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채연의 물구나무서기]

윤성희 작가의 단편 ‘유턴지점에 보물지도를 묻다’는 보물을 찾아 함께 여행을 떠난 ‘나’와 Q, W, 여고생에 얽힌 이야기다. 지극히 평범한 주인공들은 우여곡절 끝에 지도 속 보물을 찾아 나서지만 결국 실패한 채 돌아오고 만다. 그러나 허무맹랑한 이야기 속에도 그들의 내면에 피는 꽃은 아름답다. 그들은 정녕 보물찾기에 실패한 걸까.

주인공들은 보물을 찾기 위해 운전을 배우고 운동을 한다. 그러나 한시라도 빨리 산으로 달려가도 모자랄 판국에 그들은 너무나 여유롭다. 오히려 보물찾기 필수품인 삽을 여정 도중 버리기까지 한다. 심지어 어렵사리 도착한 X표시에 보물이 없음을 확인하고도 과거의 노력을 안타까워하지 않고 미련 없이 유턴해버린다.

어쩌면 그들에게 지도 속 보물찾기는 목표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오히려 당연하다는 듯이 훌훌 털어버리고 함께 돌아오는 그들의 모습은 행복해보이기까지 한다. 불안하고 위태롭던 그들은 여행 과정에서 서로에게 위안을 얻는다. 개개인은 여전히 불완전하지만 아픈 상처를 내보이고 기댈 사람을 만났기에 보물은 없어도 크게 상관없다.

그들은 찾는 진정한 보물은 사람이 아니었을까. 서로는 서로에게 보물이 된 시점에서, 그들은 이미 보물찾기에 성공한 것일지도 모른다. 아니 처음부터 그들은 보물이 없음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서로 함께하는 시간이 소중했기에 애써 덮어두었을 뿐.

©픽사베이

유턴지점이란 U자로 돌아 방향을 바꿔 갈 수 있는 지점이다. 인생의 전환점을 맞은 이들은 함께 만두가게를 차린다. 그렇게 가족의 결여라는 공통된 아픔을 가진 이들이 모여 또 다른 가족을 이룬다.

소설의 첫머리에서 그들은 각각 한없이 어둡고 우울했다. ‘나’는 가족이 부재한 삶 속에서 너무나 외롭고 힘들었을 것이다. Q는 종종 우울증에 시달렸고, W는 길을 가는데 자신의 그림자가 보이지 않음을 문득 깨달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유대감으로 만들어진 가족이 존재하는 시점부터 이들은 더 이상 어둡지 않았다. 오히려 서로가 모여 미약하게나마 불빛을 내고 있었다.

윤성희 소설의 매력은 불친절하다는 점이다. 그녀는 주인공들의 행동 자체를 보여줄 뿐 어떤 의미도 부여하지 않는다. 간결한 문체 속에서 부연설명 없이 툭 던져지는 죽음들은 거칠고 메말라있다. 소설에는 죽음이 유난히 많이 언급된다. 어머니, 쌍둥이 언니, 아버지와 할아버지까지. 자신을 낳다 돌아가신 어머니와, 서로에게 의지하며 세상에서 가장 소중했을 쌍둥이 언니의 죽음까지. 아마 주인공의 아픔은 감당할 수 없으리만치 무거웠을 것이다.

화자뿐만 아니라 다른 인물들에게도 아픔이 존재한다. 자신이 몰던 지하철에 뛰어들어 죽은 여성 때문에 트라우마가 생긴 Q, 유명 배우의 자식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림자 같은 존재인 W, 가출한 여고생…

하지만 이들은 독자에게 자신의 아픔을 함께 공감해 달라고 하지 않는다. 또한 자신들이 불행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단지 감정을 한껏 억제한 문장 속에서 담담하게 이를 서술할 뿐이다. 하지만 독자는 소설을 읽어 내려가며 가슴이 한없이 먹먹해짐을 느낀다. 어쩌면 우리는 윤성희의 글 속에서 단지 소설을 읽는 게 아닌, 함께 써내려 가는 걸지도 모르겠다. 이는 마치 작가의 ‘문장’이라는 선 사이 사이에 독자인 우리가 ‘감정’이라는 색으로 채색하는 그림처럼 느껴진다. 수동적인 독자가 아닌 소설 속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말이다.

소설 속 인물들의 선이 뚜렷하지 않기에 더더욱 그런 기분이 든다. 그들의 이야기는 마치 친한 친구의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가깝게 다가온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들의 이야기에 더욱더 공감하고 더 많은 아픔을 함께 나누는 걸지도 모르겠다.

©픽사베이

소설의 결말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누군가는 결말에 대해 ‘왜 결말이 어묵 얘기지?’라며 의아해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무기력하게 감정을 잃고 살아가던 과거와 달리 변화한 화자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이 글의 화자는 마지막 문단에 와서야 남의 이야기가 아닌 온전한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화자는 항상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듯했지만, 이야기의 뒤에 선 채로 자신의 주변 인물들을 서술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화자가 결말에서는 처음으로 자신의 취미를 말하고 있다. 자신의 취미가 고속도로를 달리다 휴게소에서 어묵을 먹는 것임을 말하는 구절은, 마치 어린아이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신이 나서 조잘대는 느낌으로 다가왔다. 마치 흙빛의 소설에 햇살이 스며든 것 같아 적잖이 놀랐다.

이 시점은 화자의 인생에 있어 중요한 유턴지점일 것이다. 과거부터 쭉 아픔과 상처라는 도로를 지나고 있었다면, 이제 유턴을 하고 진정한 ‘나’의 삶이라는 도로를 지날 것이다. 완전히 괜찮지는 않겠지만 아주 아프지는 않은. 때때로 그리울 때마다 생각하며 조용히 미소 지을 수 있을.

화자인 ‘나’가 유턴할 수 있도록 용기를 준 많은 사람들이 있다. 화자에게는 소중한 사람들이 생겼기에 아픔을 극복할 힘이 생겼다. 나와 Q, W, 여고생이 함께 산에 무언가를 묻고 유턴한 시점부터 그들 모두의 마음에는 조금씩 온기가 불어나고 있었다. 이들 모두에게 자신의 인생에 있어 현재는 소중한 순간이리라 생각한다. 이들 모두 각자의 유턴지점을 지났을 것이다.

소설을 읽고 있으면 어느 순간부터 그들은 우리를 조용히 토닥이고 있다. 그들은 나에게 누구나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고, 힘내라며 응원의 말을 건네고 있었다. 상처받을 걸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그냥 그 자리에서 털고 일어서 유턴해 버리면 그만이니깐. [오피니언타임스=송채연]

 송채연

  대한민국 218만 대학생 중 한 명. 그냥 평범한 직장인이 될래요.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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