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준의 길 위에서 쓰는 편지]

올 봄도 미세먼지가 화두입니다. 눈을 어디에 두어도 뿌연 먼지. 피어나는 꽃조차 무색할 정도입니다. 얼마나 극성인지 서울의 공기 질이 스모그로 유명한 베이징보다 나쁘다는 뉴스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이런 때는 저 같은 여행자들도 난감해집니다.

어느 지방도시에 들렀던 길. 점심을 간단하게 때울까 싶어, 엉성하게 둘러친 포장마차에 들어가다가 발걸음을 돌리고 말았습니다. 튀김이나 핫도그, 도넛, 꼬치어묵 등을 파는 집이었는데, 좌판 위에 먼지가 뽀얗게 앉아있었습니다. 닦아도 닦아도 게릴라처럼 숨어드는 먼지를 당할 방법이 없었겠지요. 그 먼지들이 음식에도 잔뜩 앉았을 거라고 생각하니 차마 편히 먹을 수 없었습니다.

서울 송파구 잠실 롯데월드타워에서 바라본 도심이 미세먼지로 뿌연 모습을 보이고 있다. ©포커스뉴스

하다하다 먼지까지 가난한 이들의 삶을 위협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문제는 포장마차가 거기 하나만 있는 게 아니라는데 있지요. 전국 단위로 보면 얼마나 많은 포장마차가 있을까요. 그뿐인가요. 포장조차 치지 못할 정도로 영세한 좌판은 또 얼마나 많을까요. 그들에게는 끊임없이 달려드는 미세먼지가 천재지변이나 다름없습니다.

가난한 서민들의 삶이라는 명제를 앞세우고 보니 생각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대왕 카스테라’까지 이어졌습니다.

지난 3월 12일 한 종합편성채널에서 대왕 카스테라의 문제점을 고발하는 프로그램을 방송한 뒤 점포들이 큰 타격을 입었다고 하지요. 심지어 폐업하는 집까지 속출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 방송은 대왕 카스테라를 만드는 과정에서 우유와 계란보다 식용유가 더 많이 들어간다면서, 어떤 가게에서는 700㎖짜리 식용유를 들이붓기도 한다고 고발했습니다. 파문은 작지 않았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양심적으로 운영하는 업체들까지 덩달아 곤란을 겪고 있다는 것입니다.

폐업했다는 한 점포의 주인은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서, 하루 평균 170만원~180만원의 매출을 올렸는데 방송이 나간 다음날 12만원밖에 팔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그 뒤로도 매출이 회복되지 않아서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방송에서는 카스테라 한 개를 만드는 데 식용유 700㎖를 들이붓는 것처럼 전했지만, 진실은 500g짜리 카스테라 20개를 만드는 데 들어가는 식용유 총량이 700㎖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카스테라 1개에 식용유 700㎖가 들어간다면 수지가 맞을 턱이 없습니다. 결국 1개당 35㎖ 정도가 들어간 셈입니다.

식용유가 특별한 유해물질이 아니라면, 식용유를 넣었다는 이유로 카스테라를 만들어 파는 사람이 방송 한 번에 폐업하는 상황은 비극일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판매자의 주장이기 때문에 다른 의견이나 반론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억울해 보이는 것은 사실입니다.

먹거리x파일 대왕카스테라편 방송화면 캡처 ©채널A

미세먼지가 사람의 힘으로 막기 어려운 자연재해라면, 대왕 카스테라의 비극은 사람이 만들어낸 재해입니다. 즉, 조금만 더 신중했다면 ‘억울한’ 일을 줄일 수 있다는 뜻이지요. 더욱 마음이 쓰이는 것은 그런 피해자들 중에는 하루하루 살아가기가 버거운 서민들도 많다는 사실입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2월 자영업자가 1년 전보다 21만3000명 늘었다고 합니다. 이 숫자는 대량 실업 여파로 자영업자가 크게 늘었던 2002년 4월 이후 가장 많은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종업원이 없는 1인 자영업자는 1년 새 13만7000명 늘었습니다. 소위 생계형 자영업자들입니다.

하지만 이들이 성공할 확률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지나는 것만큼이나 어렵습니다. 자영업자가 5년 뒤에도 사업을 유지할 확률이 20%에도 미치지 못 한다는 것은 이미 정설입니다. 지난 20일 공정거래위원회가 밝힌 프랜차이즈 식당 폐업률이 역대 최고 수준이라는 통계가 그런 사실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통계에 따르면 2015년 폐업한 프랜차이즈 식당 수는 전년(1만 1158곳) 대비 18.7% 늘어난 1만 3241곳으로 집계됐습니다. 하루 평균 36곳이 문을 닫은 셈입니다. 자영업자 대출이 지난해 말 520조원 대로 최초로 500조원을 넘었다는 소식도 마음을 무겁게 만듭니다. 고용시장에서 밀려난 이들이 빚을 내어 자영업으로 몰려들고 있다는 방증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는 이들을 지켜줄 안전장치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더구나 지난해 10월 말 이후 나라를 뒤흔들고 있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서민들에 대한 최소한의 관심조차 무너트렸습니다. 정부도 정치권도 자신들의 문제가 더 급하기 때문입니다. 한반도 사드 배치, 미국의 금리 인상 같은 대외적 경제 요인은 서민들의 삶을 더욱 불안하게 하고 있습니다. 시중금리 상승기에 들면서 자영업자 대출의 부실 위험은 빨간등이 켜진지 오래입니다.

이제 게이트 정국은 대선 정국으로 바뀌었습니다. 정치판이 북적거릴수록 가난한 이들은 더욱 소외되기 마련입니다. 표는 그들에게서 나오는데도 말입니다. 비록 메아리는 없을지라도,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 이들에게 자꾸 외칠 수밖에 없습니다. 국민이 있어야 대통령도 있습니다. 서민이 무너진 나라는 나라가 아닙니다. 미세먼지에 흔들리고 방송 하나에도 무너지는 허약한 삶을 진심의 눈으로 들여다봐주길…. [오피니언타임스=이호준]

 이호준

 시인·여행작가·에세이스트 

 저서 <자작나무 숲으로 간 당신에게>, <문명의 고향 티크리스 강을 걷다> 外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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