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완의 애, 쎄이!]

‘사는 집 자식’이던 육촌오빠는 17살에 벌써 오토바이를 몰았다. 부모님 돈으로 중국, 영국 유학을 다니더니 외국에서 만난 변호사집 딸과 28살에 장가를 갔다. 할아버지, 아빠, 엄마가 모두 변호사인 새언니는 중국인이었는데 뉴스에서나 접하는 소황제, 소공주였다. 육촌오빠 결혼식에 다녀온 부모님은 “돈이 최고긴 하더라”고 했다. 소파에 앉아있던 큰아빠는 커피 잔을 달그락거리면서 “내가 그 자식 등교시키고, 오토바이 타고 도망간 거 잡아온 게 몇인데. 번듯하게 장가를 가네”라고 신기해했다.

나는 오빠가 오토바이를 몰고 다닐 때 자전거 타고 논술학원을 갔다. 같은 동네에 사는 육촌오빠가 가로등 아래에서 담배를 꼬나물고 있으면 모르는 사람처럼 다다다, 뛰어서 친구들 곁으로 도망갔다. 고등학생이 담배를 피우면 안 되지, 15살의 나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만일 오빠를 따라 담배 피우고, 오토바이를 같이 탔으면 나도 영국 유학가고 변호사집 아들을 만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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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거 꽃이 1000만원이라고요?”

사과를 깎던 엄마가 큰아빠를 바라보며 물었다. 듣자하니 육촌오빠네는 그날 딱 하루 쓸 결혼식 꽃 장식에 1000만원을 웃도는 돈을 썼다는 얘기였다. 엄마가 깎아놓은 사과를 날름날름 주워 먹던 나는 갑자기 목이 콱 메는 기분이 들었다. 1000만원이 무슨 0.5초 만에 눌리는 페이스북 좋아요 버튼도 아니고, 그렇게 쉽게 꽃 위로 흩날려 사라질 수 있는 돈인가 싶었다. 사과를 대충 입에 넣고 집 밖으로 나섰다. 1년에서 한 달 모자란 11개월을 직장에서 버텨낸 친구가 퇴사해서 팥빙수를 먹기로 한 날이었다.

끝내 1년을 채우지 못한 친구는 손목 터널증후군을 얻었지만 퇴직금은 얻지 못했다. 친구는 1년을 채우겠다고 버텼지만 어느 날 엉엉 울면서 여기에 더 있다간 모든 머리털이 다 뽑힐 것 같다고 했다. 그게 10개월을 채운 지 얼마 안 되는 날이었다. 친구는 다행히 풍성하고 새카만 머리를 틀어올리고 나와 팥빙수를 먹을 수 있었다.

“육촌오빠가 결혼을 했는데, 꽃 장식에만 1000만원을 썼데.”
“정신 나갔네.”
“그치?”

다국적 의류기업이던 회사는 친구를 채용하며 ‘해외의 다양한 직원들과 소통하며 국내에서 안정적인 수익을 낼 수 있도록 창의적으로 일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하지만 친구는 매일 다섯 줄 내지 여섯 줄의 정해진 영어문장을 메일로 썼고 거래처와 공장 사이에 껴서 고개를 숙이며 전화를 받았다. 또한 7살배기 아들이 있는 45살 과장이 좀 더 일찍 퇴근할 수 있도록 잔업을 도왔다. 그렇게 8시간을 들들 볶여도 나와 내 친구는 정규직이 될 수도, 1000만원짜리 꽃장식이 있는 결혼을 할 수도 없었다. 그런데 1000만원짜리 꽃장식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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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럴 때 낭만적인 포기를 한다. 가끔 현실이라고 믿고 싶지 않은 것들이 불쑥불쑥 솟아오르고 논리와 이성을 동원하여 원인을 파고들수록 암담하고 비참해지는 때가 온다. 그럴 때면 나는 너무나 연약하고 작은 존재임을 실감한다. 그러나 실망할 필요는 없다.

단지 욕심을 내려놓고 손에 움켜진 것들을 놓으면 된다. 현실을 직시하고 가능한 것들을 즐기면 된다. 우리에게 현실은 야무지게 실업급여를 챙겨들고 자소서 쓰고 여행가는 것이다. 팥빙수를 먹던 친구가 내 앞으로 핸드폰을 드밀었다. 23만원의 오사카행 항공권이 떠있는 창이었다.

1000만원이면 오사카를 적어도 40번은 다녀올 수 있다. 일회용 꽃장식 보단 40번의 여행이 낫지 않을까. 매일의 밤과 오늘의 낮을 붙잡아 둘 수 없는 것처럼 그냥 그렇게 움켜쥔 것들을 놓는다. 거대한 밤을 뒤집을 수 없다면 흘러가는 대로 즐기는 것도 나쁘지 않은 삶이라고. 우린 이렇게 아프지만 낭만적인 포기를, 그리고 청춘을 누린다. [오피니언타임스=우디]

 우디

 여행, 영화, 글을 좋아하는 쌀벌레 글쟁이.
 글을 공부하고, 일상을 공부합니다.
 뛰지 않아도 되는 삶을 지향합니다.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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