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미의 집에서 거리에서]

지난달 말 멀리 카리브해 섬나라 쿠바를 여행하고 돌아왔다. 지리적 정치적으로 가기 힘든 먼 나라여서인지, 반 년 전 한 모임에서 쿠바 여행 일정이 나오자, 기대 이상 관심이 높아 순조롭게 단체여행이 진행됐다. 쿠바가 여행지로서 매력적이며, 아직 가보지 못한 사람이 많기 때문이리라.

영화 음반으로 친숙한 ‘부에노비스타 소셜 클럽’. 음악 춤 공연에 이어 피날레로 출신국 별로 관객을 소개할 때, 한국 순서에서 태극기 영상,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등장했다. ©신세미

쿠바라면 우선 영화 음반으로 친숙한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의 강렬한 음악과 살사춤을 연상케 된다. 지난해 11월 눈감은 쿠바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 및 아르헨티나 청년의사 출신으로 쿠바 혁명의 주역인 체게바라를 떠올리는 사람도 있을 게다. 또한 아마 야구의 강국이며 시가 산지, 아바나의 삶을 사랑했던 헤밍웨이를 떠올리게 되는 나라다.

1950년대 출시된 미국 올드카들이 60년이 흐른 지금까지 아바나 말레카 해변과 도심에서 추억의 헐리우드영화 장면 같은 풍경을 연출하며 아바나 관광에 일조하는 모습도 신기했다. 스페인에 이어 미국이 사탕수수 농장 경영 등 쿠바를 지배하다가 1959년 쿠바 혁명 후 물러났고, 물자가 풍족하지 않은 쿠바 사람들이 주택, 자동차 등을 아끼고 고쳐, 오래되고 낡은 것들을 실생활에서 사용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1950년대 미국 올드카들이 관광객용 택시로 아바나 도심을 질주하고, 오래된 낡은 집들이 여전히 삶의 터전으로 공존하는 쿠바. ©신세미

또한 와이파이 이용비를 지불하는 극히 일부 공간을 제하곤 현대 세계 도시의 거리 풍경과 달리 휴대폰을 의식하기 힘든 곳이 쿠바였다. 쿠바에선 느릿느릿 20세기 아날로그식 삶이 평화로워 보였다. 여행자들도 이국에서 1960~70년대 어린 시절, 과거로 돌아간 듯 생각과 움직임을 현지화해 휴대폰없이도 잘 지냈다.

멀게만 느껴왔던 쿠바를 여행하며 100년전 조선-쿠바 간의 교류, 그리고 현재진행형의 관계를 접하며 새삼 돌고 도는 역사의 빛과 그림자를 대면했다.

1905년 한달여 태평양을 건너 멕시코 애니깽 농장으로 갔던 조선인의 후손 중 일부가 쿠바에 정착해 살고 있었다. 애니깽이라면 막연히 1997년 장미희 주연의 영화 ‘애니깽’ 정도를 알고 있다가, 여행지 쿠바에서 그들의 후손을 만나니 가슴이 먹먹해졌다. 당시 제물포항을 출발한 1033명의 조선인은 4년 계약 만료 즈음 한일합방 와중에 국제미아가 되면서 그리던 모국을 찾지 못한 채 일부가 쿠바의 사탕수수 농장에 정착했다고 한다.

애니깽의 후손을 만난 것은 한글 간판의 ‘호세 마르티 한국쿠바문화클럽’에서다. 쿠바의 독립운동가며 시인, 아바나공항의 이름을 딴 호세 마르티의 두상이 놓여있는 1층 건물. 그 중앙 전시장에는 한국 지도, 광화문 사진이며 한복차림의 남녀인형 및 전통 복장을 비롯, 애니깽 초기 이민자의 사진들이 걸려 있었다.

그곳서 애니깽의 6대 후손과 인사를 나누며 서울서 챙겨간 한글 교재와 필기도구를 전한 뒤 건물을 둘러보니 공부방에선 한글 수업이 한창이었다.

100년전 애니깽 후예뿐아니라 쿠바인들도 찾아오는 호세 마르티 한국쿠바문화클럽의 한글학교. ©신세미

쿠바에선 오랜 세월 수교국 북한만 알다가 1999년 무렵 관광 활성화후 남한과의 교류가 확산됐다. 수 년 전 한국드라마 등 한류 열풍이후 ‘호세 마르티 한국쿠바문화클럽’의 한글학교에서 한글을 배우는 쿠바인들이 늘고 있다고 했다.

구한말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먼 이국에 정착한 선조의 후예들도, 100년후 한류 바람과 더불어 오늘의 한국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쿠바의 기념품점에는 체게바라 티셔츠 등 혁명 영웅들이 등장하는 상품들이 다양했다. ©신세미

TV드라마 ‘내조의 여왕’, ‘시크릿 가든’은 쿠바 4개 TV채널서 방영했단다. 현지 가이드에 따르면 드라마 인기가 얼마나 대단했던지, 당시 고장난 TV 빼고 모두 그 드라마를 시청했다거나, 정전 때도 그 드라마의 방영시간엔 전기를 공급했다는 이야기까지 있었다니…

두 드라마에 출연한 윤상현을 비롯, ‘꽃보다 남자’와 ’시티 헌터’의 이민호, ‘육룡이 나르샤’의 박혁권 등 한국 스타의 인기가 쿠바서 엄청나다고 한다.

다시 쿠바에 갈 기회가 생기면 뒷골목 기행으로 ‘언제 어디서든 음악이 흐르면 춤추는’ 쿠바인을 가깝게 접하며 100년전 선조의 고난한 삶이 배어있는 사탕수수 농장도 찾아봐야겠다. [오피니언타임스=신세미]

 신세미

 전 문화일보 문화부장.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후 조선일보와 문화일보에서 기자로 35년여 미술 공연 여성 생활 등 문화 분야를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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