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요섭의 동호지필]

2016년 1월 20일 국민연금공단 장애인심사부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만 스물셋이었던 나이를 고려하면 흔치 않은 경험이었다. 정상인 좌안(左眼)에 비해 내 우안(右眼)의 시력은 사실상 의학적 실명에 해당한다는 진단을 받을 정도로 몹시 나빴다. 우안의 장애등급 판정에 대해 공단과 다툼이 발생한 것이 소송의 이유였다.

©조요섭

시각장애 6급 기준은 나쁜 눈의 시력이 0.02 이하다. 2011년부터 2015년까지 0.02 또는 안전수지(眼前手指, 50cm 정도의 거리에서 손가락 개수를 알아맞히는 경우로 통상 0.02 이하를 의미)로 우안의 시력이 장애 6급에 해당한다는 의무기록지상의 측정치가 총 7건이 존재했다. 2015년 심사 당시, 의무기록지와 함께 A, B, C 3곳의 병원에서 발급받은 장애진단서를 각각 공단에 제출하며 시각장애 6급에 해당함을 주장했으나 공단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2013년에 A병원에서 0.06으로 측정된 기록이 문제였다.

공단은 (2년 전인) 2011년에 이미 0.02에 해당하는 기록이 존재함에도 2013년의 0.06 기록만을 근거로 시각장애 등급 외 판정을 내렸다. 의무기록지상의 측정치만 고려한다면 5개년(2011~2015) 동안 우안 시력의 변화가 0.02 → 0.06 → 0.02(또는 안전수지)로 이뤄졌다. 중간에 시력이 높아지는 것은 안의학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중간에 0.06으로 측정되었다고 해서 그 이전에 0.02로 측정된 것이 그릇된 것이라고 기인할 수 있는 마땅한 근거도 공단 측은 제시하지 않았다. 또한 2015년 심사에 2013년의 기록을 문제로 삼은 것은 타당성이 떨어지는 처사였다.

이런 연유로 소를 제기한 후 나는 신체감정을 받아 소명하겠다는 의지를 스스로 법원에 표명했고, 법원이 지정한 D대학병원을 방문하여 감정을 받았다. 시력이 일시적으로 높아졌다가 다시 낮아진 부분에 대해 감정의는 “저시력의 환자의 경우 환자의 상태나 환경에 따라 조금의 변동이 있을 수 있고 희미한 글자를 추정해서 맞추는 경우 일시적으로 다소 높게 측정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는 의견을 서면상으로 회신하였고 이는 재판부에서 주요증거로 채택됐다. 또한 0.06으로 측정한 당사자였던 A병원 의사에게 재검을 요청하여 우안 시력을 안전수지로 확인받았고 D병원의 감정 내용과 같은 의견이 담긴 소견서를 발급받아 추가 증거로 제출했다.

몇 차례 이어진 공방 후, 이번엔 공단에서 시력측정의 자의성을 문제로 삼았다. 피검사자가 보이면서 보이지 않는다고 주장할 수 있는 맹점을 언급한 것이다. 하지만 이 주장은 기존에 세 병원에서 발급받았던 장애진단서로 반박이 가능했다. 장애진단 시에는 환자의 자의 반영을 막기 위해 시유발전위검사(Visual Evoked Potential : 시각의 광자극에 대해서 대뇌후두엽의 시각중추부근의 뇌파에 나타나는 전위변동, 이하 VEP)를 필수적으로 실시한다. 피검사자의 머리에 전극을 꽂고 뇌파를 측정하기 때문에 자의가 반영되거나 의도적인 조작이 불가능한 검사다.

VEP 검사가 진행되며 환자의 뇌파가 기록되고 있다. ©NEUROWERK

장애진단서는 시력검사 결과 하나만을 토대로 발급되는 것이 아니다. 시력검사 결과와 VEP 검사 결과를 비교, 대조하는 과정을 거친 후 전문의가 합당한 판단을 찾을 수 있을 때 비로소 발급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세 병원에서 문제없이 발급받은 장애진단서를 제출하였는데도 공단이 시력측정의 자의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전문의 3명의 일치된 의학적 판단을 마땅한 이유 없이 배제한 것이다.

변론 막바지에 나는 VEP 검사 결과에 대한 전문의의 의견이 적힌 소견서를 재판부에 추가로 제출하였다. 일시적으로 시력이 높게 측정될 수 있는 점에 대해 전문의 3명(A, B, D병원)의 소견서 내용이 일치했다. 또한 우안 시력이 0.02 이하로 측정된 것이 VEP 검사에 의해 합당하다는 점에 대해서는 전문의 4명(A, B, C, D병원)의 소견이 일치했다. 이러한 증거와 변론내용이 재판부에서 합당한 것으로 인용되었고, 2017년 2월 3일 1심 원고 승소 판결을 받았다.

소송에서 주요 쟁점으로 다툰 2015년의 심사는 사실 두 번째 심사였고, 맨 처음 공단과 다툼이 생긴 것은 2013년 2월의 첫 심사였다. 소송기간만 따져보면 1년여가 소요됐지만 장애를 인정받는 데까지는 무려 4년이란 시간이 소요된 것이다. 2013년 첫 심사에서 등급 외 판정을 받은 당시, 불과 만 20세의 학생 신분이었던 나는 비용 마련이 여의치 않았기에 소를 제기할 수 없었다.

