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진의 소중한 사람]

무공의 깊이가 태산과 같다는 도인이 있었습니다.
그 노인이 어찌어찌하여 제자를 들였는데, 제자가 된 젊은이 또한 엄청난 도력을 가지고 태어난 데다 이를 갈고 닦아와 그 일대에서는 모르는 이가 없을 만큼 널리 소문난 자였습니다.
“네가 청소를 깨끗이 하면, 너에게 내가 그동안 쌓은 모든 무공을 가르쳐 주겠다.”

제자는 매일매일 스승과 함께 기거하는 거처의 모든 곳을 쓸고 닦았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스승은 항상 빙그레 웃으며 “청소를 해주어서 참 고맙구나”라는 인사와 “참 잘했구나”라는 칭찬을 할 뿐 가르침을 주려는 기색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다만 진심어린 격려를 그의 눈으로, 입으로 보여줄 뿐이었습니다.

©픽사베이

제자는 더 깨끗하게도 닦아보고, 도력이 높은 스승이니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마당에 피어난 꽃잎에 맺힌 이슬마저도 닦아보았습니다. 지쳐서 도망가고 싶을 때마다 고수가 되어 세상에 보탬이 되겠다는 스스로에게 한 약속과 청소를 깨끗이 하면 더 높은 무공을 가르쳐 주겠다는 스승의 약속을 되새겼습니다.

10년째 되던 어느 날, 제자는 빗자루를 내려놓고 벽을 보고 돌아앉았습니다.
“청소가 다 되었느냐?”
“이제 비우고 있습니다”
스승이 말한 청소의 대상은 자신의 마음이라는 것을 제자는 깨닫게 된 것입니다.

사실 처음부터 노인은 제자의 비범함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세상에 나가면 나보다 힘없는 자의 편이 되겠다’는 어린 제자의 뜻을 귀하게 여겼습니다. 다만 사람들이 ‘의협심’(義俠心)이라 칭송하던 불같은 성질과 세상에 나아가 더 큰 인물이 되겠다는 치기어린 욕심으로 인해 제자가 그 뜻을 펴기도 전에 어린 나이에 절명(絕命)하게 되리라는 것을 꿰뚫어 보았을 뿐입니다. 그를 베는 것은 적(敵)이겠으나, 그 적을 불러들이는 것은 제자의 이 두 가지 성정(性情)때문이라는 것 또한 말이지요.

스승은 제자가 세상에 나아가 그가 품은 뜻을 오래오래 펼치기를 원했습니다. 청소할 사람이 필요하여 제자의 시간을 착취했던 것이 아니라, 제자에게는 청소를 통해 수양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여겼기에 그러한 방법을 택한 것입니다. 노인은 제자가 스스로 깨닫게 되어 벽을 보고 돌아앉는 그날까지 그의 가능성을 믿어주고 기다려 주었습니다. 그리고 제자가 깨달음을 얻은 뒤에는 모든 것을 전해 준다는 약속을 지켰습니다.

제자는 세상에 나아가 수많은 이를 도왔고 자신의 뜻을 세울 수 있었습니다. 그는 “낳은 것은 부모이나 자신을 다시 낳은 이는 스승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세상은 그가 의로운 일을 행할 때마다 그의 이름을 기억하는 동시에 스승의 이름 또한 칭송했습니다.

도인에게는 잠시 쥐었다가 사라지는 권력도, 부유함도 없었지만 그의 말년에는 병석에 누운 그를 위해 애써 실없는 소리로 스승을 웃게 하려는 제자의 마음이, 오며가며 이것저것 물어보고 지혜를 들은 수많은 젊은이들의 존경이 있었습니다. 제자인지 젊은이들인지, 마을사람들인지 누가 가져왔는지 알 수는 없지만 항상 가득 채워져 있던 곳간만큼 가득한 사랑이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오래오래 기억되어 훗날 그의 무덤마저 쓸쓸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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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쳐 주다.’
당신이 내게 가르쳐 주고, 내가 따른다면 당신은 나의 스승입니다.
나는 스승의 이름을 기억할 것입니다. 나의 부모에게도, 훗날 나의 아이에게도 말해 주고 싶어 할 것입니다. 당신은 나의 스승이니까요.
내가 아주 비범한 이가 아니어서 좀 미안하긴 합니다.
당신의 이름을 세상에 널리 알리는 일은 어려울 것 같네요.

그러나 ‘스승의 자리’에 선 당신이 날 잊는다면 난 아주 많이 절망할 것 같습니다. 당신이 가진 이유가 실수에서 비롯된 방임, 스스로의 아집, 권력에 대한 열망, 경제사회의 논리, 그 무엇이 되더라도, 당신이 서있는 자리를, 그 위치를, 당신이 했던 말들을 기억해 줄 수는 없었나요?

“순간에 사라질 것들이 아니라 영원한 것들을 난 드릴 수 있어요”라고 하면, 당신은 나를 기억해 줄까요? 이런 것들은 당신에게는 너무 작아 보였나요?

존경과 사랑. 평생 기억 될 당신의 이름 석 자.
나는 유치원 버스에서 내리지 못한 당신의 제자입니다.
나는 오류와 왜곡이 점철된 국정교과서를 가지고 공부해야만 하는 당신의 제자입니다.
나는 부정(不正)한 방법으로 특정 학생을 입학시킨 당신이 그 모든 것을 부정(否定)하는 그 순간, 차마 텔레비전 화면을 바라볼 수 없었던 당신의 제자입니다.
나는 주6일, 매일 12시간 이상, 열정과 바꾼 열정페이에도 감사해하던 당신의 제자입니다.
나는 열심히 배우고 일하면 ‘2년 후’에 정식 직원으로 만들어 주겠다던 당신의 약속을 참말인줄 알고 믿었던, 그래서 ‘나의 업무’가 될 줄 알고 더 열심히 배웠던 당신의 제자입니다.
왜 당신의 이름 석 자는 스승의 이름이 될 수 없었나요? [오피니언타임스=이수진]

 이수진

 영어강사입니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감사합니다.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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