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세진의 지구촌 뒤안길] 트럼프 ‘위태로운’ 지도력에 역할 축소 우려

미국은 2차 세계대전 종식 이후 옛 소련과 함께 세계를 지배해온 초강대국이었다. 지난 1990년대 초반 옛 소련이 붕괴해 15개 독립공화국으로 해체되면서 러시아의 힘이 약화되자 미국은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으로 군림해 왔다. 급속한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국력이 급신장한 중국이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올라서면서 대항마로 부상했지만 미국은 여전히 경제·군사·기술력에서 월등한 세계 최강국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미국의 지도력에 의문이 조금씩 커지고 있다. 경험이 많지 않은데다 자신의 판단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 정책에 대한 우려도 고개를 들고 있다. 누구라도 잘못된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잘못됐더라도 잘못을 인정하고 바로 잡으면 되는데 트럼프의 경우 그것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시각이 많다.

메르켈 독일 총리(왼쪽)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7일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가진 가운데, 트럼프가 메르켈의 악수 요청을 외면하며 딴청을 피우고 있다. ©YTN방송 캡처

지난 15일 공개된 트럼프 행정부의 2018년 미 정부 예산은 국방예산이 10%나 크게 증가한 반면 대외 원조 등 국무부의 외교 수행을 위한 예산은 28%나 삭감된 것으로 드러났다. 국무부 외에도 환경·보건예산 등이 크게 삭감됐다. 문제는 국방예산을 늘리는 것만으로 미국의 국가안보를 완전하게 담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오바마 전 행정부에서 국무부 부장관을 지낸 안토니 블링큰은 “이 같은 예산 편성은 국가안보에 대한 잘못된 인식 때문”이라며 “미국의 강력한 외교가 아니었다면 이슬람국가(IS)와의 싸움에서 60개국이 넘는 동맹국들을 끌어들일 수 없었을 것이다. 외교 자체가 국가안보”라고 지적했다.

믹 멀베이니 백악관 예산국장은 “트럼프 대통령은 외국인들을 위해 쓰는 돈을 줄이고 미국인을 위해 더 많은 돈을 쓸 것이라는 점을 되풀이 밝혀 왔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어려움에 처한 외국의 어린이들을 죽어가게 방치하는 것만이 미국인들을 도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냐는 반발과 비판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오랜 시간에 걸쳐 굳건한 동맹 관계를 유지해 왔던 동맹국들과의 사이에 균열을 부를 수 있는 행동을 트럼프 행정부가 잇따라 보이는 것도 문제다. 지난 17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트럼프 대통령의 백악관 오피스 정상회담 당시 트럼프는 메르켈 총리의 악수 요청을 거부해 파문을 일으켰다. 숀 스파이서 백악관 대변인은 트럼프 대통령이 메르켈 총리의 악수 요청을 듣지 못했다고 해명했지만 당시 현장에 있던 사진기자들이 모두 들을 수 있었던 요청을 트럼프만 듣지 못했다는 것은 납득되지 않는다.

트럼프는 또 메르켈 총리와의 공동기자회견에서도 미 국가안보국(NSA)이 메르켈 총리를 도청했고 영국 정보기관이 지난해 미 대선기간 중 자신을 도청했으니 공통점이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주요 동맹국인 독일과 영국에 한꺼번에 모욕 주는 발언이었다. 게다가 이러한 내용은 모두 확인되지 않은 것들이다. 트럼프는 또 독일이 나토에 막대한 빚을 지고 있다고 주장했지만 메르켈과 독일은 즉각 이를 반박했다.

동맹국들에 대한 모욕은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의 한국 방문에서도 이뤄졌다. 틸러슨 장관은 윤병세 외교통상부 장관과 만찬을 갖지 않은 것과 관련, 한국 언론들이 틸러슨이 피곤해 만찬을 하지 않았다고 보도한 것에 대해 한국이 만찬을 요청하지 않았다며 한국 외교부가 거짓을 말하고 있다고 비난해 마찰을 일으켰다.

틸러슨 장관은 또 다음달 5∼6일 브뤼셀에서 열리는 나토 외무장관회담에 참석하지 않을 방침인 것으로 20일 알려졌다. 틸러슨의 국무장관 취임 후 첫 나토 외무장관회담에 불참하는 것은 미국 외교에서 나토가 차지하는 비중이 그만큼 낮아졌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트럼프는 지난해 대선 선거운동에서도 여러 차례에 걸쳐 나토는 미국에 도움이 되지 않으며 쓸모없는 기구라고 거듭 말했었다. 틸러슨 장관의 나토 외무장관회담 불참에는 이러한 트럼프 대통령의 인식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나토는 단지 유럽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미국의 국가안보를 위해 꼭 필요하다. 미국이 나토에 대해 이러한 인식을 갖는 한 나토는 물론 세계에서 미국이 맡을 역할은 감소할 수밖에 없다.

지난해 9월4일 열린 G20 정상회담에 참석한 각국 정상들이 회의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최근 세계경제 1위 미국이 보호무역을 내세운 가운데 2위 중국과 3위 일본, 4위 독일이 손을 잡고 대립하는 구도가 형성되고 있다. ©게티/포커스뉴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자유무역을 둘러싸고 트럼프 행정부가 일으키고 있는 마찰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개정을 공식화했고 전임 오바마 행정부가 추진해온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사실상 백지화시켰다. 한국과의 FTA에 대해서도 재협상을 요구하고 나설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은 고립주의자가 아니라면서도 미국은 무역에 있어 공정한 대우를 받지 못했다며 좀더 공정한 무역을 원한다고 말하고 있다. 미국의 막대한 무역적자를 내세워 보호무역을 통한 수입 규제로 미국의 일자리를 보호하겠다고 말한다. 이른바 미국우선주의(America First)이다.

보호무역과 수입 규제는 결국 보복 조치를 불러 무역을 위축시킬 수밖에 없다. 이는 미국뿐 아니라 모든 국가들에 해를 미치게 된다. 트럼프의 미국우선주의와 무역협정 경시는 결국 세계경제에 불확실성을 높이게 될 뿐이다. 게다가 미국은 지난 18일 독일 바덴바덴에서 열린 G20 재무장관회담에서 보호무역에 반대한다는 약속을 하지 못하겠다고 거부하기까지 했다.

미국이 보호무역 반대 약속을 거부한 하루 뒤인 지난 19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독일과 일본이 자유무역을 수호하기 위해 힘을 합칠 것이라고 선언했다. 메르켈 총리는 또 미국 방문 직전인 지난 16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전화통화로 자유무역을 함께 지켜나갈 것을 논의했다. 세계 1위 경제대국 미국이 보호무역을 내세우는 것에 맞서 2위 중국과 3위 일본, 4위 독일이 손을 잡고 대립하는 격이 된 것이다.

미국이 다른 동맹국들과 대립을 계속할 것인지 아니면 타협점을 찾을 것인지 여부는 오는 5월 이탈리아에서 열리는 G7 정상회담에서 단서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의 보호무역주의에 반대하는 다른 정상들의 의견에 트럼프가 과연 어느 정도 귀를 기울일 것인지가 관건이 될 것이다. [오피니언타임스=유세진]

 유세진

 뉴시스 국제뉴스 담당 전문위원

 전 세계일보 해외논단 객원편집위원    

 전 서울신문 독일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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