사건마다 천양지차지만 행정소송의 변호사 수임료는 대개 330~550만원대다. 성공보수도 그에 동등한 편이고 인지세, 송달료 등 부대비용을 포함한다면 행정소송의 최저 규모는 1000만원으로 봐야 한다. 물론 승소 시 수임료에 상응하는 금액은 피고에게 청구가 가능하나 순수하게 최소 500만원 이상은 지출된다.

변론과정에서 주장의 객관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여러 곳의 병원을 방문하여 똑같은 검사를 실시, 그 결과를 제출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장애진단은 비보험으로 적용되어 환자가 비용을 전액 부담해야 한다. VEP검사 비용만 1회에 10만원을 상회하고 대학병원 안과에서 실시하는 각종 검사비의 총합은 40~50만원대다. 나의 경우 규모가 작은 것은 차치하고 VEP 검사만 7차례, 대학병원 검사는 2차례 받았으니 이 또한 200만원에 가까운 지출이었다.

물론 원심사 결과에 불복 시 이의신청을 할 수 있는 절차가 마련되어 있다. 이 과정에서 자문의사 또한 변경되긴 하나 최종결정은 오로지 심사 담당자의 소관이다. 동일한 기관이 기존 판단을 토대로 재심사를 하는 과정에서 원심사의 판정이 뒤집히는 경우는 극소수다. 결국 판정에 불복하는 대부분이 쟁송까지 가게 되고, 큰 지출이 불가피하다. 비교적 경증의 장애를 가진 나는 근로를 통해 비용을 마련할 수 있었지만 고령자나 중증 장애인들은 그조차 어렵다. 쟁송을 진행치 못할 경우 결국 그들은 제 3자인 법원이 아닌 오직 공단 내부의 결정을 전적으로 따를 수밖에 없다.

지난해 1월21일 서울지방병무청에서 징병대상자들이 시력 검사를 하고 있다. ©포커스뉴스

비용문제를 막론하더라도 모든 장애인들이 겪은 심적 고통이 적절한 사실판단 없이 단순히 수치화된 판정기준으로 부정되는 것은 그 또한 소극적 폭력의 모습일 수 있다. 장애인 커뮤니티 게시판을 살펴보면, 기준에 부합하였기에 전문의로부터 정당하게 발급받은 진단서를 제출하였음에도 등급 하향 혹은 등급 외 판정을 받았다는 사례가 허다하다. 그들의 게시글에 따르면 공단의 답변 내용은 “좀 더 살다가 상태가 나빠지면 그때 신청하시라”와 같이 무책임한 대응으로 일관됐다.

전문의의 소견과 환자의 실제 상태에 대한 정밀한 고려 없이 심사부의 판정만을 그대로 관철하는 것은 탁상행정이다. 제도를 악용코자 하는 일부 사례들에 대한 대비책으로 판정절차가 강화됐다곤 하나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응당한 혜택을 받지 못하는 피해자들이 발생하고 있다. 맹점을 없애려다 되레 더 큰 맹점이 생긴 꼴이다.

실제로 2015년 9월 국정감사에 제출된 국민연금공단 자료에 따르면 장애등급심사가 국민연금공단으로 이관된 2011년 이후 5개년(2011~2015) 동안 전체 장애심사에서 등급 외 판정을 받은 비율은 16.7%에 달했다. 그 이전인 2010년 보건복지부에서 16만 3944건의 장애등급심사를 진행해 7996건의 등급 외 판정을 내린 비율(4.9%)을 고려하면 3배 이상 급증한 것이다.

공단 직원 개개인의 대응보다 제도의 시스템 자체가 문제다. 공단측 자문의와 심사 담당자의 의견만이 절대적으로 작용하는 기존의 형식을 탈피해야 한다. 장애진단서를 발급해 준 외부 전문의 소견이 최종적으로 심사에 끼치는 영향력을 지금보다 더 확대시킬 필요가 있다. 또한 객관성 확보를 위해 심사 참관 인원을 늘리고 외부 인사 또한 심사에 참여토록 하는 등 제도의 재정비가 이뤄져야 한다.

물질적 혜택을 받는 것도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지만 오직 그 목적만으로 소송을 제기한 것은 결코 아니다. 솔직히 말하면 내게 돌아올 장애 6급 혜택은 아주 미미하다. 지하철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고 이동통신료 등을 할인받는 정도다. 다만 소송까지 불사했던 이유는 그간의 병력과 장애로 인해 겪어야 했던 심적인 상처들을 부정당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고작 몇 줄짜리 텍스트로 인해 그리고 0.02, 0.06이라는 알량한 숫자 몇 개의 차이로 인해 그 모든 것들이 부정되는 게 싫었을 뿐이다. 또한 나의 사례로 말미암아 장애인 심사의 탁상행정이 점진적으로 개선되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3, 4년 전부터 소송비용 마련을 위해 병역을 이행하면서 월급을 쓰지 않고 모았다. 학업에 돌아와서도 주말 새벽이면 틈틈이 일용근로를 해왔다. 나는 아직도 새벽이 아프다. 거리에서 흙먼지 잔뜩 묻은 봉고차를 기다리며 추위에 떨고 있을 때 폐지 수레를 끄는 어르신들의 모습이 자주 보이곤 했다. 개중에는 비단 고령이어서만이 아니라 장애가 있어 몸이 불편한 분도 많이 계셨다. 나는 그들이 과연 제대로 된 판정을 받으셨을지, 응당한 혜택을 받고 계실지를 공단에 묻고 싶다. [오피니언타임스=조요섭]

 조요섭

어쩌면 미학이란 것은 노동자에게 주어진 빵과 우유보다 훨씬 못한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느낀 이후로 부끄럽지 않은 글을 쓰려 하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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