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건의 드라이펜]

지난 2월 13일 말레이시아(이하 말레이)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발생한 북한 실권자 김정은의 이복형인 김정남 암살 사건은 우려했던 대로 영구미제 사건으로 향하고 있다. 사건의 주범으로 보이는 4명의 북한인 리재남, 오종길, 홍송학, 리지현이 사건현장에서 암살공작이 성공적으로 수행된 것을 확인한 후 곧바로 평양으로 도주했을 때부터 그런 예감이 들었다.

말레이 경찰이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해 체포에 나섰던 말레이 주재 북한 대사관에 은신 중이던 외교관 현광성과 고려항공 직원 김욱일의 신병마저 말레이-북한 간의 인질협상에 따라 평양으로 넘겨짐으로써 사건의 전모를 알 길은 전무하게 됐다. 사건의 주범들이 모두 북한에 있어 김정은 체제가 붕괴되기 전까지는 영구미제로 남게 됐다.

©포커스뉴스

이 사건과 관련해 말레이 경찰에 체포된 사람은 김정남에게 독극물 공격을 가한 두 명의 외국 여성뿐이다. 북한 공작원에 포섭된 이들은 자신들의 행동이 TV연예프로그램을 찍는 줄로 알았다고 말하고 있다.

게다가 김정남의 시신도 유골이 아니라 생체로 넘겨졌다. 리영희라는 이름의 사실관계도 불분명한 김정남 아내의 요청에 따른 것이라고 했다. 북한에 의한 부검조작 방지를 위해 화장 후 유골 인도 방침을 검토했으나 북한이 강력히 반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이 맘대로 사건을 왜곡하고 조작해도 대책이 없게 됐다. 사건발생 초부터 북한은 여권명 김철이라는 북한국적의 남자가 심장병으로 병원으로 옮기던 중 사망했다고 김정남의 독살은커녕 신원조차 인정하지 않았다.

인질협상이 끝나자마자 그런 허위주장이 다시 시작됐다.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는 지난 30일 타결된 인질협상을 통해서 이 사건에 북한이 간여치 않았다는 사실이 확인됐다고 2일 보도했다. 말레이 경찰의 수사는 모순덩어리이고, 북한 배후설은 모략이라고 주장했다.

또 말레이 경찰이 북한공작원에 의한 김정남 독살이라는 한국언론의 보도를 기정사실화했다면서 맹독성 독극물 VX를 이용한 독살이라는 말레이 경찰수사 결과를 부인했다. 이로 미루어 김정남 시신을 재부검한 결과라면서 심장병 사망을 주장할 것으로 보인다.

2월 13일 김정일의 장남 김정남이 말레이시아에서 피살된 가운데 그의 형제 관계에도 관심이 쏠린다. 현재까지 알려진 김정일의 아내는 총 4명으로 총 6명(3남3녀)의 자녀를 둔 것으로 알려졌다. ©포커스뉴스

말레이시아 정부와 경찰의 초기 대응은 예상 외로 민첩했다. 사건 이틀 뒤 범행의 하수인으로 이용된 베트남 여성과 인도네시아 여성 각 1명을 체포한 데 이어, 4일 뒤에는 말레이시아 거주 북한인 리정철을 용의자로 체포했다.

피살자가 김정은의 이복형 김정남이고, 4명의 북한인이 주범이며, 사건의 배후가 북한임을 분명히 했다. 북한 외교관 현광성과 고려항공사 직원 김욱일의 범행 용의점을 찾아내 체포에 나섰고, 막말을 일삼는 북한 대사를 추방했다. 단교까지도 거론됐다.

그러나 북한이 자국대사의 추방과 북한인에 대한 체포영장 발부에 대한 보복으로 평양주재 말레이 외교관과 그들의 가족 9명을 인질로 억류, 사건 수사가 인질협상으로 변질되면서 말레이 경찰수사가 동력을 잃기 시작했다. 말레이 정부가 인질협상이 길어지면 여론이 악화할 것을 우려해 서둘러 매듭지은 것이다.

김정남 암살이라는 공항에서의 백주테러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북한인의 무비자입국을 허용해준 말레이에 대한 야만적인 배신행위다. 더욱이 불법행위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무고한 외교관과 가족들을 인질로 잡는 행위는 외교관계에 관한 빈협정의 명백한 위반이다.

이런 북한의 막무가내 식 도발에 굴복해 그들의 요구를 들어준 것은 말레이가 북한의 변칙외교에 당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북한이 핵과 미사일로 한미일을 상대로 벼랑끝 외교를 벌이듯, 말레이를 상대로 벌인 막무가내 외교가 다시 한 번 통한 나쁜 선례가 됐다.

북한의 온갖 도발을 우리만큼 겪은 나라는 지구상에 없다. 이번 사건에서 우리의 그런 경험과 노하우를 말레이 당국과 얼마나 공유를 했는지 의문이다. 그런 채널이 존재하는지조차 모르겠다. 한국은 강대국 외교에 너무 편향돼 제3세계 외교를 소홀히 한다는 평을 듣는다.

이 사건은 동생이 형을 살해한 반인륜 범죄다. 왕조시대의 권력싸움, 사이비 종교단체의 배교자에 대한 복수극을 연상케 했다. 외교관을 살인공작에 이용했다는 점에서 북한의 체제가 비정상임을 다시 한 번 드러냈다. 세계가 그런 북한에 대해 경각심을 갖게 할 좋은 기회였다.

정부는 그런 기회를 제대로 활용했는지, 수사와 관련된 인터폴과의 협력문제나, 말레이의 일관성을 잃은 수사자세에 일침을 놓는 등의 했어야 할 일을 했는지, 탄핵정국과 세월호 인양에 정신을 팔고 있지는 않았는지 반성이 있어야 할 것이다. [오피니언타임스=임종건]

 임종건

 한국일보 서울경제 기자 및 부장/서울경제 논설실장 및 사장

 한남대 교수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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