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완의 애, 쎄이!]

학원 보조강사로 일한 적이 있다. 보조강사는 흔히 말하는 ‘나머지 공부’의 감독 선생님이었다. 정규수업이 없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굉장히 쉬운 아르바이트였다. 하지만 내가 일한 그 학원은 조금 달랐다. 수업이 없는 대신 쉬는 시간도 없었고 오후 4시부터 밤 10시까지 일을 했지만 식사 시간도 딱히 주어지지 않았다. 간간히 학생들을 조용히 시키고 탕비실에 들어가 10분 내로 입 안에 만두 하나, 떡볶이 서너 개를 우겨넣고 나왔다. 그게 나의 저녁 식사였다. 한 달 정도 일하고 나니 ‘아, 학원 세계는 이런 곳이구나’하면서 무뎌지고 타협하게 됐다.

그런데 그 일이 일어났다. 그날은 유난히 추운 날이었다. 히터가 제대로 돌지 않아서 실내에 있는 데도 손발이 얼 정도였다. 나머지 공부가 남은 아이들은 끊임없이 강의실로 밀려들어왔고, 아이들을 관리하고 질문도 받아주다 보니 저녁 8시가 됐다. 춥고 다리 아프고 배도 고팠다. 아주 잠깐의 틈을 내어 탕비실로 뛰어갔다. 그리고 내가 마주한 것은 음식을 다 먹고 남은 찌꺼기들, 뜯어먹고 남은 도우만 있는 커다란 피자 상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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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뎌졌기 때문에 탕비실 문을 닫고 그냥 그 추운 교실로 돌아갔으면 되었다. 그런데 울컥 눈물이 차올랐다. 생각해보면 탕비실에는 언제나 나를 위한 음식이 없었다. 다 식고 불어터진 떡볶이, 찌그러지고 옆이 터진 만두 한 알이 고작이었다. 눈으로 열이 몰려왔다. 선생님이 울면 안 되지, 꾹 참고 탕비실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터덜터덜 강의실로 돌아가는 나를 실장 선생님이 불렀다. “어머, 선생님 미안해. 피자 시키고 보니까 좀 모자라더라고. 미안해, 이거라도 먹어” 실장님은 내게 오예스 하나를 들려줬다. 복도 한 편에 서서 허겁지겁 입안으로 빵 조각을 밀어 넣었다. 퇴근까지 2시간은 남아있었다. 버텨야했다.

그 후에도 그런 일은 자주 일어났다. 정규 강사님의 생일이라고 파티를 하고 노래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들은 나를 부르지 않았다. 정규 강사들은 모여서 케이크를 먹고 피자를 먹었다. 8시가 넘어서 탕비실로 가봤을 땐 젓가락으로 군데군데 파먹은 케이크와 식어서 말라버린 피자 몇 조각이 남아있었다. 내가 왕따를 당하는 건가, 그런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그들은 나를 괴롭히거나 뒷담화하지 않았다. 그냥 신경쓰지 않을 뿐이었다. 정규 강사가 5명이고 실장 선생님이 한 분 있는 그 영어학원에서 나는 아무 것도 아닌 존재였을 뿐이었다.

히터도 켜주지 않고, 밥도 제대로 주지 않는 그곳에서 나는 오래 버틸 수 없었다. 1월의 어느 날 지독한 한파와 배고픔을 한 번 더 겪고 나니 학원으로 출근하고 싶지 않았다. 대학교 2학년이고 휴학할 계획이라는 다음 근무자에게 인수인계하고 나오는데 왠지 모를 죄책감이 온 몸을 휘감았다. 쓸 데 없는 감정이었다. 그래도 왠지 새 직원도 다 식어빠진 피자를 보는 날, 내가 그 정도의 사람일까 하고 좌절할 것 같아 안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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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에게 이 이야기를 했다. 밥도 안 주고, 먹을 걸로 사람 비참하게 만드는 데가 있다고. 친구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거 별 일 아니야”라고 말했다. 정규직 전환을 약속 받고 1년 계약으로 들어간 회사에서 친구는 1년 계약직 직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고 한다.

어느 날 거래처에 피자와 샌드위치를 잔뜩 배달해준 적이 있었다. 정규직 직원들은 우르르 회의실로 들어가서 화기애애하게 음식을 먹는데, 누구도 친구와 그의 계약직 동료를 부르지 않았다. ‘나도 이 회사 직원인데, 저런 자리에 같이 껴도 되는 거 아닐까’란 생각을 했을 때 상사는 친구의 책상 위로 서류를 올리며 ‘이것 좀 복사 해줘.’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때의 모멸감은 아직도 가끔씩 떠오른다고 친구는 읊조렸다.

저 작은 회의실에 있는 샌드위치가 먹고 싶어서, 동네에서 파는 그저 그런 피자가 먹고 싶어서 눈물나는 게 아니라고 했다. 나는 희망에 부풀어 미래를 이 곳에서 키우고자 발을 디뎠는데 이 공간에 내 자리는 딱 컴퓨터 한 대 놓인 책상이 전부라는 걸 깨닫는 순간, 그 기분이 어떤 절망보다 친구를 짓눌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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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어떤 공동체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정말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새학기 증후군을 겪거나 학교에 처음 입학한 아이들의 스트레스가 어마어마한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어떤 공동체, 이를테면 정규직이라는 단계에 들어가는 것은 그냥 한 번 스트레스를 받고 끝날 일이 아니란 걸 느낀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들어갈 수 없고, 이미 나의 것은 그곳에 존재하지 않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이미 그것을 차지하고 있는 이들이 양보하지 않아서 그런 걸까 생각해보다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아이들이 집으로 가고 강의실에서 청소하고 늦은 시각에 학원을 나서는데 원장실에서 큰 소리가 났다. 슬쩍 원장실 앞을 한두 번 지나쳤다. 작게 열린 문틈 새로 부장 선생님이 보였다. 항상 내게 충고를 하는 선생님, 정규 강사들을 이끄는 선생님이다. 그는 원장 선생님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꾸지람을 듣는 중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그때 피자를 못 먹었을 때처럼 눈이 뜨거워졌다.

친구는 말했다. “그 작은 회의실에서 피자가 맛있었겠어? 그것도 서로서로 안 뺏기려고 빠르게 집어 들어서 먹어야 했을 거야. 어디든 그렇게 먹고 살아야 해” 난 요새 피자를 보면 갑자기 허기가 지고 허겁지겁 피자를 집어 든다. 이건 불안해하면서 먹지 않아도 되는 피자인데, 날 위해 내가 산 피자인데도, 거칠게 입에 욱여넣는다. 앞으로 우린 얼마나 더 많은 것을 불안해하며 먹어야 하는 걸까. [오피니언타임스=우디]

 우디

 여행, 영화, 글을 좋아하는 쌀벌레 글쟁이.
 글을 공부하고, 일상을 공부합니다.
 뛰지 않아도 되는 삶을 지향합니다.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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