것, 바로 이 네 가지 문제를 먼저 언급하면서 “나라의 병은 왕인 바로 당신의 잘못에 있다”고 조목조목 지적했다. 그리고는 척족의 횡포와 왕에게 아첨하는 당시 실세인 이이첨을 비난하고, 왕에게는 “자기 수양에 깊이 뜻을 두시되, 자만을 심각하게 경계하라”고 일침을 가했다.

조정이 발칵 뒤집혔다. 그러나 폭군이라는 광해군 시대도 지금보다는 나았다. 조정에는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고 올곧은 인재를 과감히 발탁하려고 끝까지 고집한 인물들이 있었다. 과거시험을 주관하는 시관인 우의정 심희정이 그랬고, 영의정 이덕형과 좌의정 이항복이 그랬다.

심희정은 임숙영의 기개와 충심을 적극 받아들여 장원으로 급제시키려다가 다른 시관들의 반대로 할 수 없이 병과로 합격시켰다. 문제는 그 다음에 터졌다. 임숙영의 대책을 읽고 진노한 왕이 합격자에서 임숙영의 이름을 삭제하는 삭과(削科)를 명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삼사(사헌부 사간원 홍문관)에서 간쟁하고, 정승 이덕형과 이항복이 나서 삭과의 부당성을 주장했다. 사태가 이렇게 흘러가자, 광해군도 어쩔 수 없이 4개월 후에 삭과의 명을 거두었다. 단, “차후에도 만일 격식을 어기고 책문에 벗어난 글을 제멋대로 뽑을 경우 유사가 마땅히 사정을 따른 책임을 지게 될 것”이란 엄명과 함께.

박근혜 대통령이 2013년 2월25일 취임식을 마치고 ‘희망의 열리는 나무’ 행사에 참석해 국민들의 희망이 적힌 오방낭 복주머니 속 글을 읽고 있다. ©청와대

하물며 조선의 왕들도 이러했을진대 박근혜 대통령은 어떠했고, 어떠한가. 일찌감치 눈과 귀를 꽁꽁 막아 나라의 시급한 문제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으며, 알아도 외면했다. 한낱 부패한 아녀자에 불과한 최순실이란 비선실세에게만 ‘책문’하고, ‘대책’을 받아 나라를 위기와 타락, 부패의 나락으로 몰아넣었다. 온갖 리스트를 만들어 아부하고 맹종하는 인간들에만 벼슬을 주어 권력을 휘두르게 했다. 그래놓고도 잘못을 뉘우치기는커녕 후안무치하게 법과 양심을 비웃으며 저열한 편 가르기나 선동하고 있으니, 한비자의 말처럼 이러고도 나라가 망하지 않은 게 이상할 정도이다.

이제부터라도 이 모든 폐단을 몰아내고 정의와 양심과 공평함이 살아있고, 백성이 편안한 나라를 만들겠다고 많은 대선주자들이 뛰고 있다. 그들이 내놓은 온갖 공약과 다짐도 벌써 풍성하다. 유력 주자의 캠프에는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으며, 그동안 조용히 숨죽이고 있던 그들의 옛 동지들도 다시 고개를 들고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어떤 철학과 신념을 가지고 있을까. 오로지 대선에서 승리하면 얻어질 ‘자리’만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대선주자들 역시 겉으로는 아닌 척하더라도 속으로 그것을 당연하게 여긴다면 나라를 이 지경으로 만든 박근혜 대통령의 캠프인사, 수첩인사, 블랙리스트 인사, 아부 인사와 뭐가 다른가.

그들도 묻고, 답해야 한다. 나중에라도 공직에 나서려는 사람들에게도 묻고 답을 들어야 한다. 그리고 공명정대하게 골라야 한다. 광해군, 아니 박근혜 보다 못한 지도자가 되지 않으려면. [오피니언타임스=이대현]

 이대현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겸임교수

 전 한국일보 문화부장·논설위원

 저서 <소설 속 영화, 영화 속 소설>, <영화로 소통하기, 영화처럼 글쓰기> 外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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