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균의 활쏘기]

술을 멀리하는 ‘비주류’를 선언하고 주위를 둘러보니 중장년이나 노년의 나이에 뭔가를 배우는 사람들이 많다. 스마트폰이나 외국어를 배우는 것을 보면 시대의 흐름에 뒤처지지 않으려고 어렵사리 노력하는 모습이 흐뭇한 미소를 짓게 한다.

시청이나 구청 군청에서 운영하는 취미교실에는 악기를 배우는 사람도 많다. 나이가 들어 새로 악기를 배우려면 꽤나 힘들텐데 거의 모든 지자체에 이런 과정이 있는 것을 보면 새로운 도전을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강원 양구군 제9회 어르신 건강체조 경연대회에 참석한 노인들이 그간 갈고닦은 풍물놀이 실력을 뽐내고 있다. ©양구군청

‘백년을 살아보니’라는 책으로 90세를 훌쩍 넘는 나이에도 인기를 끌고 있는 김형석 교수는 돌아보니 60-75세가 인생의 전성기였다고 회고한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60세가 넘어서도 새로운 것을 배우고 익힐 수 있다는 것이다. 김 교수 본인이 이를 증명하고 있으니 지나친 얘기는 아닌 듯하다.

100세 시대에 60-70대라면 아직도 30년 이상 더 살아야 한다. 수명이 60-70세 였던 예전에 비하면 30-40대 청년이라고 봐도 좋을 듯하다. 그러니 70까지 새로운 것을 배우고 성장할 수 있다는 말은 과언이 아니다.

아직은 90세 넘어 100세가 될 때까지 건강하게 사는 이들은 드물다. 김형석교수는 내시경 같은 건강진단도 받아본 적이 없다고 하니 타고난 건강 체질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본인은 건강체질이 아니었다고 한다. 워낙 약한 체질이라 조심스럽게 살아온 덕분이라고 한다.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건강에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오래 건강하게 살 수 있었다는 것이다.

누구나 김교수처럼 건강을 지킬 수는 없지만 건강 수명이 늘어나는 추세인 것만은 틀림없다.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2030년 출생 기준으로 볼때 한국의 여성과 남성의 기대수명이 선진국 중에서 가장 길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영국의 런던 임페리얼 칼리지(Imperial College London)가 35개 선진국을 대상으로 2030년까지 기대수명 변화에 대한 세계보건기구(WHO)와의 공동연구한 결과이다. 한국 여성과 남성 기대수명은 각각 90.8세와 84.1세로 2010년 기준 1위인 일본과 호주를 각각 따돌렸다. 2030년 출생기준 기대수명 최상위 3개국을 보면 여성의 경우 한국(90.1세), 프랑스(88.6세), 일본(88.4세)이고 남성의 경우 한국(84.1세), 호주(84.0세), 캐나다(83.9세)이다.

인천 남구청 안에 마련된 시니어카페에서 노인 바리스타가 고객에게 주문받은 커피를 내어주고 있다. ©인천 남구

60대의 건강 유지와 일자리 창출이 관건

국민연금 수급 연령을 만 65세에서 67세로 늦추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 국책연구기관에서 나온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고령화로 주요 선진국들은 공적연금 재정이 악화되면서 연금 수급 연령을 65세에서 67세로 높이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독일 이탈리아 등이 연금 수급연령을 67-70세로 늦추고 있으니 65세인 우리도 늦추자는 얘기다.

문제는 연금에 기대하고 있는 고령층의 소득을 어떻게 보장해줄 것인가 하는 점이다. 퇴직 연령은 아직 60대 초반이고, 실제로는 50대에 은퇴하는 사람이 많은데 연금을 받을 때까지 생활고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60세가 넘어서도 일할 수 있는 직장을 가질 수 있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일할 수 있도록 건강을 유지하는 보건 정책이 선행돼야 하고, 건강한 60대를 받아들일 수 있는 일자리가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체력이 떨어지는 60대 노인을 채용할 기업이 어디 있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물론 제조업 공장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공장이나 농장에서 일하는 일자리는 줄어드는 반면 서비스 노동 일자리는 늘어나고 있다. 서비스 노동 중에서도 아이나 노인을 돌보거나 환자를 간병하는 일자리가 크게 늘어나는 추세다.

일본에서는 어린이집과 요양원에 들어가기 위해 기다리는 인구가 각각 100만명에 이른다. 어린이집 보육교사와 요양사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대도시의 지차제마다 보육교사를 데려오기 위해 월 70-80만원씩 월세를 지원하기도 한다. 미국에서도 간호사가 모자라 해외에서 데려오고 있다. 영어를 할 줄 아는 간호사들은 대환영이다. 우리는 그동안 중국 동포들이 노인을 간호하거나 아이들을 봐주었기 때문에 일본의 심각성을 잘 이해하지 못하지만 중국의 소득 수준이 높아지게 되면 달라질 것이다.

충북 음성지역 노인들이 한글을 공부하고 있다. 이들은 한글을 깨친 김에 시집까지 내 화제를 모았다. ©음성군

성장을 추구하는 노인들

독일의 한 미래학자는 고령화 사회가 되어도 노동력 부족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노인들이 더 건강해지기 때문에 정년을 늦출 수 있어 노동력 공급이 예상만큼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독일의 경우는 ‘일자리 나누기’를 통해 체력이 떨어지는 노인층도 노동시간과 임금을 줄여 취업이 가능하다고 한다.

문제는 사회적인 인식의 수준이다. 기업들이 노인 노동을 비효율적이라고 판단해 노인 고용을 꺼리는 한 문제 해결은 어렵다. 하지만 산업구조는 노인 고용에 유리하게 바뀌고 있다. 제조업 공장이 줄어들고 서비스 노동을 하는 일자리가 늘어난다면 노인 고용이 더 수월하게 이루어질 수도 있다. 서비스 노동이 제조업 공장에 비해 강도가 낮은 노동일 것이기 때문이다.

노인들의 건강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우리나라 남성과 여성의 기대수명이 세계 최고로 예상되는 터다. 나이가 들어서도 교육과 훈련을 받을 수 있는 여건이 마련한다면 노인층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아질 것이다.

노인 고용을 어렵게 하는 요인은 오히려 노인 스스로에게 있다. 노동의 질이 낮아서 체면상 이런 일을 할 수 있을까하는 자신감의 결여가 장애물이다. 새로운 교육 훈련에 대한 거부감도 있을 것이다.

노인 일자리와 취업에 대한 거부감은 단시간에 없애기 힘들 것이다. 노인들도 일하도록 사회복지 시스템을 바꾸는 정책도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노인 취업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이 바뀌어야 할 것이다.

러시아문학가인 석영중 교수는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카레리나’를 해설하면서 성장하는 삶이 행복하다는 얘기를 했다. 세상에는 욕망을 키우고 욕망을 채우기 위해 사는 사람과 꾸준히 성장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욕망을 채우려는 사람보다 꾸준히 일하고 능력을 키워나가는 삶이 행복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나이가 들어도 계속 공부하고 일하려는 장년층과 노인층들이 늘어나고 있다. 못 이룬 욕망을 갈구하기 보다는 성장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면 저출산 고령화의 폐해도 어느 정도 완화시키고 ‘국가 퇴보’도 막을 수 있는 길이 보일 것 같다. [오피니언타임스=박영균]

 박영균

 전 동아일보 논설위원 

 전 한국경제·한겨레 기자 

 전 세계미래포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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