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기수의 중국이야기]

건국일 하루 전인 1949년 9월30일, 중국 공산당에 의한 중앙 인민 정부는 새로운 중화인민공화국을 끌어갈 정부의 주석과 부주석 명단을 발표했다. 주석에 마오쩌둥(毛澤東), 부주석에 주더(朱德), 류샤오치(劉少奇), 쑹칭링(宋慶齡), 리지션(李濟深), 장란(張瀾), 가오강(高崗) 등이 그들이었다. 공산당 혁명의 실질적인 설계사이며 지금도 중국인민의 추앙을 받고 있는 영원한 2인자 저우언라이(周恩來)는 다음날인 10월1일 정무원 총리 겸 외무부 장관에 임명됐다.

여기에서 눈에 띄는 사람이 쑹칭링(宋慶齡)이다. 그녀는 중국의 국부(國父)인 쑨원(孫文)의 부인이고, 국민당 총재 장제스(蔣介石)의 부인인 쑹메이링(宋美齡)의 언니이며, 국민당 정부의 재무부장을 역임한 대 사업가이자 부호인 쿵샹시(孔祥熙)의 부인 쑹아이링(宋愛齡)의 동생이기 때문이다.

쑹 자매가 함께 찍은 사진. (왼쪽부터) 쑹아이링, 쑹칭링, 쑹메이링 ©위키피디아

중국 근대사의 주연(主演)을 말하라면 당연히 국부(國父)인 쑨원(孫文)과 국민당의 장제스(蔣介石), 공산당의 마오쩌둥(毛澤東)일 것이다. 이 세 사람이야말로 기원전 221년 진시황으로부터 2100년 이상을 내려온 전제 군주 국가를 폐하고 대륙에 새로운 공화 국가를 수립한 명실상부한 주역들이다. 그러나 남자는 세계를 지배하고 그 남자를 지배하는 것은 여자라고 했던가. 청(淸)왕조를 무너뜨린 신해혁명으로부터 이후 국민당과 공산당의 대립 속에서 결국 대륙과 타이완으로 갈라진 풍운의 중국 근대사에서, 이들 세 자매는 실질적인 주연(主演)이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송가자매(宋家姉妹)’나 ‘송가왕조(宋家王朝)’의 이름으로 이들 세 자매에 관련된 얘기는, 소설이나 영화로도 나와 여러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 중국 근대사를 얘기하면서 이 세 자매에 대해서 얘기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이들의 인생 역정이 너무나 드라마틱하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공산당과 국민당이라는 이념의 벽으로 갈라진 자매의 삶 속에서, 결국은 같은 중국이라는 상징성이 묻어 나온다.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이 ‘부’와 ‘명예’와 ‘권력’이라고 한다면 이 모든 것을 실제로 손에 넣은 송씨 세 자매의 인생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같은 부모를 섬기더라도 형제간의 성격이나 인생관이 너무나 판이한 것은 신기하다. 첫째인 쑹아이링(宋愛齡)은 냉정한 현실주의자였다. 쑨원(孫文)의 구애를 받았지만 그녀는 보장 없는 미래보다는 현실적인 ‘부(富)’를 선택한다. 당시 단지 이상적인 혁명가에 불과했던 쑨원보다는, 20세기 초 중국 최대 부호로서 하인만 500명이 넘었다는 쿵샹시(孔祥熙)를 선택한 것이다. 그리하여 그녀는 엄청난 부와 대범한 수완으로 중국 경제를 주름잡았었는데, 그녀가 ‘돈을 사랑한 여자’라는 소리를 듣는 이유이기도 하다.

1997년 개봉한 영화 ‘송가황조’ 스틸컷. 중국 근대사의 주연이었던 세 자매 이야기를 다뤘다. ©네이버 영화

둘째 쑹칭링(宋慶齡)은 ‘조국을 사랑한 여자’라는 평(評)을 듣는다. 언니가 배척했고 집안 모두가 철저히 반대했던 쑨원의 아내가 되어 그의 정치적 동지로서 중화민국 건립과 민권 옹호에 헌신한다. 쑨원 사후(死後) 일제 침략 시기에 항일민족통일 전선의 결성을 주장하나 일제보다 공산당 타도를 우선했던 장제스와 대립하여 마오쩌둥의 정치적 동반자가 되기에 이른다. 그리하여 공산당 건국 정부의 부주석에 오르게 되고, 그녀에 대한 중국 인민들의 지지는 대단해서, 지금까지도 그녀는 명예주석, 중화인민공화국의 대모로 추앙받고 있다.

셋째인 송미령은 ‘권력을 사랑한 여자’라는 소리를 듣는다. 그녀는 전도유망한 청년 장교 장제스를 선택하는데, 그와 함께 중국 전역을 누비며 정치와 사회활동에 폭넓은 영향력을 행사했다. 1936년 시안(西安)사건 당시 위험을 무릅쓰고 시안으로 달려가 장제스를 구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그의 과감성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그녀는 미국 의회에서 연설을 한 아시아 최초의 여성이었는데 1943년의 카이로 회담에서 통역을 맡을 정도로 영어 실력이 뛰어났다.

쑹아이링(宋愛齡)은 1940년대 미국으로 건너가 1973년 뉴욕에서 84세의 나이로, 쑹칭링(宋慶齡)은 1981년 베이징에서 90세의 나이로, 쑹메이링(宋美齡, 송미령)은 2003년 뉴욕에서 106세의 나이로, 격동의 삶들을 마감했다. 1950년 쑹칭링은 스탈린 평화상을 받았고 1966년 쑹메이링은 한국의 독립을 지원한 공로로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받았다.

‘부’와 ‘권력’과 ‘명예’- 많은 사람들이 이 중 하나만이라도 건지려고 불나방처럼 좇는 세태를 보면서 이를 전부 다 가졌던 송씨 세자매, 이들이 느꼈던 행복의 크기는 과연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반세기를 넘어서 아직도 계속되는 중국과 우리의 이념에 의한 조국의 분단을 오늘날 이 세 자매는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있을 지 궁금하다. [오피니언타임스=함기수]

 함기수

 글로벌 디렉션 대표

 경영학 박사

 전 SK네트웍스 홍보팀장·중국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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