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호의 멍멍멍]

문화·예술에도 권력이 존재한다

밥 딜런이 노벨문학상을 받은 다음날, 음악 선생님들은 ‘넌 어떻게 생각해?’라는 질문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국문과에게 물어보면 명쾌한 대답을 들을 수 있을 거라 기대한 것 같은데 난 밥 딜런이 누군지도 몰랐다. 노벨상을 받았다는 뉴스를 보고 나서야 ‘저분이 받았구나. 근데 누구지?’했을 뿐이다. 내가 아는 거라곤 단지 뮤지션이 노벨상을 받았다는 사실뿐이었다. 오직 그 하나의 단서만 가지고 ‘노래 가사도 시적이잖아요! 문학의 확장이라고 생각해요.’라고 대답했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미국의 포크록 가수 밥 딜런 ©소니뮤직

하지만 밥 딜런은 노벨문학상이 필요하지 않았다. 이미 충분히 멋있고 아름다운 음악을 하고 있었다. “만약 누군가가 내가 노벨상 수상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고 말했다면 나는 그 가능성이 달에 서 있을 확률과 비슷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한 그의 말처럼 말이다. 하지만 문학계는 몰락 중이었고 ‘대중의 관심’과 ‘문학 권력의 확장’을 위한 해법이 필요했다. 그래서 밥 딜런과 그의 음악에 노벨문학상을 수여하는 파격을 택했다. 이후 그의 음악은 노벨위원회에 의해 ‘문학’이라 호명됐고, 문학계는 대중의 관심과 영역 확장이란 목표 달성에 어느정도 성공했다.

밥 딜런은 노벨상의 영광을 얻었고 노벨위원회는 상은 이슈메이킹에 성공했으니 표면적으론 서로 윈윈(win-win)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좋은 게 좋은 거’라며 행해진 정치논리 앞에 수많은 문인들은 좌절감을 맛봤다. 이처럼 권력은 수면 아래에서 누군가를 배제시키는 방식을 통해 끊임없이 작동하고 있다. ‘문학의 확장’이 밥 딜런의 의사와 상관없이 일방적으로 이루어진 것처럼 말이다. 결국 밥 딜런 노벨상 수상 논란으로 가장 큰 이득을 얻은 건 노벨위원회였다. 우리가 권력의 작동 방식을 끊임없이 견제하고 의심하고 관찰해야만 하는 이유다.

음악으로 먹고 살고 싶다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포크 노래상을 수상한 이랑의 퍼포먼스 또한 주목할만하다. 이랑은 “지난달 수입이 42만원이더라. 음원 수입이 아니라 전체 수입이다. 이번 달엔 고맙게도 96만원이다”라며 자신의 수입을 밝히더니 “상금을 주면 좋겠는데 상금이 없어서 트로피를 팔아야겠다”며 즉석에서 경매를 시작했다. 실내 인테리어용으로 쓰면 좋을 것 같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조용하던 시상식장은 놀람과 웃음으로 가득 찼고, 그 사이 트로피는 시작가인 50만원에 낙찰됐다. 시상식 무대에서 트로피와 현금이 오고갔고 이 장면은 고스란히 카메라에 담겨 방송됐다.

사진을 누르면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 영상으로 연결됩니다. ©유튜브 영상 캡처

이랑은 시상식 트로피 경매를 통해 ‘대한민국 음악 시장의 불합리한 수익구조’와 그 시장이 작동되고 유지되는 ‘권력구조’를 꼬집었다. 하지만 ‘상을 준 사람 앞에서 트로피를 팔아버리면 준 사람들은 뭐가 되냐’, ‘돈도 못 버는 그런 음악 뭐하러 하냐’는 비아냥이 이어졌다. 심지어 트로피를 팔아버리는 뮤지션에게 상을 줬다는 이유로 한국 대중음악상 심사위원들을 비난하는 사람도 있었다.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포크 노래상을 받을 정도의 실력을 가진 아티스트가 한 달에 100만원도 채 못 버는지에 대한 고민의 흔적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14 대중음악 산업 실태조사 보고서’에 의하면 2013년 기준 음악산업 전체 매출은 4조2000억원이 넘는다. 하지만 2013년 문화체육관광부가 법으로 정한 기준 저작권료 비율은 유통사 40%, 제작사 44%, 저작권자 10%, 실연자(가수나 연주자) 6%다. 저작권자와 실연자가 가져가는 돈은 합쳐서 16%에 불과하다. 아무리 좋은 음악을 만들고 연주해도 돈을 버는 건 유통사와 제작사다. 그럼에도 이랑에게 ‘음악하면서 돈 타령 하지 말라’는 건 이런 비합리적인 권력구조의 문제점을 느끼지 못 하거나, 방치하겠다는 것에 불과하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표한 ‘대중음악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뮤지션의 67.3%만이 음악에 의한 수입이 있었고, 71.1%는 월수입이 100만원 미만이었다. ⓒ한국콘텐츠진흥원

옳지 못하다는 무책임한 주장

트로피 경매 퍼포먼스 이후 이랑을 메갈리안으로 호명하며 그의 음악을 깎아내리려는 시도도 있었다. 물론 수상 이후 이랑이 ‘돈 되는 일 = 한남(한국남자)으로 태어나기’라는 말을 트위터에 올리며 논란을 자초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메갈리안이냐’ ‘남성 혐오를 조장하느냐’고 캐묻는 건 아무런 쓸모도 없는 일이다. 퍼포먼스의 본질인 ‘음악으로 먹고살 수 없는 사회’에 대한 논의마저 가려서는 안 된다.

혐오 표현은 자제해야 한다. 하지만 비난의 범위는 잘못된 표현 혹은 주장으로 한정돼야 한다. 표현이 올바르지 않다는 이유로 그 사람의 인격이나 별개의 주장마저 매도해버린다면 그 누구도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없다. 자신들의 의견과 다른 사람들을 ‘빨갱이’라고 낙인찍는 것과 본질적으로 다를 바 없는 일이다. 민주시민이라면 손가락이 아니라 달을 볼 줄 알아야 한다. 정치적 올바름은 분명 필요하지만 올바름에 대한 지나친 집착은 민주주의를 퇴행시킬 뿐이다.

그러므로 ‘트로피를 50만 원에 팔았다’거나 ‘한남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는 사실만 떼어내 소모적 논쟁으로 끌고 가는 건 비합리적인 구조를 해결하는데 전혀 도움되지 않는다. 그 어떤 뮤지션(사람)도 돈 없이 살 수 없다. 그렇다면 이 논쟁들은 ‘어떻게 하면 뮤지션들이 합리적인 수익 구조 속에서 지속적인 창작 활동을 할 수 있는가’라는 논의로 발전시켜야만 한다. 그것만이 그렇게 불쾌해하는 트로피를 팔았다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오피니언타임스=이광호]

* 공식 입장은 아니지만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회 이지선 사무국장은 개인 페이스북을 통해 “퍼포먼스 덕분에 창작과 생계라는 이슈가 던져지고 우리 상이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돼서 기분 좋기도 하다”라고 했다.(https://www.facebook.com/jisun.lee.1293575) 그러므로 ‘상 준 사람이 뭐가 되냐’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그의 퍼포먼스가 한국대중음악상에게 무례한 행동일 순 있지만 그 칼날이 대형 유통사와 제작사를 겨냥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이광호

 똑같은 사람이 될 것만 같은 두려움에 글을 씁니다. 게임 좋아합니다.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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