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강남의 아하!]

©픽사베이

남북관계가 심상찮다. 이럴 때 어느 사회심리학자의 이론을 되새겨 보면 어떨까? 한 평생 아동집단, 사회계급, 노사문제, 인종문제, 국제관계 등 집단 간의 갈등 문제를 연구한 터키 출신의 미국인 무자퍼 쉐리프(Muzafer Sherif)의 이론이다.

그의 이론은 이른바 ‘강도들의 소굴(Robbers Cave)’이라는 실험에 근거하고 있다. 미국 오클라호마 시에 있는 ‘강도들의 소굴’이라는 이름의 공원에서 실행한 실험이다. 11세와 12세의 소년들 12명을 선정해서 한 그룹을 만들고, 그 그룹과 나이, 운동 능력, 키, 학업 성적, 정서적 적응력 등에서 비슷한 소년들 12명을 선정해 또 하나의 그룹을 만들었다. 서로 상대방 그룹과는 아는 사이가 아니었다. 두 그룹을 따로 따로 공원으로 데리고 가서 3주간 함께 캠핑을 하게 하고 이들 두 그룹이 서로 어떤 관계를 형성하는가 관찰한 것이다.

처음 얼마간 서로 야구, 축구도 하고 그런대로 잘 지냈다. 그러다가 서로 경쟁심이 심하게 되자, 상대방을 욕하게 되고, 그러다가 싸움이 나고, 상대방 숙소를 공격하고, 결국은 상대방과 상대를 하지 않고 적대 관계를 형성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다음 단계로 두 그룹 간의 적대 관계를 어떻게 조화 관계로 바뀌게 할 수 있을까를 알아보는 실험으로 들어갔다. 처음에는 두 그룹 간에 즐겁고 예의바르고, 사교적인 접촉이 그룹 간의 마찰을 줄인다는 이론을 가지고 실험했다. 두 그룹을 함께 데리고 영화관에도 가고 같이 식당에도 가는 등 서로 자주 접촉을 갖도록 해 보았다. 그랬더니 서로 싸움할 기회만 더 만들어 주는 결과를 나을 뿐 사태는 더욱 악화되기만 했다.

지난 2013년 7월 남북 고위급회담이 판문점에서 열린 가운데 남북 병사들이 서로 대치하고 있다. ©포커스뉴스

그래서 이번에는 또 다른 실험으로 일련의 긴급 사태를 조장해 보았다. 캠프장 급수 시설이 갑자기 고장 나게 한다든가, 급식 수송 트럭의 시동이 안걸리게 한다든가 뭔가 두 그룹이 협력하지 않으면 안 될 위급한 사태를 만들어 보았더니 두 그룹이 그런 일을 해결하는데 적극 협력하더라는 것이다. 이런 공동의 목표를 위해 함께 일하면서 점차 적대감이 줄어들고 두 그룹 사이가 좋아지기 시작하다가 결국 어울려 노는 데까지 이르렀다고 한다.

쉐리프의 주장에 의하면, 캠핑 그룹이든 사회 집단이든 국가 집단이든 적대 관계에 있는 두 집단을 조화로운 관계로 이끌기 위해서는 두 집단 간 서로 좋은 정보를 교환해서 홍보하는 일, 두 집단 구성원들 간에 서로 호의적인 접촉이 있도록 조장하는 일, 두 집단 지도자들 간에 고위 회담을 추진하는 일 등을 생각해 볼 수 있지만, 이 모든 조치들도 두 집단 모두에게 절실하고 긴급한 ‘초우위 목표에 대한 인식(the awareness of the superordinate goals)’이 선행될 때에만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서로 상대방에 대해 좋은 정보를 제공해도 두 집단 간에 ‘초우위 목표에 대한 인식’이 없으면 그 정보들을 거부하거나 자기들이 가진 선입견에 맞게 재해석하거나 할 뿐 효과가 별로라고 한다. 지도자들의 회담이나 정상회담도 두 집단이 공유하는 초우위 목표가 없이 서로 상반되는 목표를 향해 움직이고 있는 한, 한쪽이 갈등을 위해 힘써도 그것이 상대방에게는 약점의 표시로 보일 뿐이라는 것이다.

미국 ‘38 North’가 지난해 2월 공개한 북한 동창리 서해 발사기지 모습. 북한은 6일 오전 7시36분경 평안북도 동창리 일대에서 미사일 여러발을 동해상으로 발사했다. ©38 North/포커스뉴스

쉐리프의 이론을 전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 하는 데는 이견이 있을 수 있다. 아이들에게 한 실험이 어른이나 국가 단위의 관계에서도 적용 될 수 있는가 의문을 가질 수도 있고, 또 갈등을 해소하는 길이 초우위 목표에 대한 인식만으로 가능한가, 궁극적으로는 현실에 대한 진실을 간파하는 데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가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일단 쉐리프의 이론을 따른다면, 남북관계가 이렇게 험악하게 된 것은 현 남북 당국자나 언론인들이 민족 숙원의 성취니, 한반도의 평화 정착이니, 남북 간의 경제적 이익의 극대화니, 세계 평화에의 기여니 뭐니 말하고 있지만, 아직도 진정으로 ‘초우위 목표에 대한 인식’이 절실하지 못하다는 뜻이 아닌가?

이제 역대 최대의 한미 합동 군사 훈련이 행해지고 있고 북한의 핵 위협이 현실로 다가 온데다가 미국 트럼프 정부가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을 이야기하고 있는 판국이다. 남북이 공멸할 위기다. 지금이야말로 당장 한민족이 살아남아야 한다고 하는 ‘초우위 목표에 대한 인식’이 절실할 때가 아닌가? 남북관계를 다시 생각해야겠다. 마침 곧 대선이다. 차기 국가 지도자는 냉혹한 국제사회에서 남북이 당면한 공동목표에 대한 인식을 함께 하므로 국제사회에서 한반도와 동북아평화를 주도할 수 있는 식견과 능력이 있어야겠다. [오피니언타임스=오강남] 

 오강남

서울대 종교학과 및 동대학원 졸/캐나다 맥매스터대 종교학 Ph.D.

캐나다 리자이나대 명예교수

지식협동조합 <경계너머 아하!>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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