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인칼럼]

현대중공업 울산엔 2002년에 사들인 골리앗 크레인 ‘말뫼의 눈물’이 있습니다. 스웨덴 말뫼(Malmo)에 있던 조선업체 코쿰스(Kockums)가 문닫으며 내놓은 ‘코쿰스 크레인’입니다. 당시 해체비용을 부담하는 조건으로 단돈 1달러에 가져왔습니다. 당시 말뫼 시민들이 크레인 해체와 운반과정을 지켜봤으며 스웨덴 국영방송은 장송곡과 함께 ‘말뫼가 울었다’고 보도했습니다. ‘말뫼의 눈물’로 불리는 된 배경입니다.

스웨덴은 한때 세계 조선업계 선두였습니다. 때문에 그 중심에 있던 코쿰스의 파산과 크레인 해체는 세계 조선산업의 중심이동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었습니다.

국내 조선산업 부흥을 일궈온 ‘말뫼의 눈물’은 이제 거꾸로 ‘거제의 눈물’이 됐습니다.

조선업 불황으로 통영시 일대 조선소가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통영시청

조선불황 여파가 조선 3사를 삼킬 기세입니다. 대우조선해양은 지난해 당기순손실 2조7106억원을 기록했습니다. 2013년(당기순손실 -6834억원), 2014년(-8630억원), 2015년(-3조3066억원)에 이어 4년째 적자입니다.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도 사정은 비슷합니다.

세계조선 시장을 쥐락펴락했던 한국의 조선산업이 업황 악화와 저가 출혈수주의 고질병 끝에 파산직전으로 몰린 겁니다.

©포커스뉴스

위기의 핵은 대우조선입니다. 금융권이 또 다시 대규모 자금지원안을 만지작거리고 있습니다. 2015년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이 대우조선에 세금(지원금) 4조2000억원을 쏟아부은 지 1년5개월만의 일입니다. 곧 돌아오는 회사채와 운영비 감당이 어려워 추가지원(3조원)해야 한다는 얘기가 흘러나옵니다. “더 이상 국민혈세 지원은 없다”던 당국이 언제 그랬냐는 듯 이번엔 국책은행뿐아니라 비국책은행까지 끌어들이는 모양새입니다.

당시 천문학적 자금투하가 시장원리를 무시한 밀실(서별관)회의에서 결정된데다 그 근거가 됐던 업황전망조차 엉터리였습니다. 지원결정 당시 대우조선이 2016년에 110억~120억달러 수주할 것으로 봤지만 실적은 고작 15억5000만달러에 그쳤습니다.

2조1000억원대 자산 매각과 내년까지 인건비 45% 감축, 급여반납, 무급휴직, 추경을 활용한 3조3000억원의 군함 발주, 2020년까지 11조2000억원어치 선박 250척 발주 등등 조선업 회생방안도 그때 나왔습니만 대우조선 자구노력 이행률은 29%, 부채비율은 여전히 2700%나 됩니다. 부실진단과 전망, 안이한 대책이 위기를 키워온 것입니다.

대우조선을 관리감독해야 할 역대 산업은행장들은 정부 하수인 역할에 충실했습니다. 강만수 전 행장은 지인업체 2곳에 100억원 넘게 자금을 투자하도록 대우조선을 종용한 혐의로 구속됐습니다. 산은 자회사의 최고경영자(CEO) 감사 사외이사 등엔 청와대가 3분의 1, 금융당국이 3분의 1씩 나눠먹었습니다(홍기택 전 산은행장 인터뷰). 분식회계 의혹에다 전임 대우조선 사장들은 거액의 퇴직금을 챙기고… 온통 잿밥에만 신경쓴 채 줄서서 ‘빨대를 꼽아대는’ 모럴해저드의 극치를 보여줬습니다.

지난해 8월 경남 거제시 옥포항 인근 식당들이 조선업 불황 여파로 한가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포커스뉴스

대우조선이 망해서는 안된다는 논리들이 여전합니다. 자금지원이 끊기면 당장 114척이나 되는 선박건조 계약위반에 따른 매몰비용과 협력업체의 받을 대금, 연관산업 종사자 임금 등 57조원의 손실, 대규모 실업에 지역경제 침체까지 겹친다는 게 논거들입니다.

그동안 국책은행(산은, 수은)에서 지원한 돈은 국민의 세금입니다. 세금으로 월급주는 것도 모자라 ‘나랏배 발주’로 받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쯤되면 산업정책이라고 할 것까지 없습니다.

조선업을 정밀하게 진단해볼 것을 권합니다. 엉터리 진단과 안이한 시황전망은 미봉책만 양산할 뿐입니다. 불과 1년5개월 전 진단에서 2016년 당기순이익 916억원 적자, 영업이익이 3565억 흑자를 예상한 당국입니다. 그러나 정작 공시된 실적은 영업손실 1조6089억원, 당기순손실 2조7106억원. 이런 엉터리 진단으로 대책이 나올리 없습니다. 지금까지 제대로 된 진단이 없었다는 방증입니다.

국내 해운사들도 단가가 안맞아 중국에 배를 발주하고 있습니다. 단가에서 경쟁국에 밀린지 오래고 지금같은 3사 체제에서 저가 수혈수주 또한 근절되기 어렵습니다. 해양플랜트 쪽의 경험미숙과 기술력 한계로 끊임없이 제기되는 클레임이나 계약파기도 큰 리스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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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성 위기를 명분으로 비렁뱅이 동냥주듯 끌고 가서는 조선업 전체가 공멸할지 모릅니다. 정밀진단 후 청산이든, M&A든, 사업분할 매각이든, 군수부문 독립이든 적절한 대안을 마련해야 합니다. 진단은 시장원리에 따라 철처히 산업정책의 관점에서 이뤄져야 합니다. 대선 이후로 넘기고 보자는 당국의 보신주의나 지역경제만 고려한 정치논리는 철저히 배제돼야 합니다.

국민은 회생가능성없는 기업에 혈세 퍼붓는 일을 절대 원치 않습니다. 미 금리인상 여파로 가뜩이나 1300조원의 가계부채가 경제에 시한폭탄이 됐습니다. 임시방편 자금지원은 부실부채만 부풀릴 뿐입니다.

“대우그룹 부도당시 천문학적인 세금이 투입됐다. 그후 대우조선에 또 다시 국민세금 4.2조원이 산은과 수은을 통해 쏟아부었다. 왜 피같은 국민세금으로 대우조선 귀족노조를 먹여살려야 하나? 독자생존 능력이 안되면 파산시키는 것이 답이다.”

“돈 먹는 하마는 해체하여 다른 회사에 넘겨라. 그리고 이 지경까지 만든 자들에게 손해배상 청구하라.”

또 다시 대규모 자금이 지원될 것이란 소식에 올라오는 누리꾼의 반응들입니다. [오피니언타임스=권혁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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