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이의 어원설설]

“세상에 어려운 일이 두가지가 있다. 하나는 내 생각을 남의 머리에 넣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남의 돈을 내 주머니에 넣은 일이다. 우리는 첫번째 일을 하는 사람을 선생님, 두번째 일을 하는 사람을 사장님이라 부른다. 그리고 이 어려운 두가지 일을 한번에 다하는 사람을 ‘마누라’라고 부른다…ㅎㅎㅎ”

SNS에 나도는 작자 미상의 글입니다. 웃음기 돌게 만듭니다.

흥선대원군이 보냈다는 편지 한통이 언론에 보도된 적이 있습니다. 이 편지 봉투에 ‘뎐 마누라 전(前)’이라고 적혀 있어 처음엔 흥선대원군이 부인에게 보낸 편지로 봤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뎐’은 궁궐을 가리키는 대궐(殿)이며, 흥선대원군이 편지 쓸 당시엔 청나라에 볼모로 가 있었고, 내용도 당시 중전인 명성황후에게 보낸 것으로 봐야 아귀가 맞다는 주장이 설득력 있게 제기됐습니다.

“마마께서는 하늘이 도우셔서 환위하셨거니와 나야 어찌 생환되기를 바라오리까”라는 편지내용과 관련, ‘환위’는 제자리로 돌아옴을 뜻하는 것이어서 임오군란때 명성황후가 피신했다가 왕궁에 돌아온 일을 가리킨다는 게 학자들 해석이었습니다. 당시 마누라란 호칭이 지체높은 부인에게도 쓰였고 궁궐에서도 중전을 마누라라고 불렀다는 기록(순조의 딸 덕온공주의 손녀인 윤백영 여사 글)마저 있어 마누라란 표현이 중전으로까지 확장성을 가졌던 겁니다. ‘파워풀’했음을 알 수 있죠.

2013년 9월 서울 종로구 운현궁에서 명성황후와 고종의 결혼식이 재현되고 있다. 흥선대원군은 명성황후에게 ‘뎐 마누라 전(前)’이라는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플리커

마누라가 ‘마! 누우라’란 경상도 표현에서 왔다는 얘기도 있습니다만. 어디까지나 민간어원설일뿐입니다. 그렇다면 마누라란 말은?

동이는 ‘마누라’와 ‘며느리’의 말뿌리가 같고 며느리의 고어인 뫼>며에서 온 걸로 봅니다.

며느리의 옛말은 ‘며날’이며, ‘며’와 ‘날’ 모두 사람이란 뜻(국어어원사전/서정범)이죠. 며날의 며는 뫼에서 비롯됐으며 며날>며늘>며느리로 진화됐다는 게 통설입니다. 뫼+님(며+님)>뫼느님(며느님), 뫼날>뫼늘>뫼느리, 메날>메늘>메느리로 분화됐습니다.

‘마누라’란 표현도 며느님, 마나님, 마님, 마느님, 마늘, 마눌 등등 다양하게 불리다 마누라로 정착됐다고 봅니다.

일부 지방에선 지금도 ‘며느리’를 ‘뫼느리’라 합니다. ‘두메산골’에서 ‘뫼’가 ‘메’로 바뀐 자취도 볼 수 있죠. 이영희님은 저서(노래하는 역사)에서 “뫼, 며는 산, 무덤, 제사상의 진지, ‘봉곳하게 퍼 담은 밥’ ‘여음’ ‘여자’를 가리키는 옛말”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며느리가 메(제사에 올리는 진지)+내리, 즉 메를 내려받는 종부(宗婦)에서 왔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즉 메내리>메나리>메느리>며느리로… 그러나 이 주장엔 무리가 있습니다. 제사를 받드는 종부에서 온 것이라면 며느리=맏며느리라는 등식이 성립돼야 하나 며느리는 맏며느리 말고도 둘째 며느리, 셋째 며느리도 있지요. 아들의 여자(뫼, 메, 며)에서 왔고 이후 맏며느리의 경우 ‘메나리’ 의미가 녹아들었을 수는 있습니다.

며느리 어원과 관련, 인터넷 등에 나도는 얘기 중 하나가 며늘이라는 말 자체가 기생이라는 뜻을 지녔다는 주장입니다. 가령 수탉 등에서 보이는 며느리발톱이나 쥐며느리처럼 별로 기능적이지 않거나 붙어사는(기생하는) 존재라는 뜻의 ‘며늘’에서 왔다는 겁니다. 그러나 이들 표현은 며느리보다 나중에 생긴 말로 봐야 합니다.

며느리발톱의 경우 ‘기생적인’ 의미보다 오히려 ‘잠재적이고 위협적인’ 뜻을 담고 있습니다.

며느리발톱은 수탉 등 조류의 발뒷쪽에 붙어있는 발톱으로 평소 쓰지 않는, 생물학적으론 퇴화된 기관입니다. 다리뼈에 연결돼 있지 않고 피부에 붙어있어 평시엔 잘 쓰지 않죠. 그렇다고 이 발톱이 기능이 없는 게 아닙니다. 싸움 닭의 경우 며느리발톱은 상대를 공격하는 무기가 되며, 교미시에는 암탉의 등위에 올라 타 일순간 제압하고 자세를 잡는 역할을 하는 '무서운 발톱'입니다.

평소 없는 듯 보이는 발톱(조신한 여인)이지만 어느 순간 무서운 존재(시어머니도 장차 가문의 경제권을 쥘 며느리를 마냥 우습게 볼 수만 없다는 점)가 될 수 있다는 뜻을 담아 며느리발톱이라 부른 게 아닐까… 예나 지금이나 고부간은 긴장과 갈등의 연속이죠. 며느리를 다스리려는 시어머니와 시어머니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며느리의 신경전.

줄기와 잎이 잔가시로 덮인 며느리밑씻개라는 풀이 있습니다. 며느리가 얼마나 미웠으면 가시 투성이인 풀잎으로 며느리의 그곳을 닦으라고 했을까? 고약한 시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풀이름입니다. 그 옛날 며느리들의 애환을 느끼게 하는 며느리밑씻개. 그러나 정작 꽃을 보면 꽃말과는 반대로 너무 예뻐 시어머니들이 역설적으로 이름지은 게 아닌가 할 정도입니다. 검색 한번 해보십시요! [오피니언타임스=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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