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환의 코리아 프리미엄 프로젝트]

오늘날 정보의 중요성은 상식이다. 과거에도 정보는 생존을 위해 매우 중요한 요소였다. 숲속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을 때 이것이 포식자의 발자국 소리인지, 아니면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인지 즉각적으로 파악해 적절히 대처한 사람들은 생존할 수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포식자에게 희생됐을 것이다. 이른바 ‘싸움 아니면 도주(fight or flight)’는 정보의 문제였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인류는 오랜 진화 과정을 통해 나름대로 무엇이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정보인지 아닌지 판별하는 방법을 강구해왔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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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는 이제 일상생활 깊숙이 침투해 누구나 다 아는 보편적인 용어가 되었지만 학문적으로는 여전히 논란이 많은 개념이다. 그렇기에 정보를 활용하기 전에 정보의 다양한 의미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예컨대 때로는 어떤 상품에 대한 정보(진품인가 모조품인가)가 중요한 경우도 있고, 때로는 다른 사람들이 알고 있는 정보에 관한 정보(메타 정보)가 중요한 경우도 있다. 정보의 원천이 다양할 때는 어떤 정보가 가장 질적으로 우수한지 판단하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현실에서 정보와 관련해 가장 중요한 문제는 사람들이 정보를 보유한 상태, 즉 대칭정보인가 비대칭정보인가와 관련되어 있다.

대칭정보란 문자 그대로 모든 사람들이 어떤 대상(상품이든 사람이든)에 대해 동일한 정보를 공유하고 있는 상태를 가리킨다. 반면 비대칭정보는 일부는 정확한 정보를 보유하고 있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정보가 부족하거나 아예 없는 상태를 가리킨다. 예컨대 명품 백을 파는 이태원의 상인은 자기가 취급하는 명품 백이 진품인지 모조품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지만, 우연히 그 상점에 들른 관광객은 정확한 정보를 갖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대칭정보 또는 비대칭정보는 정보 자체에 관한 것이 아니라 정보를 보유하고 있는 상태에 관한 것이다. 비대칭정보도 비대칭의 정도에 따라 다양하게 분류될 수 있지만, 일부는 완전한 정보를 보유하고 있고 나머지는 전혀 정보가 없는 상태가 가장 특별하다. 이런 경우 비대칭정보가 미치는 파괴적인 영향력이 극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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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대칭정보의 상황에서 사적 정보(private information)를 보유하고 있는 사람은 이것을 최대한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전략적으로 활용하려 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정보를 전략적으로 활용해 막대한 부를 축적한 대표적인 사례로는 로스차일드 가문의 셋째 아들이었던 네이선 로스차일드(Nathan Rothschild)의 일화를 들 수 있다. 음모론이 거론될 때마다 단골로 등장하는 로스차일드 가문은 마이어 암셀 로스차일드(1744~1812)가 원조지만 실질적으로 이 가문을 일으킨 사람은 네이선 로스차일드라 할 수 있다.

그는 영국으로 건너가 처음에는 금융업에 종사하지 않았으나 곧 다른 사업을 접고 가문의 전통에 따라 금융업에 전념하였다. 당시에는 영국 정부가 발행한 국채를 거래하는 시장이 가장 규모가 컸다. 네이선 로스차일드가 이 시장을 이용해 막대한 부를 축적할 수 있었던 기회는 1815년 워털루 전투와 함께 찾아왔다. 엘바 섬을 탈출한 나폴레옹이 지휘하는 프랑스군과 웰링턴 장군이 지휘하는 영국군을 주축으로 한 연합군 사이의 건곤일척의 전투에서 어느 쪽이 승리하는가는 유럽, 나아가 세계의 판도를 뒤바꿀 수 있었던 중요한 전투였다.

당시 로스차일드 가문은 다섯 형제들이 영국을 위시해 유럽 각국에 거점을 구축하고 있었기에 누구보다도 빠르게 정보를 입수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갖추고 있었다. 워털루 전투가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던 당시 누구도 어느 쪽이 승리할지 장담할 수 없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영국군이 승리한다면 영국 채권가격은 큰 폭으로 상승할 것이지만 패배하는 경우에는 큰 폭으로 하락할 것이라는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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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영국 증권거래소에 자신만의 특별한 장소를 갖고 있던 네이선 로스차일드는 그 자리를 지키면서 중개인을 통해 보유한 채권을 모두 매도하라고 지시했고 이로 인해 채권가격은 폭락하기 시작했다. 다른 투자자들은 네이선 로스차일드가 누구보다도 앞선 정보망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그가 채권을 매도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곧 워털루 전투에서 영국군이 패했다는 것으로 해석했다. 그래서 그들은 손실을 줄이기 위해 앞을 다퉈 채권을 매도했으며 이로 인해 채권가격은 바닥으로 하락했다.

그 시점에서 네이선 로스차일드는 다시 채권을 서서히 매입하라는 지시를 내렸고 자신이 팔았던 것보다 훨씬 싼 가격에 채권을 대량으로 매입할 수 있었다. 그런 후 그는 측근을 통해 영국군이 승리했다는 정보를 흘린 후 채권가격을 급격히 상승하기 시작하자 자신이 보유한 채권을 모두 매각해 막대한 시세차익을 얻었다. 그는 이미 영국군이 승리했다는 사적 정보를 갖고 있으면서 이를 전략적으로 활용했던 것이다.

