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동철의 석탑 그늘에서]

충남 서산 부석사 금동관음보살좌상에 얽힌 재판의 항소심이 지난주 시작됐다. 1심에서는 “왜구가 약탈해 간 것이 분명하니 소유권은 우리에게 있다”며 소송을 제기한 부석사가 승소했다. 잘 알려진 대로 이 불상은 한국인 절도단이 지난 2012년 10월 일본 쓰시마 간논지(觀音寺)에서 훔쳐온 것이다.

이 불상을 일본에 돌려줘야 할 것인지, 말 것인지는 학계의 판단을 바탕으로 사회적 합의를 거쳐 결정해야 했을 것이다. 비(非)전문가 그룹인 법원에 판단을 떠넘긴 것 자체가 수긍하기 어렵다. 정부가 불상을 일본에 보낼 움직임을 보이자 부석사는 어떤 노력이라도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서산 부석사 관음보살좌상 ©문화재청

그런데 항소심에 접어든 재판은 새로운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피고인 검찰은 항소이유서에서 “일부 감정위원이 불상 내부에 있었다는 결연문의 진위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한 마디로 가짜일 수도 있는 결연문의 내용을 그대로 믿기 어렵다는 뜻이다. 검찰은 “실제 고려 말기에 작성된 것인지 입증할 자료가 없고, 결연문에 대한 탄소연대 측정 등 작성 시기에 대한 과학적 측정 결과가 제출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불상이란 부처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또한 눈에 보이지 않는 ‘부처의 가르침’을 볼 수 있도록 형상화한 일종의 상징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불상은 내부에 일정한 공간을 만들어 부처님의 가르침을 담은 불경을 모시기 마련이다. 불상에서 가장 공간이 넓은 배 부분이어서 복장(腹藏)이라고 한다. 누가, 언제, 어떤 과정을 거쳐, 무엇을 염원하며 불상을 조성했는지를 적은 결연문을 함께 넣는 것이 보통이다.

부석사 불상의 결연문을 포함한 복장은 1951년 쓰시마 간논지 주지가 우연히 발견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결연문에는 ‘고려시대인 1330년 서주(瑞州) 부석사에 모시고자 불상을 조성했다’는 내용이 적혀있다. 서주는 서산(瑞山)의 고려시대 이름이다.

서산 부석사 전경 ©서동철

검찰은 “오늘날 전해지는 사료 가운데 ‘서주 부석사’를 언급한 것은 ‘신증동국여지승람’ 뿐인데 이 책은 조선시대인 1530년에야 작성된 만큼 고려시대 서주 부석사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나아가 “현재의 서산 부석사가 결연문에 나오는 서주 부석사와 동일한 사찰인지도 입증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역사나 미술사는 소수의 증거에 다수의 추정과 심증으로 실체를 구성하는 학문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반면 재판이란 추정이나 심증이 아닌 증거로 말해야 한다는 점에서 검찰의 문제제기는 무리가 아니다. 하지만 석굴암과 불국사를 포함한 경주의 신라 유적 대부분 역시 ‘삼국유사’에 적힌 바로 그 문화재가 맞는지 증거를 제시해 보라고 하면 역시 쉽지는 않을 것이다. 사법부에 의존해 ‘문화재의 진실’을 밝혀보려는 움직임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유다.

문화재청은 부석사 관음보살상을 일단 일본에 돌려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구가 부석사에서 약탈한 문화재일 가능성이 높지만, 훔쳐온 것은 보내고 가능성은 낮더라도 다시 반환받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순리라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엄청난 숫자의 문화재가 일본을 비롯한 해외에 있는 상황에서 국외 문화재 환수가 사실상 불가능해지는 소탐대실을 우려한다.

서산 부석사 일주문 ©서동철

검찰은 정부의 문화재 정책 부서의 입장을 대변한다. 항소이유서에서 결연문의 진위, 나아가 불상의 진위마저 의심하는 주장을 펼친 것도 문화재청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스스로 문화재의 진정성을 훼손한 것 역시 부인할 수 없다.

항소심 재판부는 “피고는 결연문의 진정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데, 현재 결연문과 복장물은 일본에 있어 연대 측정을 위해서는 관련 기관의 동의와 협조가 필요하다”고 했다. 연대 측정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연대 측정 결과가 결연문에 적힌 대로라고 해또 서주 부석사가 서산 부석사인지를 증명해야 하는 절차는 여전히 남는다.

재판과는 별개로 ‘불상 자체가 복제품’이라는 주장도 번지고 있다. 애초 ‘복제 불상’이라며 반출을 허가했던 부산세관 문화재감정관은 여전히 ‘가짜’라는 자신의 판단이 옳다는 뜻을 고수하고 있다. 자신의 판단이 잘못됐음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은 것은 인지상정이다.

서산 부석사에서 바라본 천수만 ©서동철

공예업계 일각에서는 불상이 전통적 기법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한 금속공예인은 “외견상으로도 순수 청동이 아니라 근대와 현대에 쓰이기 시작한 금속이 포함된 함금 성분이 포함됐다”면서 “불상 표면 전체에 화학약품으로 착색한 흔적이 보이고 붓 자국도 선명하다”고 주장했다. 옛것처럼 보이기 위한 강제로 부식시킨 흔적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고려 불상이라면 국내에 제작 전문가가 많고 비용도 적게 먹힌다. 그럼에도 굳이 문화재 통관 절차까지 어렵게 거쳐야 하는 일본에서 만들어 들여온다는 것은 상식적이지 않다. 오히려 문화재 전문가들은 문화재 도둑들이 진품을 복제품처럼 보여 통관이 가능하도록 약품으로 처리한다고 설명한다. 이 불상이 가짜일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 같다. 그렇지만 관련 전문가들이 모여 의견을 교환하는 모임을 한차례쯤 갖는 것은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부석사 관음보살상 소유권 소송의 본질은 간단하다. 외국에 약탈당한 문화재를 절도로 되가져 오는 방법이 타당하냐 하는 것이다. 그런데 항소심에서 제기된 의문들은 아무리 생각해도 법의 영역에서 풀어낼 사안은 아닌 것 같다. ‘가짜 논란’ 역시 논란만 키우고 있다.

지금 부석사 관음보살상 문제는 소모적 논쟁으로 불필요한 갈등만 양산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문제의 해법을 법의 영역에서 되돌려 사회적 합의의 영역에서 다시 찾기에는 이미 늦었을까. 적어도 문화재 분야에서는 소송 만능주의가 사라졌으면 한다. [오피니언타임스=서동철]

 서동철

 서울신문 논설위원

 문화재위원회 위원

 전곡선사박물관 운영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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