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관의 모다깃비 감성]

대학교 초반, 남부터미널 근처 뷔페에서 주방보조 단기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누구건지 모르는 구두를 신고 홀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여덟 개의 거대한 바켓에 얼음을 가득 담았었다. 네 개는 큰 얼음을, 나머지 네 개는 작은 얼음을 담고 나면 손끝에 감각이 없어진다. 60kg쯤 나갈 법한 얼음들은 음식을 올려놓는 진열대 아래에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 깔렸다. 그렇게 손에 동상이 걸릴 듯싶다가 오픈 준비가 끝나면 불판 앞으로 갔다. 수백 점의 채끝 등심을 구워서 내는 일. 열이 많은 체질이어서 12시간 알바를 끝낼 때쯤엔 몸이 불판 기름과 땀으로 등까지 젖어있었다. 여름철이었기에 퇴근길의 내 몸은 거적때기에 가까웠다. 주방보조 아르바이트는 단기인 이유가 있다. 일이 고되서 며칠 나오고 도망가는 애들이 많아서다.

©픽사베이

나는 어찌어찌 7개월을 버텼다. 내가 생각해도 신기한 일이다. 주방은 고되다. 칼 쓰고 불을 쓰기에 위험하다. 뷔페는 손님의 로테이션이 끝날 때까지 음식을 만든다. 다시 말해 손님이 있는 한 일이 계속된다. 어쩌다 묵묵히 고기 잘 굽는다고 차장님께 뽑힌 나는 단기아르바이트 소개업체의 중개 수수료 없이 월급을 모두 받게 됐다. 그러나 솔직히 일을 잘해서 잠자코 있던 게 아니다. 너무 힘들어서 말할 기운조차 없었다. 그게 좋게 비쳐져 대우가 나아졌지만, 아직도 주방은 생각보다 낯선 공간이다.

셰프 강레오는 주방에서 나오는 대화 주제들이 돈, 여자, 섹스라고 방송에서 말했다. 실제로 비교적 보수적인 집안에서 자란 내가 처음 들은 주방의 대화들은 거북한 말들의 파티였다. 그에 덤으로 밀가루 반죽보다 찰진 욕들이 이리저리 튀어나왔다. 일식 주임이 사시미를 들고 활어처럼 펄떡거리는 욕을 내뱉던 모습은 일상다반사였다. 웃긴 건 손님에게는 잘 들리지 않았다.

내가 들었던 몇년치의 욕을 그곳에서 모듬코스로 시식했다. 첫 날에 스물 한 살이라고 하자 ‘구라치고 있네’라고 말한 직원, 어차피 옷부터 신발까지 직원복장으로 갈아입는데 괜찮겠지 하며 슬리퍼 신고 출근했다가 들은 ‘쌍시옷 융단폭격’.

식재료들이 모두 특등급이었기에 실수 하나도 용납되지 않았다. 한눈파는 즉시 거친 욕설이 날아왔다. 그럴 때면 나는 새우튀김이고 욕이 간장처럼 느껴졌다. 젓가락질을 삐끗해 간장종지로 풍덩 빠져버리는 그런 장면을 상상했다. 직원 대부분은 정이 없었고, 거칠고, 남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나는 빠지면 금방 채워지는 아르바이트생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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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타민은 무엇이며 홀그레인은 무엇인지, 핫소스랑 타바스코를 가져오라는데 무슨 차인지. 콩나물과 숙주를 구별 못하는 유치원생 같은 기분에 사로잡혀 동작이 굼떠지면 즉시 욕이 날아왔다. 국자마저 흉기로 다룰 수 있는 사람들이기에 일단 뛰어야했다. 요리를 좋아했지만 전문적으로 할 생각은 없었고, 이름 모를 재료들이 가득한 곳에서 ‘보조’역할을 하는 거였기에 나는 한 달 정도를 버티고 지쳐버렸다. 그리고 다른 아르바이트를 구해야 하나 고민하던 어느 날, 덩치 큰 대리님이랑 같이 일을 하게 됐다.

몇 살이라고? 스물한 살이요. 얼굴만 보면 나랑 동갑인데, 무슨과 나왔어? 문예창작학과요. 그럼 시나 막 소설 이런 거 쓰는 거야? 그렇다고 볼 수 있죠. 돈은 못 벌겠네? 그럴지도 몰라요. 뭐 이 직업이라고 잘 버는 건 아냐.

그렇게 시답잖은 대화를 주고받으며 생선 지느러미를 칼로 내리쳐 없앨 때쯤에, 대리는 예상못한 말을 건넸다.

