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건의 드라이펜]

이른바 ‘성완종 뇌물리스트 사건’에 연루돼 1심 재판에서 유죄선고를 받았던 홍준표 경남지사가 지난달 16일 서울고법의 2심 재판에서 무죄 선고됐다. 같은 사건으로 먼저 2심을 마친 이완구 전 총리도 1심 유죄, 2심 무죄로 판결 내용은 같았다.

성완종 리스트에 이름이 오른 이는 두 사람을 포함한 여권의 중진 정치인이 8명이었는데, 검찰은 이 가운데 혐의가 구체적인 두 사람만 불구속 기소해 재판을 진행해 왔다. 나머지는 ‘혐의 없음’ ‘공소권 없음’으로 처리됐다.

故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으로부터 불법정치자금 1억원을 받은 혐의로 1심에서 실형을 선고 받은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2월16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입장을 밝히고 있다. ©포커스뉴스

경남기업의 성완종 회장은 2015년 4월 9일 자살하기 직전 한 신문기자와 인터뷰를 갖고 8명에게 정치자금을 전달한 사실을 폭로했으며, 죽은 뒤 옷 안에서 사람별로 금액이 적힌 뇌물명단이 나와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그는 2011년 한나라당 당대표 경선에 출마한 홍 후보에게 1억원을 줬고, 2013년 충남 부여·청양 국회의원 재선거에 출마한 이 후보에게 3000만원을 건넸다고 폭로했다. 홍 지사의 경우는 중간에 돈의 전달자가 있어 혐의의 정황이 상대적으로 구체적이었다.

이 재판의 최대 쟁점은 사자(死者) 진술의 증거능력을 어디까지 인정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죽는 사람이 남을 해코지하기 위해서 거짓말을 하겠느냐는 것은 상식적인 판단이다. 그러나 법률적 판단의 기준인 형사소송법은 ‘당사자가 사망해 진술할 수 없을 때는 특별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에서 진술 또는 작성된 것이 증명된 때에 한해 증거로 삼는다’고 돼있다.

1심에선 두 사람 모두 성 회장의 인터뷰 내용과 자필로 쓴 뇌물 명단의 증거능력을 인정해 유죄 판결했다. 2심에서는 증거능력의 유무를 달리 판단하면서도 무죄를 선고해 논란의 소지를 남겼다. 이 전 총리의 경우 증거능력이 없다고 보아 무죄 판결했지만, 홍 지사의 경우는 증거능력을 인정하면서도 돈을 전달한 사람의 진술에 일관성이 없다며 무죄 판결했다.

금전 수수와 관련된 범죄사건에서 결정적인 증거가 없으면 혐의의 입증은 매우 어렵다. 쌍방을 대질신문하고 현장 검증을 한다 해도 규명하기 어려운 터에, 한쪽 당사자가 사망했다면 범죄 입증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게다가 이 전 총리는 경찰, 홍 지사는 검찰을 거친 법률가 출신이다. 그 점에서 1심의 유죄판결이 오히려 과격해 보였다.

성 회장 자살 직후 연루자들이 극한적인 언사로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을 때 홍 지사의 반응이 인상적이었다. “직접 받은 기억은 없지만 누가 받았을 지도 모르겠다”면서 “성 회장의 선거법 위반사건에 도움을 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했던 것이다.

故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에게서 불법 정치자금 3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이완구 전 총리가 지난해 9월27일 열린 2심 선고 공판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법정을 나서고 있다. ©포커스뉴스

반면 이 전 총리는 “돈 받은 증거가 나오면 목숨을 내놓겠다”고 했고, 새누리당 당직자는 “1원 한 장 받았으면 정계를 은퇴하겠다”고 했다. 그 외에도 모두 “전혀 받지 않았다” “만난 적도 없다” “가깝지도 않은 사람이다” 등등 발뺌하기에 바빴다.

그런 상황이었기에 홍 지사의 발언에서 솔직성과 인간미가 느껴질 정도였다. 그러나 홍 지사의 그런 반응은 오래가지 못했다. 검찰의 수사가 시작되자 그도 다른 사람들과 같아졌다. 받은 적이 없음은 물론, 자신에게 돈을 전달했다는 사람에 의한 배달사고 가능성까지 주장했다.

이 주장은 2심에서 받아들여져 무죄의 주요한 근거가 됐다. 홍 지사의 측근들이 전달자에게 전화를 걸어 “받은 돈을 당신이 썼다고 하면 안 되겠냐”며 회유 및 은폐를 시도한 녹음테이프가 증거로 채택됐음에도 말이다.

두 사람은 재판에서 법률전문가답게 검찰과 재판부를 상대로 치열한 법리논쟁을 벌였다. 홍 지사는 미국의 증거법을 근거로 사자의 진술은 민사에서나 인정되지 형사사건에선 제한적으로 인정된다며 성 회장의 메모나 언론 인터뷰의 증거능력을 문제 삼기도 했다. 이 전 총리는 성 회장의 성문분석까지 하면서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다.

홍 지사의 대응이 더 치열했던 결과 재판의 진행은 훨씬 더뎠다. 이 전 총리의 1심 선고가 작년 1월, 2심 선고가 작년 9월이었으나 홍 지사의 1심은 작년 9월, 2심은 지난달 16일이었다. 대법원 판결까지 1년여가 소요된다고 할 때 홍 지사는 임기를 채울 가능성도 있다.

이 전 총리는 이 사건으로 새누리당 시절 당원자격이 정지됐고, 20대 총선에서 공천이 배제돼 정치행보가 멎은 상태이다. 반면 홍 지사 역시 당원권이 정지됐지만 지리멸렬한 여당에서 유력한 대선후보로 부상 중이다. 그 스스로 “절망과 무력감에 빠진 국민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면 어떤 어려움도 마다 않겠다” “때가 되면 당의 요청에 따르겠다”고 말한다.

만약 그가 여당의 차기 대선 후보가 되고 나아가 대통령으로 당선된다면, 이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결정은 지금 헌재의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능가하는 혼란의 원인이 될 수 있겠다. 홍 지사가 대선 출마여부를 결정할 때 이점을 염두에 두면 좋겠다. [오피니언타임스=임종건]

 임종건

 한국일보 서울경제 기자 및 부장/서울경제 논설실장 및 사장

 한남대 교수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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