이상이 네이선 로스차일드와 관련된 대강의 스토리다. 이 스토리의 진위와 관련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기에 이것이 실제로 벌어진 사건인지 100퍼센트 장담하기는 어렵다. 경제사학자 니얼 퍼거슨(Niall Ferguson)은 이 스토리는 나치가 유대인을 탐욕스러운 종족이라고 폄하하기 위해 조작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누구 말이 맞는지 장담하기 어렵지만 중요한 것은 이 스토리의 진위 여부가 아니라 이것이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라는 점이다. 사적 정보를 보유한 사람은 이것을 자신의 사적 이익을 위해 전략적으로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이와 유사한 사건이 한국 정치에서 벌어졌으며 앞으로도 그런 사건이 재발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 이 글의 핵심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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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 개월 동안 한국사회를 분열시켰고 상식과 이성이 있는 사람들을 분노하게 했던 전직 대통령 탄핵 사건의 본질은 사적 정보와 이것을 전략적으로 이용한 데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일찍부터 언론에 노출되어왔지만 개인적인 은밀한 내용은 오직 소수의 주변 인사들만 알고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여기에는 우호적이거나 적대적인 사람들이 모두 포함된다. 그리고 박 전 대통령이 국회의원으로 당선되고 정당의 대표가 되었으며 2012년 대선에서 대통령 후보가 되기까지 오랜 기간 동안 박 전 대통령의 개인적인 언행과 관련해 많은 정보가 언론을 통해 알려졌지만 정작 중요한 정보는 의도적으로 은폐되었던 것은 아닌지 의심이 간다.

개인의 사생활은 보호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공인, 특히 대통령의 직무를 수행하고자 하는 사람의 경우는 달라야 한다. 개인적인 습관이나 성격 또는 취미 가운데 대통령이라는 막중한 직을 수행하는 데 치명적인 결함이 될 수 있는 속성이 있다면 이것은 사생활의 일부로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문제를 경제학에서 말하는 감춰진 속성(hidden characteristics)의 관점에서 접근해보자. 누구나 자신만 알고 있는 속성을 갖고 있다는 의미에서 우리 모두 감춰진 속성이라는 사적 정보의 소유자들인 셈이다. 만약 상대방과의 거래 과정에서 자신의 감춰진 속성을 이용할 수 있다면 상대방은 그만큼 불리해질 것이다. 이것은 비대칭정보로 인해 발생하는 전형적인 문제의 일종이다.

현실에서는 이런 다양한 사례를 발견할 수 있다. 예컨대 처음 보험에 가입하려는 사람의 운전 습관은 자신만의 감춰진 속성에 해당한다. 보험회사는 이런 속성을 모르는 가운데 그런 사람과 계약을 체결해야 한다면 불리한 상황에 있는 셈이다. 이런 경우 보험가입자의 속성에 대해 정보가 없는 보험회사는 이에 대한 대비책을 고안할 수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소위 선별 메커니즘(screening mechanism)으로 알려진 것이다. 이것은 자신의 감춰진 속성을 스스로 드러내도록 유도하는 메커니즘을 지칭한다.

20대 국회의원 선거날인 지난해 4월13일 서울 종로구 동성고등학교 투표소에서 유권자가 투표를 하고 있다. ©포커스뉴스

그런데 현실적으로 이런 메커니즘을 고안해 실행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경우도 많다. 특히 대선 후보의 개인적인 속성에 관해서는 더욱 그러하다. 선거제도는 적임자를 선택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의미에서 일종의 선별 메커니즘에 해당한다. 그렇지만 박 전 대통령의 사례에서 드러났듯이 매우 불완전한 선별 메커니즘이다.

자신의 감춰진 속성을 스스로 드러내도록 한다는 점에서 전혀 제 기능을 하지 못하였고 오히려 이를 은폐하는 데 기여했다고 말할 수도 있을 정도다. 박 전 대통령이 이번 탄핵 과정을 통해 드러난 것과 같은 속성을 보유한 사람이라는 것이 대선 전에 언론을 통해 제대로 알려졌다면 과연 대다수의 국민이 그녀를 대통령을 선출하였을지 의문이다. 촛불을 통해 드러난 민심은 국민이 그 정도로 우매하지는 않다는 것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선별 메커니즘으로서 선거제도가 한계가 있을 때 일반 국민의 입장에서 기댈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은 주변 인사들의 진실한 행동이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박 전 대통령이 국가 지도자로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개인적인 속성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이고 일부 언론도 이 점을 인지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들은 사적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이런 부분을 철저하게 은폐하는 데 공조하지 않았나 하는 의심이 간다. 대중적인 인기가 높아 선거에서 당선될 가능성은 높으나 공개하기 어려운 개인적인 약점을 가진 사람이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이런 약점을 이용해 그들의 이득을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에 이들 세력이 박 전 대통령에 관한 사적 정보를 계속 은폐하기보다는 차라리 공개하는 쪽이 더 유리하다고 판단해 그동안 축적한 사적 정보를 전략적으로 노출시킨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네이선 로스차일드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사적 정보를 보유한 입장에서는 능히 그렇게 행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에게는 국가나 국민은 그저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구호 이상의 의미가 없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염치가 있어 못할 말도 주저 없이 내뱉을 정도로 뻔뻔스러운 사람들일 뿐이다.

문제는 이와 같이 사적 정보를 전략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대부분 불법이 아니기에 이를 제제할 마땅한 방법이 없다는 데 있다. 앞으로 치르게 될 대선이후에도 박 전 대통령의 경우와 같은 유감스러운 사태가 발생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더 이상 국가적으로도 수치스러운 일을 재발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선별 메커니즘으로서 선거제도의 취약점을 언론이 보완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국가적으로 불행한 일이 터진 후에 경쟁적으로 그리고 선정적으로 보도하기 보다는 사전에 불행한 사태를 막는 예방적 기능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이것이 언론의 본래 기능을 회복하고 국민의 주권 수호에 기여하는 길이다. [오피니언타임스=이영환]

 이영환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

  지식협동조합 경계너머 아하! 이사

  미시경제학 등 다수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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