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이의 어원설설]

삼짇날(음력 3월 3일)은 강남갔던 제비가 돌아오는 날입니다. 예부터 찹쌀가루 반죽에 진달래꽃을 올려놓고 동그란 화전(花煎)을 부처먹던 날이기도 하죠.

제비는 중앙절(음력 9월 9일)에 강남(중국 양쯔강 이남)으로 갔다가 삼짇날 어김없이 돌아왔습니다. 제비는 귀소(歸巢)본능이 뛰어나 어미새는 약 5%, 새끼는 약 1%가 같은 장소로 돌아옵니다(경희대학교 조류연구소 조사). ‘봄 제비 옛집으로 돌아온다’는 속담이 생긴 까닭입니다.

그러나 봄의 전령사, 제비가 요즘 우리 곁에 잘 오질 않습니다. 해가 갈수록 우리나라를 찾는 개체수가 줄고 있습니다. 통계적 사실입니다.

흥부가 있다 해도 박씨를 물고 올 제비를 찾기 어렵게 된 겁니다. 살충제 사용이 늘면서 제비의 먹이감인 곤충들의 씨가 말라 먹이사슬이 파괴된 탓입니다.

제비의 옛말은 ‘졉이’로 져비>제비로 됐습니다. ‘지지지지!~ 지비지비!~’하는 울움소리에서 ‘지비’ ‘져비’로 불리고 ‘지저귄다’는 동사도 함께 생긴 걸로 보입니다.

제비는 몇가지 특장이 있습니다. 빠른 비행속도(시속 250km 내외)는 가히 카레이서급이죠. 높이 날다가 땅 위로 활강하는가 하면 급상승과 급선회를 반복하고 원을 그리듯 '공중제비'하기도 합니다. 순식간에 먹이를 낚아채는 곡예비행은 공군 특수비행팀의 ‘블랙이글 쇼’ 버금갑니다.

©픽사베이

시골에선 물차는 제비를 보는 것 자체가 즐거움이었습니다. 써레질하는 논 위를 날며 곤충을 잡아채는 것을 ‘제비가 물찬다’고 했습니다. 제비의 몸이 수면에 살짝 부딪치는 순간 잔잔한 파문이 번집니다.

‘물(수)제비를 뜬다’‘물수제비 띄운다’고 할 때의 물(수)제비란 표현도 물차는 제비에서 온 것으로 동이는 봅니다. 호수나 강,논 위에 작고 납작한 돌멩이를 던져 누가 물 위를 여러번 튕겨나가는냐로 승부하는 ‘물수제비 놀이’가 있습니다. 물수제비 잘 뜨는 녀석들은 한번에 열번 내외 만들어냅니다.

물(수)제비의 말뿌리를 제비로 보는 건 단어뿐아니라 물수제비 모양이 ‘제비 물차기’와 유사하기 때문입니다. 수면 위의 벌레를 잡아채기 위해 물차기를 해대는 제비나 ‘물수제비’가 같습니다.

제비는 새끼들을 먹여살리기 위해 하루종일 물을 찹니다. 물을 막 찬 제비는 온몸이 물기에 젖어 더욱 날렵해 보입니다. ‘물 찬 제비같다’는 말도 여기서 비롯된 것이죠. 한때 ‘물찬 돼지’란 개그용어가 유행한 적이 있습니다만, 역설적 표현일뿐입니다. 돼지가 물차는 일이란 없을 테니까요.

전통음식인 수제비도 제비 연관어가 아닌가 합니다. 밀가루 반죽조각을 물위에 슬라이딩하듯 던지는 수제비나 ‘물수제비를 뜨는’ 동작이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강남 제비족, 족제비, 제비초리(뒤통수에 제비꼬리같이 뾰족이 내민 털) 역시 제비 관련어입니다.

강남 캬바레에서 아줌씨들을 후리던 넘들, 제비족. ‘몸의 윗면은 푸른빛이 도는 검정색. 나머지 아랫면은 크림색을 띤 흰색’의 날짐승 제비나 까만 양복에 흰 와이셔츠 차림의 강남 제비족이나 외양이 같다 하겠습니다. 얼마전 TV프로 복면가왕엔 ‘물찬 강남제비’란 가수가 출연해 이름으로 한몫 했습니다.

족제비는 족+제비로 쪼개볼 수 있고 발(足)이 달린 짐승치곤 제비만큼 빠르다는 뜻을 담아 이름지은 게 아닌가 합니다.

제비 다리를 고쳐준 흥부, 제비다리를 부러뜨린 놀부의 성씨가 제비 연(燕)씨인 걸보면 흥부전 주인공 역시 제비입니다.

“놀부가 부자가 된 흥부 사연을 듣고 제비를 기다린다. 놀부가 사람을 사서 품삯을 주고 제비집 수백개를 밤낮으로 만들어 저의 집 안채, 사랑채, 행랑, 곳간, 서당, 별당, 뒷간까지 빈틈없이 달아놓고 그래도 부족해서 자기 망건에다가도 하나 매달아 쓰고 제비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놀부가 제비 글자만 사랑하는데, 길짐승은 족제비만 사랑하고 음식은 수제비만 해서 먹고...” 판소리 흥부가의 일부입니다.

제비를 기다리는 이들은 여전한데, 정작 봄의 전령은 안보이는 삼짇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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