애들 들어와 봤자 이, 삼일하고 다 나가버려서 정 줄 생각이 잘 안 들어. 걔네도 며칠 벌다 말 목적으로 오니까 우리도 그냥 막 쓰는 거지. 솔직히 너도 처음 봤을 때 며칠 못갈 줄 알았거든? 근데 네가 제일 오래 간다? 역시 사람 보는 대로 믿으면 안 돼.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독하게 마음먹은 앤디 삭스처럼, 나는 그 말에 힘을 얻고 오기가 생겼다. 군 입대 두어 달 전까지 뷔페로 출근했다.

욕을 먹었을 때 변명없이 죄송하다 말하고 인정하자 뒤끝이 없어졌다. 처음엔 손님에게 얼토당토않은 컴플레인을 받으면 혼자 의기소침해 있었다. 나중엔 뒷주방에서 욕 한번으로 털어버렸다. 한식, 일식, 중식, 양식, 제과제빵 파트까지 보조를 맡고 나자 내게 욕하는 직원도 없어졌다. 등심을 굽다가도 일식 파트를 도왔고, 음식 쓰레기를 치우다가 중식 마감을 도왔으며, 주차장에서 중앙 홀로 돌아오는 길에 제과제빵 음식들을 카트로 가져와 진열대에 놓았다. 부장은 나중에 내게 정직원이 될 생각없냐고 물었다.

나를 처음에 ‘아저씨’라고 부르던 주임은, 아르바이트 두 달째에 ‘야’라고 부르다, 네 달이 되는 날엔 ‘막내야’로 호칭이 바뀌더니, 마지막 달엔 ‘명관아’라고 불러줬다. 직원 회식에 올 거냐고 묻고, 하루종일 한 마디도 안 건네던 사람들이 프라이팬을 움직이며 군대 잘 다녀오라고 말하던 모습을 아직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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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하지만 주방은 거칠다. 자잘한 화상 정도는 무시한 채 웍을 흔들고, 주 6일 하루 11시간 넘는 일을 하기에 예민해진다. 에어컨이 있어도 불 앞이라서 예민해진다. 손님들보다 맛에 민감해야 해서 또 예민해지고, 그 상태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일만 했다가는 우울증이 걸릴 수 있어서 또 무슨 말이던 내뱉는다. 욕과 음담패설, 돈 같은 자극적인 말들이 나오는 데는 이유가 있다.

힘이 부치면 정신력으로 버텨야 한다. 새 직원을 뽑기는 힘들고, 아르바이트를 뽑아서 어느 정도 가르치다 보면 도망간다. 영화는 NG가 나면 컷 하고 다시 찍으면 되지만, 작은 실수 하나가 메뉴 하나를 통째로 망칠지 모르는 주방은 전쟁터다.

평균 수명이 70세를 밑도는 직업인들과 작별인사를 하고 나왔을 때, 나는 그들에게서 경외심을 느꼈다. 우리는 요리사를 보러 가는 게 아니라 음식을 먹으려고 식당에 간다. 반면 그들은 철저히 수면 아래에서 손님들을 위한 식사를 만든다. 단지 바라는 것은 음식을 먹고 사람들이 기뻐해주는 것이다. ‘보다 맛있게’라는 단순한 말에는 치밀한 밑재료 준비, 섬세한 간 조절, 음식에 대한 전문적인 이해, 플레이팅까지 완벽해야 한다는 나름의 철학이 들어있다.

이따금 나의 결벽에 가까운 완벽주의가 뷔페에서부터 왔음에 의심하지 않는다. 쓸데없는 푸념과 의기소침이 나를 망친다는 것, 때론 억울해도 기분만 나쁜 변명이 있다는 것과 무조건 솔직해야 한다는 것도 거기서 얻었다. 혼자서도 그럭저럭 괜찮은 한 끼 식사를 만드는 요리실력은 덤이다.

나는 누군가 정신을 차리고 싶다면 주방을 가라고 말한다. 군대는 ‘꿀보직’이 있지만 주방은 없다. 손님 많은 음식점 요리사들은 에너자이저 건전지처럼 끊임없이 움직인다. 주방에 있으면 그들이 내보내는 거친 전류에 따끔거릴지 몰라도, 언젠가 그들의 에너지를 얻고 나오는 자신을 볼 수 있을지 모른다. [오피니언타임스=신명관]

 신명관

 대진대 문예창작학과 4학년 / 대진문학상 대상 수상

 펜포인트 클럽 작가발굴 프로젝트 세미나 1기 수료예정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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